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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10. 어플라이턴

'어플라이턴'은 내가 지원한 과를 도는 시기를 의미한다. 모든 인턴들은 인턴 시작 전 사전 면접 때 자기가 지망하는 과를 적어서 제출한다.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 등등..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이 7개의 인기과 중 1개를 지원한다. 때문에 이 7개 과는 항상 경쟁률이 높으므로, 이 7개 과의 지원자들은 희망하는 과에 합격하기 위해 내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기는 당연하게도 내가 지원하는 과를 도는 '어플라이턴'일 때이다. 나는 이비인후과 지원자였다. 이비인후과의 업무는 자잘한 것들을 제외하면 크게 아침 드레싱 보조와 외래에서 환자를 보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외래는 환자가 입원하지 않고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진료실에서 의사랑 일대일로 앉아서 진료 보고 집에 가는 것이 외래다. 환자분들은 대게 입원을 하지 않을 정도의 경증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끔 증상이 심해서 외래로 왔다가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외래에 환자들이 교수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온다. 목이 아파요. 귀가 잘 안 들려요. 목이 쉬었어요, 등등 다양한 증상을 가지신 환자들이 정말 많이 온다. 이 때문에 예전에 병원에 온 적이 없는 새로운 환자의 경우 인턴들이 먼저 환자를 보면서 대략적으로 환자에 대해 파악해 놓은 뒤 교수님께서 환자를 보신다. 나의 주 업무 역시 새로 온 환자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환자를 보았으나 다른 친구들도 그랬으리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점수를 따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리 병원의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인턴이 환자를 보는 자리는 탁 트인 공간이다. 이 말은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 '얘가 뭐하는지'를 볼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또 어떻게 보면 기회의 장인 셈이다. 9시에서 5시까지 항상 환자가 많지는 않다. 중간중간 환자가 적어서 딱히 인턴이 할 일이 없는 시간도 있다.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 시간에  지금까지 이비인후과를 돌았던 다른 인턴들은 인턴 당직실에 들러서 잠시 쉬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날부터 나는 항상 'up to date'라는 의학 사이트에서 이비인후과 관련 내용들을 프린트해서 쉬는 시간마다 읽었다. 전날 당직 때 3~4시간밖에 못 잔 상태에서 잠의 유혹을 이겨내고서 틈날 때마다 이비인후과 관련 의학 정보들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갈 필요 없는 주말에도 나가서 소독하는 것을 보조했다. 어떤 선생님은 부담스러워하면서 이러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갔다. 소독할 때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은 상당한 센스를 필요로 한다. 이게 필요하다 싶으면 이걸 주고 저게 필요하다 싶으면 저걸 주는 그런 거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많이 부족했다. 붕대가 필요할 때 테이프를 건네주고 테이프가 필요할 때는 거즈를 건네주는 그런 인턴이었다. 센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인턴으로 기억 속에 남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주말에 계속해서 소독을 보조하러 나갔고 외래에서 환자가 없어도 쉬지 않고 이비인후과 관련 논문들을 읽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지나가다가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인데도 이비인후과 관련 글들을 읽고 있는 것을 본 교수님은 나를 여러 번 칭찬해주셨고 이비인후과에서의 나의 이미지는 정말 열심히 하는 인턴이 되었다.     


 이비인후과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부담스럽고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비록 교수님이 환자를 보시기 전에 확인을 하는 간단한 업무들이지만 내가 진료를 보고 있다는 그 자체는 초보 의사인 나에게 굉장히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예전처럼 뛰어다닐 필요 없이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좋았다. 비록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있을지언정 병동에서 일을 할 때처럼 너무 뛰어다녀서 다리가 아프거나 수술방에서 일할 때처럼 발가락을 찍어서 발가락이 퉁퉁 붓거나 하는 신체적인 스트레스는 없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정말 환자들을 세심하게 잘 보셨고 환자들의 고민을 잘 해결해주셨다. 이런 능숙함이 정말 너무 멋져 보였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왠지 모를 공허함이 생겨났다. 허하고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 이 공허함의 정체와 이유를 한참 동안이나 고민했었다. 그러고 얼마 뒤에 이 공허함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코드블루 11b, 코드블루 11b”     

 한 병동에서 환자의 심장이 멈추었다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였고 나 역시도 보던 환자를 계속해서 보았다. 방송이 들리면 하던 일은 다 내팽개치고 뛰어가는 내과 선생님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내과, 외과 등의 몇몇 과들과는 다르게 이비인후과는 응급상황이 생길 일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이런 응급환자를 치료할 일도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법을 배울 일도 없었다. 한때는 이게 이비인후과의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턴을 짧게나마 해본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법 정도는 배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을 보고 상념을 멈췄다.     


  이비인후과는 위급한 응급환자가 적기는 하지만 일까지 적지는 않았다. 생각에 잠겨 멍 때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시간 내에 일을 하기 위해서 빠르게 다음 환자를 부르러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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