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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 15. 첫 휴가

  인턴들도 휴가가 있다. 일 년에 두 번 일주일씩 휴가를 간다. 다만 휴가 때라고 당직 개수를 줄여주지는 않기 때문에 자기 몫의 당직은 미리 서고 가야 한다. 때문에 일, 월, 수, 금의 살인적인 당직 일정이 잡혔다. 하지만 휴가가 하루씩 가까워오고 있다는 생각에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만은 정말 최고였다. 마지막으로 금요일 당직을 끝내고 토요일 아침에 퇴근을 했다. 그동안의 당직 일정으로 몸은 쓰러질 듯이 피곤했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해 머리는 멍했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했다. 신나는 걸음으로 반쯤 뛰다시피 집에 와서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첫 휴가 때 내가 다녀온 곳은 몽골이었다. 세계 3대 사막으로 불리는 고비사막이 있고 자연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고향인 곳이기도 하다. 다만 넓은 땅에 비해 인구수가 매우 적고 기반시설이 부족하여서 밤에는 전기를 사용할 수 없고, 이동 중에 화장실을 찾기 어려워서 삽으로 모래를 파서 그 안에 변을 보고 모래를 덮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불편을 각오해야 할 곳이기도 했다.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 나는 이전부터 이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모래 위에서 변을 보고 며칠 동안 샤워를 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친구는 내 주변에는 없었다. 딱히 인턴이 되고 나서 그런 친구가 갑자기 생길 리도 없었기에 몽골이 너무 가고 싶었던 나는 동행을 구해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러브 몽골이라는 카페에서 동행 글을 찾아봤다. 운 좋게도 나의 휴가 날짜에 몽골을 떠나는 분들이 딱 한 팀 있었다. 20대 분들이라는 정보밖에 없었지만 당시에 너무 몽골에 가고 싶었던 나는 별 고민 없이 동행한다는 쪽지를 보냈고 단톡 방에 초대되었다. 나까지 남자 3명, 여자 3명이 있었다. 괜찮은 휴가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 두 분이 휴가가 틀어져서 여행을 못 갈 것 같다는 말만 남기시고 나가신 사소한 일만 빼면 말이다. 출발 전에 여자 한 분이 더 합류해서 다섯 명이 된 우리는 여행 세부계획을 짜며 떠날 준비를 하였고 얼마 안 있어 여행이 시작되었다.          



  4시간의 비행시간 내내 쿨쿨 자면서 갔다. 나도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몰랐다. 옆에 앉았던 동행 분 얘기를 들어보니 잘 얘기하다가 갑자기 말이 없길래 돌아보니 자고 있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한 여행사를 통해서 사막 여행을 떠났다. 비포장도로가 많고 운전시간이 길어서 개인이 운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몽골 여행은 대부분 여행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차 안에서는 우리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의사 2명에 간호사 2명 일부러 이렇게 맞춘 것도 아닌데 5명 중 4명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신기했다. 하지만 의외로 병원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만큼 휴가 동안은 일상생활은 잠시 잊고 신나게 놀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이 신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을지에 대해 의논을 하기도 하고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신나게 푸르공을 타고 달려갔다. 막내이기도 하고 유일한 남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주로 장난의 대상은 나였다.          

 “네 누나 제가 하겠습니다.”          

 “아 이거 제가 하겠습니다. 군대 왔냐?”           

 당시의 나는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다나까체'가 입에 밴 상태였는데 누나들은 정말 이걸 잘 따라 했었다. 나도 이게 진짜 너무 웃겨서 참 재밌게 대화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이 끝날 때쯤 누나들은 어떤 장난도 태연히 웃으면서 받아넘기는 나보고 성격이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했었다. 병원 생활하면서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윗사람들한테 욕을 먹기도 하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면서 일했는데도 왜 이제 왔냐며 핀잔을 듣기도 하고 검사하러 갔다가 환자한테 쌍욕을 먹기도 하다가 맞이한 이런 악의 없는 장난들을 보면서 나는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활기차고 짓궂은 누나들 덕분에 여행이 더욱 재밌었던 것 같다.           



 한참을 떠들다가 가장 먼저 내린 곳은 길 한복판이었다. 길가 한 복판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푸르공에 모여서 다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차가 거의 오지 않는 몽골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다음에 향한 곳은 천징벌덕에 있는 칭기즈칸 동상이었다. 근처에 독수리와 낙타가 있어서 낙타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고 독수리를 팔에 걸치고 멋진 척을 해보기도 하였다. 칭기즈칸 동상 안쪽에는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여기서 전통의상을 입어 볼 수도 있었다. 왕과 공주 장군 등의 의상을 입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재밌게 놀았다.           



 이동하기 전에 동상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갔다. 몽골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곳인데도 근처에 식당은 몇 개 없었다. 그중에서 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었는데 먹을 만했었다. 몽골 음식은 전부 누린내 나고 맛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누린내도 나지 않았다. 물론 밀크티는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밍밍했고 고기에 밴 양념도 맛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즐겁게 놀다가 먹는 음식이어서 그런지 충분히 맛있었다.      

