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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12. 피검사 꼭 하셔야 돼요

 이번에 내가 돈 병동은 호흡기 병동과 간담췌 병동이었다. 호흡기 병동과 간 병동의 경우 장기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 예민한 환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병동이었다.     

 그래도 같은 병원인데 얼마나 차이가 있으려나 하던 나의 생각은 정확히 출근 10분 만에 깨져버렸다.     

 “뭔 또 피검사야 x발!!! 안 해 저리 가 이 x발롬아! 안 한다고!”     

 피검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자 갑자기 환자가 나한테 욕을 한다.     

 “피 좀 그만 뽑아, 밥도 못 먹는데 피는 이만큼씩 뽑아가면 어떻게 하라고!”      

 옆에서 보호자가 거든다.     

 이렇게 피검사하러 왔다고 욕까지 먹은 건 처음이었지만, 하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는 분들은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시도했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맞죠ㅠㅠ 피검사 너무 많이 하죠?? 이거 엄청 아픈데 진짜 ㅠㅠ 이것만 하고 내가 피검사 좀 그만하라고 말씀드릴게요. ㅠㅠ 우리 할아버지 고생하신다.”     

 하면서 은근슬쩍 팔목을 가져간다.     

 “그니까 아파죽겄어...”     

 다행히 통했다. 휴.. 얼른 피를 뽑고 보호자한테 지혈을 부탁한 다음 또 다른 환자에게로 간다.     

 “나 검사 안 해. 아니 못해!! 내 피 좀 그만 좀 뽑아”     

 "아니 왜 그래요.. 검사를 해야지 치료도 하고 낫지"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데 도대체 언제 낫는데? 안 해!! 아 그냥 안 나을래"


 "아버지 이거 계속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다잖아요."     

 "그럼 죽지 뭐!! 죽을래 그냥"     

 "아니 말을 왜 그렇게 해요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뭐!!"     

 이번에는 보호자랑 환자가 싸운다....


 어찌어찌 환자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검사를 하고 갔다.     

 다음 환자는 맥박이 정말 약했다. 그래서 그런지 첫 시도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더 찌르려던 찰나에 보호자가 막는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 피 뽑기 어려운 거 알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고 잘하는 사람으로 데려와주세요. 아·무·나 말고 잘하는 사람으로요”     

 나는 보호자에게 저도 잘 뽑는 편이라고, 최근 들어서는 피 뽑는 걸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해보지만 계속 거절한다.     

 이러한 패턴으로 욕을 몇 번 더 먹고,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설득하는데 소요하고 나서야 아침 채혈을 끝낼 수 있었다.     

 채혈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에서 정말 너무 힘들었었다.     


 낮에 하는 소독도 너무 힘들었다. 소독해야 하는 환자도 많았고, 소독하기 어려운 환자도 정말 많았다. 협조를 잘해주셔도 소독이 30분 넘게 걸리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내가 갈 때마다 소독을 하기 싫다고 고함을 지르셨다. 진물이 많이 나는 환자여서 소독을 매일 꼭 해야 하는 환자였기 때문에 나는 이 물러날 수 없었고 소독을 하자고 설득을 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유로 치료하기 힘들었던 분들이 정말 많았다.     

 아는 형이 환자랑 멱살을 잡고 싸운 뒤로 그 어느 과에서도 그 형을 레지던트로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군대에 갔다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속으로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를 외치지 않았다면, 나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을지도 몰랐다.      


 첫 일주일 동안은 이 환자들이 너무 미웠다. 피검사를 또 한다고 욕을 하기도 하고 이 검사 못하겠다고 해서 안 그래도 바쁜데 많은 시간을 설득하는데 쓰게 만드는 이 분들이 정말 미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채혈에 실패하면 나한테 화를 내던 어떤 보호자 분은 엄청난 효녀였다. 간병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굉장히 편할 수도 있지만 정말 지옥과 같이 힘들 수도 있다. 밤에 영상 검사를 많이 해서 검사할 때 동행하느라 한숨도 못 잘 수도 있고, 밤에 피검사를 자주 해서 보호자가 계속 지혈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밤새 소리를 질러서 보호자가 잠을 아예 못 자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보호자분은 이 모든 것에 해당하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항상 깨끗했으며, 기저귀에 변이 묻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호자가 잠을 거의 못 잤음에도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다는 것이다. 소독할 때마다 소독하는 내 옆에 와서 상처부위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고 남은 시간에는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첫날에 나한테 화를 낸 것은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소리 들었다고 기분이 나빠졌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내가 소독을 하러 갈 때마다 소독을 하기 싫다고 화를 내시던 아주머니와 가족과 싸우시던 할아버지는 DNR 환자셨다. DNR은 Do Not Resuscitate의 약자이다. 심장이 멈추어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보통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고 심폐소생술을 하여 심장박동이 돌아오더라도 얼마 못 사는 그런 분들이 DNR을 받는다.      


 그분들의 손목에서 DNR이라 적힌 팔찌를 본 뒤로 나는 더 이상 '검사 꼭 하셔야 돼요', '소독 꼭 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다. 피부에서 진물이 계속 날 경우 감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소독을 해주는 것이 '의학적으로는' 옳은 일이다. 그리고 폐에 이산화탄소가 잘 차거나 산증이 쉽게 생기는 사람들에게 산소 수치와 이산화탄소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자주 하는 것 또한 '의학적으로'는 옳은 일이다. 하지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행한 그 검사들과 그 치료들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턴이 바뀌고 며칠 뒤 그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싫어하던 소독을 매일 같이 받으시고 너무 아프다던 피검사도 버텼던 분이었는데.. 그 모든 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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