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턴의 시간- 11. 코드블루

 인턴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정규 출근 외에도 3~4일에 한번씩 오후 6시에서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당직을 선다. 어제는 나의 당직 날이었고 그날은 세 번의 코드블루가 있었던 날이었다.     

 코드블루란 환자의 심장이 멈춘 상황으로 초 응급상황이다. 심장이 멎은 채로 30분만 지나도 살아날 가망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심정지 상황에서는 약물 투여, 제세동 등의 처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흉부압박이다. 그리고 이 흉부압박은 인턴이 한다.     



 의대생들은 의사가 되기 전에 의사국가고시를 치른다. 이 의사 국가고시는 실기와 필기로 나누어져 있다. 실기시험 중에서 유독 채점 기준이 까다로웠던 과목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심폐소생술이었다. 압박의 깊이, 압박 속도, 인공호흡의 정도까지 모두 기록되는 고가의 장비로 채점을 하였고 어느 하나라도 어긋날 경우 큰 감점이 있었다. 이를 20회씩 5번을 해야 한다. 보통 2분만 원칙대로 흉부압박을 해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리고 왜 유독 이 과목만큼은 그렇게 까다롭고 집요하게 채점을 했는지를 우리는 인턴 첫날에 알 수 있었다. 인턴 첫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드블루 상황이 발생했다. 20명가량의 인턴들이 모두 뛰어갔다.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3월의 인턴이지만 심폐소생술을 열심히 연습한 덕에 흉부압박은 잘한다. 다만 다른 사소한 문제들이 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할 때는 2분마다 흉부압박을 멈추고 심장이 다시 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면 더 이상의 흉부압박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맥박 확인하겠습니다.”     

 내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말한다.     

 하지만 나의 인턴 동기는 흉부압박의 깊이 속도 깊이 속도만을 생각하면서, 초집중하여 온 힘을 다해 흉부압박을 하고 있다. 들릴 리가 없다.     

 “맥박 확인할게요.”     

 조금 더 크게 말하신다. 하지만 역시 들릴 리가 없다. 뒤에서 다른 인턴들이 툭툭 치기도 하지만 처음 심폐소생술을 하는 나의 동기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의 신경을 흉부압박에만 투자하고 있었다.     

 “맥박 확인한다고요~~!!”     

 거의 소리치듯이 말씀하신다. 그제야 화들짝 놀라면서 흉부압박을 멈춘다.

 “맥박 없습니다. 압박 계속하세요.”     

 다시 흉부압박을 재개한다.     



 또 환자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중에 동맥 피검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흉부압박은 10초 이상 멈추면 안 되기 때문에 흉부압박을 계속하면서 피를 뽑는다. 이것 역시 인턴이 해야 할 일이다. 재빨리 주사기를 챙겨 와서 채혈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제 갓 의사가 된 인턴들이 이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뭐해요??? 비켜요 내가 뽑을게요.”     

 코드블루는 초응급상황이라 교수님도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매우 예민하다. 채혈을 실패하는 걸 보자마자 고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주사기를 낚아챈 다음 피를 뽑으신다. 나는 재빨리 비켰다.      

 물론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를 잘 뽑을 자신이 있지만 미숙했던 당시에는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첫 심폐소생술 환자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박동이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환자분에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니 정정한다. 심정지가 일어날 경우 다시 심장이 뛰지 못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통 30분, 최대 1시간이 지날 경우 소생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멈춘다. 우리의 두 번째 코드블루 상황이 그러했다. 이때 보통 환자의 가족들은 참고 참았던 울음을 그제야 터트린다. 위로를 하기에는 세상에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기에는 아직 자신들이 사랑했던 가족을 보낼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위로를 해줄까 고민하다가 이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당신들이 사랑했던 사람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뿐임을 깨닫고 조용히 병실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의사는 죽음을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환자가 돌아가시더라고 이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환자의 죽음을 보았던 그날, '죽음에 초연 해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제 나는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코드블루 방송이 울리고 내과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인턴들은 방송을 듣자마자 뛰어가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오늘의 코드블루에서 평소와 달랐던 점은 원래 코드블루 상황에서는 젊으신 교수님들이 와서 지휘를 하는데 오늘은 젊으신 교수님들과 함께 내과에서 나이가 가장 많으신 원로 교수님인 D교수님께서 함께 오셨다는 것이었다. 보통 심폐소생술의 지휘는 가장 연차가 높은 교수님이 하신다. 하지만 누가 봐도 가장 원로 교수님이셨던 그분은 지휘를 다른 교수님께 맡긴 뒤 가만히 서 계셨다. 눈에 약간의 눈물이 고여 있었던 채로.     

 한 시간이 넘게 심폐소생술을 하여도 환자의 심장박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고 소생술은 중단되었다. D 교수님은 청진기를 가져오셔서 아주 천천히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환자를 청진하셨다.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바라는 표정이셨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 듣던 청진기를 치우고 환자의 손을 꼭 잡고서 우리한테 '이제 가서 볼 일 보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하신다. 후배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으셔서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러 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교수님은 그 방에 계셨다고 한다. 의사 역시 사람인지라 마냥 죽음에 의연할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다. 특히나 자신이 오랫동안 진료했던 그런 환자가 떠나갔을 때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D교수님이 그 환자를 얼마나 오래 보았는지 그 환자와 D교수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진료하신 환자고 또 그런 만큼 오래오래 사시길 바랐던 환자였을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오늘만큼은 그 환자분이 좋은 곳으로 갔기를, D교수님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이전 10화 인턴의 시간- 10. 어플라이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