 “야 이거 괜찮은데”          

 “오 이 정도면 몽골 음식만 먹으면서 2박 3일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누나들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근데 이건 좀 그렇다. 맛있으면 이거 너 줄게”          

 “많이 먹어 우리 막내”          

 “내 것도”          

 밀크티도 맛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어느새 내 앞에는 밀크티 5잔이 놓여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내 당황한 목소리에 우리 모두가 동시에 빵 터지면서 한참 동안 웃었다. 이렇게 별거 아닌 걸로 웃을 수 있는 것이 지친 삶 중 누리는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다시 푸르공에 탑승하고 테를지 공원을 향해서 달려갔다. 달려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술과 컵라면 그리고 과자를 샀다. 아이스크림도 샀었는데 내 입맛에는 정말 맛있었는데 누나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야 이거 아이스크림 이상해”          

 “어 전 맛있는데?”          

 “나도 별로..”          

 “난 맛있는 거 같아 근데 그래도 너 줄게”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3개가 내 앞에 놓였다. 점심때 밀크티는 다 먹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4개를 먹는 기행을 보이면서 누나들한테 박수를 받으면서 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테를지 국립공원이었는데 가는 내내 쿨쿨 잤던 것 같다. 길이 험해서 20~30cm 정도 사람이 튀어 오르는 구간도 있었는데 나는 당직을 몰아서고 온 덕분에 그런 구간에서도 잠에서 깨지 않고 쿨쿨 잘 수 있었다. 다들 정말 신기해했다.           



 말을 타고 테를지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돌고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게르'라는 몽골식 전통 집에 머물렀는데 모양이 상당히 특이하고 예뻤다. 다들 신이 나서 게르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게르로 들어왔는데 문을 닫고 나가는 걸 깜빡해서 나방이 몇 마리 들어와 있었다. 한바탕 나방을 내쫓으면서 난리를 피우다가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삼겹살 구이였다. 다 같이 가이드 분의 게르에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맥주도 한잔 했었다. 새벽에 같이 별을 보기로 하고 일어난 사람이 있으면 서로 깨워주기로 했었는데 다들 피곤했는지 한 명도 일어나지 못해서 우리는 첫날에는 별을 보지 못했다. 오늘은 꼭 별을 보자며 다 같이 파이팅하면서 몽골 여행 2일 차를 시작했다.          

 게르의 첫 번째 단점은 게르 내부에서는 나무로 불을 피우는데 이게 한두 시간만 장작을 안 넣어주어도 불이 꺼져서 엄청 춥다는 것이다.           

 “으 추워..”          

 “얼어 죽을 거 같아”          

 다들 덜덜 떨면서 일어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게르의 세 번째 단점은 뜨거운 물이 안 나올 때도 많다는 것이다.          

 "야 뜨거운 물 안 나와서 나 찬물로 씻었어. 얼어 죽을 거 같아."          

 일찍 일어난 누나 한 명이 덜덜 떨면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서 그 누나를 놀려댔다.          

 “큰일 했네 앞으로도 먼저 가서 뜨거운 물 나오는지 꼭 확인해”          

 “누나 감사합니다. 누나 아니었으면 저도 씻으러 갔다가 진짜 추울 뻔했네요.”          

 “뻥치지 마 너 뜨거운 물 나와도 안 씻을 거였잖아.”          

 장난을 치면서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미니 고비라고 불리는 엘센 타스라하이 사막으로 떠났다. 역시 가는 길에는 다 같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갔다.          

 "야 저 낙타 너 닮은 거 같아."          

 "뭔 소리야 낙타가 훨씬 잘생겼는데"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내가 낙타 막 만지는데 낙타가 크릉 이래서 깜짝 놀랐어."          

 별거 아닌 것에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낙타를 탔다.     

 낙타를 타고 모래썰매를 타는 게 일정이라고 했는데, 모래 썰매라는 게 별게 아니라 커다란 모래 언덕을 우리가 기어 올라간 다음에 미끄러지면서 내려오는 게 모래썰매라며 가이드분이 저 언덕을 올라가면 된다고 하셨다.          

 "이게 뭐야"     

 "아 신발에 모래 다 들어갔잖아"          

 투덜투덜거리면서 올라갔지만 은근히 재밌는지 다들 표정은 웃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쭉 미끄러져 내려왔는데 단순한데도 재밌었다. 사진을 보면서 서로 너 못생기게 나왔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누워서 다 같이 한참 동안 별을 보았다. 별똥별이 정말 많이 떨어졌다. 별똥별이 한 개 떨어질 때마다 소원을 빌어보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같은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소원도 빌어보고,          

 “채혈이랑 인턴일 완전 잘하게 해 주세요.” “인턴 성적 A 받게 해 주세요.” 등 일 좀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소원도 빌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멋진 의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소원을 하나 빌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고 여느 때처럼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공항으로 돌아왔고 이렇게 우리의 몽골 여행은 끝이 났다.          

 정말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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