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여름은 무성한 초록만큼이나 생장이 빠른 계절이다. 밭작물들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쑥쑥 자란다. 나는 작은 텃밭을 임대해서 소소하게 채소들을 길러먹는데, 여름은 아무리 소소한 텃밭이라도 채소들 자라는 속도는 두 식구가 먹는 속도를 어마어마하게 압도한다. 게다가 시골 부모님의 채소들도 보태지니 그야말로 여름은 채소바다에 빠져 즐겁고도 넘치는 유영을 한다. 소비를 하지 않아도 채소를 양껏 먹으니 행복하기도 하지만 사실 많아도 너무 많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은 텃밭에서 수확하는 잎채소로만 사과박스가 하나 가득일 때가 있다. 작년 여름이 그랬다.
도저히 두 식구는 소화 불가능한 양이었고, 지인에게 택배 보내자니 더운 날 생채소가 집 밖에서 하루 잠을 자는 게 괜찮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사는 빌라에 나눠먹기로 했다. 소분하여 한 집씩 찾아다니는데 빈집도 많고, 금방 들어가는 사람을 봤는데도 인기척이 없기도 하자 이웃이라는 말이 어색해진 요즘을 살면서 내가 오지랖인가 싶기도 하면서 대면할 순간을 떠올리니 자신감이 급격히 하락했다. 그래서 다른 방 편을 떠올렸다. 바로 옆에 사는 이웃에겐 메모와 함께 현관 손잡이에 채소 봉지를 걸어두고 나머지는 1층 출입문 앞에 ‘나눠먹자’는 메모와 함께 채소 박스를 두었다. 자유롭게 필요한 분만 가지고 갈 수 있으니 서로 적당히 편안한 방법 같았다. 그렇게 세 번, 나에게 넘치는 채소를 이웃과 나눠먹었다.
뭘 바라고 한 게 아니라서 어떤 피드백이 올 거라곤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한 번은 1층에 붙여놓은 메모 옆에 잘 먹겠다는 인사 쪽지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와우! 대면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수 있구나!! 뜻밖이었지만 너무 따뜻한 순간이었다. 또 어느 한 번은 우리 집 현관 손잡이에 잘 먹었다는 메모와 함께 빵 봉지가 걸려있었다. 나에게 넘치는 것을 나눴을 뿐인데. 내가 되려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웃은 단순히 가격을 따져 재고 등가교환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누고 내가 되려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처음 보는 분이 종이가방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바로 옆집 사는 이웃이었다. 작년 여름 채소를 나눠먹는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며 그때 내가 붙여놓은 메모까지 떼어 간직하고 계신 게 아닌가. 나누는 나의 마음보다 그 순간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너무 감사하다. ‘ 이웃은 나에게 고마워하셨지만 나는 그런 이웃에게 고마웠고, 이렇게 마음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왔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은 각자의 몫이겠고 나의 행동이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진 않겠지만,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가는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생각이 기우임을 확인했다.
그 옛날, 나 어릴적, 이웃 간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그다지 없고 실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에게 넘치는 것을 조건 없이 나눠먹는 정도의 정은 어쩜 요즘 같은 코로나 블루를 넘어 블랙이라는 우리의 멘털에 진정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왜냐면 내가 무척이나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음식쓰레기가 될뻔한 채소로 인해 소중한 기억과 마음을 남겼다. 올해 여름도 가볍게 이웃의 문을 두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