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방이 끝나고 나서 내가 투입된 병동은 외과 병동이었다. 외과 병동의 첫 한주는 솔직히 할만했다. 일은 많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고, 술기 실력도 이제는 꽤 많이 늘었으며, 환자들도 대부분 혈관이 잘 보이는 편이어서 피를 뽑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제법 자신감이 차올랐다. 다음 주가 어떤 한 주가 될지 예상도 못한 채..
인턴들은 일 년에 두 번 각각 일주일씩 휴가를 간다. 이때 다른 인턴이 휴가 간 인턴의 일까지 하며 빈자리를 메운다. 우리는 이를 커버라고 한다. 두 번째 주에 외과중환자실 인턴이 휴가를 떠났다. 외과 중환자실 인턴이 휴가를 갈 경우 외과 병동의 인턴이 커버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그 외과 병동 인턴은 나였다.
인턴 한 명이 여러 병동을 맡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이 생기면 간호사 선생님들은 인턴들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나는 외과중환자실 인턴 커버를 하는 중이니 외과 중환자실을 포함해 6개의 병동에서 전화를 받아야 했고 내 전화는 정말 문자 그대로 멈추지 않고 울려 됐다.
이 일이 있기 전의 나는 친구들이 ‘같은 일로 두 번 전화를 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뭐 약속을 잊었을까 걱정돼서 다시 전화할 수도 있지’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한주 동안 같은 일로 전화를 두 번 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10분에 한번씩은 전화가 울렸고, 일이 몰릴 때는 1분마다 전화가 울리기도 했다.
‘항암제 좀 달아주세요.’
‘심전도 좀 찍어주세요.’
‘동맥혈 채혈 있어요.’
‘혈액배양 있어요.’
‘글리세린 관장 좀 해주세요.’
‘앰부 짜면서 CT실 갈분 있어요.’
‘항암제 달분 있다고 했는데요.’
‘심전도 빨리 찍어주세요.’
인턴은 일을 할 때 무균장갑을 끼는 경우가 많은데 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 중에 전화가 온다면 장갑을 벗고 전화를 끝낸 뒤, 다시 장갑을 끼고 하던 일을 마저 해야 한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시간도 제법 소요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촉 전화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그러던 찰나에 전화가 또 울린다.
‘Vfib이 지나갔어요. 와서 심전도 한 번만 찍어주세요.’
전화는 엄청나게 오지만 내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먼저 할지를 매 순간 결정해야 한다. ‘어떤 일이 더 중한가’를 고민해서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Vfib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기 충격기를 사용할 정도의 응급상황이다. 생명과도 직접 연관이 있어 가장 급한 일이기 때문에, 하던 일을 서둘러 끝내고 뛰어가서 심전도를 빠르게 찍었다. 다행히 그렇게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오신 김에 지금 바로 혈액배양 검사해주실 수 있어요? 바로 투석 돌릴 거여서 지금 안 하면 5시간 뒤에 해야 돼요.”
사실 혈액배양 검사는 급한 것이 아니어서 5시간 뒤에 해도 된다. 특히나 그렇게 일이 많은 상황에서는 5시간 뒤에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직은 인턴 초여서 5시간 뒤면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하고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혈액배양 검사를 하는 분은 한분이지만 내가 해야 할 혈액배양 검사는 하나가 아니다. 혈액배양 검사 4쌍에 관을 2개를 빼고 관 끝을 배양병에 넣어서 같이 배양검사를 해달라는 것이다.
‘후.. 일도 많은데..’
최대한 서둘러본다.
혈액배양을 하는 중에도 전화는 계속 울린다.
‘동맥혈 검사 하나 있어요.’
‘항암제 좀 달아주세요.’
‘콧줄 꼽을 분 있어요.’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가 오기에 나는 계속해서 장갑을 벗었다 꼈다 해야 했다. 그리고 관을 뺀 후 지혈을 하는데 피가 멈추지를 않는다.
‘후.. 빨리 가봐야 하는데..’
전화는 계속 울리지만 지혈을 도와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일을 줄 사람은 많지만 일을 처리할 사람은 너무도 부족한 상황, 양손으로 지혈을 하고 있어서 잠시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전화는 정말 계속 울렸다.
결국 한 시간 가까이 검사를 한 뒤에야 빠져나갈 수 있었고 그동안 일은 정말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이제 밀린 일을 하러 나가려던 찰나에 레지던트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맥혈 채혈 급하다는 얘기 못 들었어요? 환자 산소 수치 떨어지고 있어요. 전화한 지 30분이 넘었는데 왜 안 와요? 도대체 뭐 하고 있었어요?”
진짜 너무 억울해서 팔딱 뛸 일이었다. 다른 모든 병동들이 별로 급하지 않은 일로 급하다고 빨리 와달라고 할 때 유일하게 급하다는 말없이 담백하게 “동맥혈 검사 있어요.”라는 말만 했던 병동이어서 크게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죄송합니다. 급하다는 얘기가 없어서 안 급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빨리 가겠습니다.”
아무리 병원에서 혀가 긴 건 죄악이라지만 최소한의 변명조차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얼른 가서 동맥혈 검사를 하고, 다른 일들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원래는 6시 퇴근인데.. 심지어 어제 당직이어서 36시간 만에 퇴근하는 건데.. 후..’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것보다, 36시간 마라톤 업무보다도 더 힘든 것은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늦게 간다고 눈치나 주고.. 차마 병동에서 울음을 터트릴 수는 없어서 일이 끝난 후 당직실에 내려와서 엎드려 조금 울었다. 창피한 기억이지만 나의 눈물로 인턴의 고됨을 작게나마 전달하고 싶다.
끔찍한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