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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13. 응급실 근무

 만약 사람들이 급히 응급실에 가야 할 때, 대학병원 응급실이 나을지 아니면 종합병원 응급실이 나을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종합병원 응급실을 가라고 할 것이다. 한적한 종합병원과는 다르게 대학병원 응급실은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의사도 간호사도 정신이 없다. '위급한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한다.'는 원칙은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위급한 환자의 테두리에 들지 못해서 3~4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환자에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운이 좋게 침대라도 배정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조그만 의자에 3~4시간씩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에게 대학병원 응급실은 정말 응급 시의 조치를 제대로 해주는 곳이다.  외부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뇌출혈 환자가 온다는 전화이다. 뇌출혈 환자의 경우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하는데 신경외과가 없는 병원들의 경우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런 뇌출혈 환자의 경우 빠르게 수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환자가 와서 CT를 찍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피검사와 간단한 문진과 신체검사를 다 끝내야만 한다. 환자 도착 전인데도 신경외과 선생님들은 이미 내려와서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인턴들도 하던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물어봐야 하는 내용들과 해야 하는 신체진찰들을 정리한다.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올 수 있게 간호사 선생님들은 문을 열고 계신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싣고 빠르게 들어온다.      

 인턴 1명은 물어봐야 하는 내용을 정리한 종이를 들고 보호자한테 달려가서 사고 경위와 증상 등을 빠르게 물어보고 다른 한 명은 미리 준비해둔 주사기를 들고 환자한테 뛰어가서 피검사와 신체진찰을 한다.     

 응급 구조사 선생님들은 '심전도'라는 수술 전에 꼭 필요한 검사를 한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환자접수를 빠르게 하고 환자 산소 수치와 심장박동을 볼 수 있는 기계를 빠르게 설치한다.      

 이 모든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10분 내의 짧은 시간에 모두 이루어진다.      

 CT 찍을 준비가 되면 환자는 빠르게 CT실로 들어가고 나는 그동안 물어본 내용들과 신체 진찰한 내용들을 신경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보고한다. 다만 그 짧은 시간 내에 신체진찰까지 완벽하게 해내기는 조금 힘들다.     

 “다만 신체진찰에서 몇 가지 모호한 점이 있었습니다.”

 “오케이. 여기서부터는 저희한테 맡기세요. 수고하셨어요.”     

라며 신경외과 선생님이 환자를 보신다.

 

이때 본 신경외과 선생님의 뒷모습과 그 한마디가 너무 멋있어서 며칠간 신경외과를 꿈꾸기도 하였었다.      

 

 뇌출혈 환자만큼이나 응급으로 봐야 하는 환자가 있다. 바로 심근경색 환자이고 이 중 STEMI 환자이다. 심근경색이란 심장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서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질환을 말한다. 이 중 STEMI란 심장으로 가는 혈관 중 하나가 완전히 막힌 상황으로 응급으로 혈관을 뚫어주지 않으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정말 위험한 질환이다.

       

 가슴이 아프다는 환자가 온다. 얼른 환자를 눕히고 환자의 심장 상태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심전도라는 검사를 한다. STEMI다. 응급실 안쪽에다 소리를 지른다. "STEMI 환자 왔습니다."     

 3~4명의 간호사와 인턴들이 뛰어 온다. 내가 문진을 하는 동안 피검사를 포함한 여러 준비들을 한다. DC pad도 붙인다. 이 DC pad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심장이 멈췄을 때 전기쇼크를 줘서 심장을 자극하는 장치이다. STEMI의 경우 정말 언제든지 심장이 멈출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기 때문에 이 DC pad를 붙인다. 내과에 연락을 하고 얼마 안 지나서 내과 선생님이 내려온다. 마찬가지로 나는 환자 보고를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환자는 막힌 심장 혈관을 뚫으러 심혈관센터로 올라간다. 이 모든 게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이 날의 일이 인상 깊어서 오랜만에 심근경색의 치료법을 읽어봤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갑자기 막히는 병인 급성심근경색의 경우 이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인 관상동맥 중재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치료법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 의사가 있다면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하지만 없다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거나 혈관을 뚫어주는 약물만을 주입한다. 관상동맥 중재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심근경색 환자가 살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달리지는 것이다. 문득 나도 이런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전화가 걸려온다. 119에서 심정지 환자가 오고 있다는 전화이다. 심정지는 환자의 심장이 멈춘 상황으로 정말 초응급상황이다. 인턴 한 명은 cpr 환자에 대한 정보를 보호자와 119 대원에게 물어보고 나머지 두 명은 가슴압박을 시작한다. 앞의 두 응급질환의 경우 치료 후 잘 살아가실 확률이 훨씬 높지만 심정지 환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한 시간 이상 심장이 멈출 경우 심장이 다시 뛸 확률은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심폐소생술은 1시간 이상 시행하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가슴압박을 해보지만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뛸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환자를 위해 묵념을 하고 다시 일을 한다.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응급실은 너무나 바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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