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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Aug 16. 2020

첫 후배의 퇴사가 나에게 남긴 것

남들 다 하는 퇴사

 내 첫 회사는 대기업 특성상 1년에 상, 하반기 총 2번의 공개채용을 통해 신입 사원을 채용했다. 상반기로 입사 한 나는 6개월 만에 하반기로 채용된 첫 후배들을 맞았고, 운이 좋게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팀 막내 생활을 청산했다. 물론 팀마다 신입 사원이 매 년 배치되진 않는다. 내 입사 동기 중에는 무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팀 막내 생활을 한 케이스도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유통사 영업팀 특성상, MD는 충원과 회전이 빨랐기 때문에 다분히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사실 나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교육생 때 희망하던 1 지망 부서에 배치되지 않아 6개월이 지나도록 도무지 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했다. 겉으로는 자존심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다른 동기들에게 밀렸다는 열등감에 '지금이라도 확 그냥 당장 때려치워?'라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말 그대로 하루하루, 꾸역꾸역 출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때려치우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나의 파트장님과 사수가 참 영민하고 배울 점이 많은, 일명 조직 내 천연기념물이라는 '일도 잘하는데 성격도 좋은' 분들 이어서 그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또 신사업 팀이라 대기업에서 드물게 나 같은 신입 나부랭이에게도 제법 많은 업무 자율권이 주워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 작게라도 직접 주도적으로 실행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우리 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전체 조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작은 부분이며, 결국 우리 팀 위상도 조직 내에서 미미하다고 느껴져 감히 내가 하는 일과 팀 전체의 일들이 속된 말로 '짜친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입 주제에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지만, 욕심 많고 포부가 컸던 그때는 그것이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 게 하던 포인트였다.



 그런 나와 달리 우리 팀을 1 지망으로 선택해서 왔다는, 나보다 고작 1살 어렸던 나의 첫 후배는 참 애교 많고 싹싹한 친구였다. 일은 잘하는데 선배들에게 살가운 데도 없고 어딘지 시니컬한 나에 비해, 바람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꺄르르' 웃어대며 선배들에게 항상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밝고 명랑한 친구였다. 1 순위 팀에 와서 너무 기쁘다며 작은 일에도 뭐든지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외모도 참 훌륭해서 어딜 가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날 인재였다.


 그런 그녀를 팀장님은 나에게 붙여주며 일을 가리키라 하셔서 얼떨결에 그녀는 내 1호 후배가 됐다. 고작 6개월 먼저 들어온 내가 알려 줄 것이라고는 회사의 행정적인 프로세스와 업무상 필요한 절차, 유관 부서 소개 같은 것들이 다였지만 눈치도 빠르고 업무 센스도 뛰어났던 그녀는 몇 개월 만에 내가 '아' 하면 '어'할 정도로 착착 일을 처리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병아리처럼 내가 어딜 가든 졸졸졸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질문하는 후배가 좀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6개월 먼저 입사한 동갑내기 선배에게 사사받은 은혜가 있으므로 최대한 성심 성의껏 이것저것 알려줬고 나도 모르는 부분은 합심하여 해결책을 찾았다.


  그렇게 위태롭지만 소소했던 나날도 잠시, 결국 회사에서는 우리 팀에서 진행하던 신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졸지에 우리 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기존 조직과 통합되어 우리가 하던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와 통합되는 팀에서는 소위 조직의 똥덩어리 사업을 왜 본인들이 떠맡아야 하냐며 반발했고, 함께 딸려온 우리를 '실패한 패잔병' 취급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그나마 회사에 적응을 좀 하며 다녀볼라는 찰나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 나는 퓨즈가 끊어진 것처럼 멘탈이 나갔다. 다 같은 월급쟁이 주제에 나를 포함, 우리 팀원 전체를 싸잡아 평가절하하는 옆 팀 동료들이 너무 밉고 다 꼴 보기 싫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록 팀이 통합되더라도 여전히 수장은 내가 본래 모시던 팀장님이란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하던 사업이 사라져 조직 내 위치가 애매해졌던 팀장님은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매사 필사적이었다. 원래 하던 사업은 선배들에게 빠르게 정리하도록 지시하고 비교적 생생한 젊은 피, 나와 후배를 통합된 팀 사업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2명이나 합류할 사이즈는 아니었고, 그나마 선배인 나를 통합된 팀 파트장 밑에 차석으로 배치, 아직 만 1년이 채 되지 않은 후배는 애매하게 다른 파트와 걸친 '깍두기'로 임명했다.


 그렇게 후배는 2개의 파트에 본인의 업무 케파를 0.5씩 배분하는 애매한 처지 속에서도 양쪽 모두에게 매번 밝고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사이 나도 새롭게 바뀐 파트장님 밑에서 기존에 했던 일과 다른 결의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외였던 사실은 바뀐 일이 원래 내가 신사업 팀에서 했던 일보다 내 성향과 잘 맞았다. 갑자기 숨겨진 재능이라도 발굴했던 것만큼, 비록 그 일의 근본 속성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꽤 두각을 나타냈다.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니 갑자기 그 일이 천직이라도 되는 양 나는 정신없이 앞 만 보고 달렸다.



 그 와중에 후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내 성공, 조직 내에서 내가 인정받을 궁리만 했다. 상, 하반기로 나눠서 입사하긴 했지만 연말 평가는 같은 기수로 받아야 했던 그녀를 후배라기보다 경쟁자로 생각하며 내가 반드시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퇴사한다고 했다.


 '너무 힘들었다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도저히 너무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고 말하는 후배 앞에서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사실은, 사실은 말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깍두기 신세를 전전했던 후배가 다른 팀에 배치되어 단단히 자리를 잡아가는 동기들을 보며 힘들어했던 사실도. 선배들에게 아무리 살갑게 굴어도 그녀가 준 마음의 50%도 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나와 비교당하며 그녀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불안 불안한 가시밭 길을 혼자 외롭게 걷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사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나 먼저 살겠다고 그런 그녀를 모르는 척, 못 본 척, 외면했을 뿐이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녀와 마지막 식사 장소였던 곱창집에 마주 앉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꾸역꾸역 먹으며 참 서럽게 울었다. 미안했다고. 내가 정말 미안했다고. 고작 6개월뿐이지만, 그래도 내가 명색이 선배인데, 너를 감싸고 챙기기는커녕 나 하나 살겠다고 그동안 나 혼자 발버둥 쳤다고. 그게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데.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나도 살아 남기 위해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대성통곡하는 내게 오히려 나보다 어른스럽게 '괜찮다고. 자기도  이해한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고작 28, 27살이었다.


 밀려오는 후회와  설움을 꾹꾹 참아야 했다. 우리가,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럼 나는 니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알게 모르게 나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겠지만 끝까지 선배로서 나를 존중하고 좋아해주던 그녀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 도 없고, 떠난다는 후배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녀를 꼭 안아주며 다음 번에는 여기보 백배 천배 좋은 회사로, 거기서 나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선배를 만나라고 목이 꽉 매여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식으로 조직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후배고 선배고 물불 가리지 않고 다 밟고 일어나서 나 혼자 홀로 살아남는 상황은 앞으로 절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수천, 수백 번 다짐했다. 또 나의 첫 번째 선배 노릇은 완전히 실패했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였다. 물론 그런 나의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 그 후로 참 다양하고 개성 있는 후배들 만나며 선배로서 순간순간 '빡이 치는' 상황이 많이 겪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1호 후배를 마지막으로 보내야 했던 그날의 슬프고 서러웠던 밤 분위기를 떠올리며 견디고, 또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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