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의 첫 한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다음 턴은 외과였다. 외과 같은 경우는 3명의 인턴이 중환자실, 병동, 수술방을 각각 맡는다. 내가 처음 2주 동안 맡은 역할은 수술방 인턴이었다. 적응만 되면 수술방이 제일 편하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새내기 인턴에게 교수님들의 수술을 보조하는 수술방 인턴은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난 힘도 약한데, 수술하다가 기구를 놓치면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실수해서 큰일이 생기진 않겠지?"
하는 걱정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첫 출근을 하였다.
수술방에서 인턴의 역할은 수술 전, 수술 중, 수술 후로 나누어진다. 먼저 수술 전에 환자에게 수술 모자를 씌워주고 환자의 이불을 걷고 환자 침대를 끌고 수술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니터링’이라는 것을 한다. 이 ‘모니터링’이란 환자의 몸에 환자의 산소 수치를 볼 수 있는 기계와 환자의 심장 박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 환자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 세 가지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수술 중에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모니터링’이 끝나고 나면 환자 마취하는 것을 보조한다.
그러고 나면 나서 우리는 장갑을 끼고 ‘드랩’이라는 것을 한다. 드랩은 환자가 수술받을 부위와 그 주변을 소독하는 것을 말한다. 수술 같은 경우에는 피부를 가르고 진행하기 때문에 균이 침입할 경우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드랩’이라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내가 처음 돌게 된 일반외과 같은 경우에는 조금 더 무균적으로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서 이 드랩을 두 번씩 한다. 첫 번째 드랩은 인턴이 하고,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한 번 더 드랩을 한다.
여기까지 끝나면 이제 수술을 할 준비는 대략 다 끝난 것이다. 손을 씻고 와서 본격적으로 수술에 참가하면 된다.
수술 중 인턴과 레지던트의 역할은 간단하다. 수술 부위가 잘 보이게 잡고 있기, 피가 많이 날 경우 수술 부위가 보이도록 피를 닦기, 봉합하고 남은 실 가위로 잘라주기 등등... 어찌 보면 쉬워 보이는 일이다. '꼭 레지던트가 이걸 해야 되나?'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수술 보조야 말고 외과계열 레지던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같은 수술을 오십 번 백번씩 보게 되면 그 수술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교수님이 수술할 때 중요한 혈관들을 어떻게 피해 가는지 어떻게 잘라야 주변 장기에 손상이 덜한지 이런 것들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수술 보조를 하면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 숙련도가 늘수록 교수님이 간단한 봉합부터 조금씩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일을 맡긴다. 그렇게 레지던트 4년과 펠로우 2~3년의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서젼(surgeon, 수술하는 의사)이 탄생하는 것이다.
수술이 끝나면 인턴은 환자를 데리고 나갈 침대를 가지고 와서 환자 깨우는 걸 보조한다. 환자가 깨면 마취과 레지던트 선생님과 함께 회복실로 환자를 데리고 가면 된다.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수술방이 처음인 인턴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시작부터 말썽이다.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침대를 끌고 다녀 본 적이 없기에 침대를 끌고 가다가 바퀴에 발가락이 찍힌다. 옆에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괜찮냐고 물어본다. 솔직히 발톱이 빠진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침대로 지 발 찍어 놓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한심한 인턴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기에 ‘괜찮습니다’를 연발하며 침대를 끌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다.
먼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산소 수치를 측정하는 기계,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기계,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를 환자 몸에 붙여야 한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만 역시 몇 번 해본 적이 없는 일이기에 익숙하지가 않다. 자꾸 손이 꼬이고 잘 붙지도 않는다.
“이건 제가 할게요. 저기 저 침대만 밖으로 빼주세요.”
레지던트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잘하고 싶지만 모든 게 낯설어서 잘 되지가 않는다. 침대를 빼놓고 돌아와서 마취 보조를 하고 환자의 수술 부위 소독을 한다. 다행히 이 과정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이제 다른 방에 환자 들어가는 거 도와주시면 돼요. 수고했어요.”
다행히 그날 내가 제일 걱정했던 수술 보조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에 침대 바퀴에 발을 3번 더 찍혀서 하루 만에 총 4번 발이 찍혔다. 발톱이 빠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발도 아팠지만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침대로 발가락이나 찍어대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더 힘들었던 하루였다.
수술방 첫날에는 수술 보조를 하지 않는 엄청난 행운을 누릴 수 있었지만 둘째 날까지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수술은 호랑이 교수님으로 유명한 교수님의 수술이었다.
“똑바로 잡아!!! 더 세게 당겨”
“더 세게!! 아예 기대면서 당겨. 기대라는 말이 뭔지 몰라?!!”
“아니 그건 그렇게 잡지 말고 이렇게 잡아. 똑바로 좀 잡으라고!!”
“아니 그건 그렇게 잡지 말고!!!!!!!! 이것도 못하면 네가 이송기사랑 다를 게 뭐야? 이송 기사를 데려와서 수술 보조를 시켜도 너보다 잘하겠다.”
나는 정말 수술 내내 혼났다. 내가 유일하게 욕을 안 먹을 때는 바로 옆에 레지던트 선생님이 욕을 먹을 때뿐이었다.
“넌 뭐하냐. 잘 좀 잡아. 그러면 안보이잖아. 너 이제 3년 차야 왜 이것도 못해?”
수술이 끝나고 수술 내내 욕을 먹었던 나와 레지던트 선생님은 멍한 상태로 수술방 밖으로 나와서 다음 수술을 준비했다. 그 뒤로 2번 정도 더 욕을 먹은 뒤에야 나는 수술기구를 잡는 노하우를 비로소 익힐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아주 가끔씩만 욕을 먹었다. 좀 웃기긴 하지만 하루 만에 욕을 덜 먹게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했다.
이렇게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이 지나고 수술방이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수술방 인턴 생활은 정말 괜찮았다. 수술 보조가 많긴 했지만 그 사이에 휴식 시간도 충분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로는 그렇게 크게 혼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4월의 인턴인 나에게는 편한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수술 보조 사이에 있는 시간 동안 그저 쉬지 말고 수술방들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필요한 곳에 들어가서 돕기로 하였다. 수술 보조가 끝나고 항상 수술방들을 한 바퀴 쓰윽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직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수술방이 있거나 환자를 깨우고 있는 수술방이 보이면 안쪽에 들어가서 도왔다.
"어? 인턴 선생님 콜 했어요?"
"아닙니다. 수술 보조 끝나고 나오던 찰나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돼요", "인턴의 미덕은 일이 없을 때 조용히 숨어서 쉬는 거야 인마, 열심히 안 해도 돼" 등의 말씀을 해주셨다. 마지막 주에 이런 내 모습을 본 교수님이 나를 크게 칭찬해주시면서 내 수술방 인턴 생활은 끝이 났다.
초반엔 정말 혼이 많이 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2주였다. 2주 동안 열 번도 넘게 침대 바퀴에 깔렸던 내 발톱까지 멀쩡했으니 어쩌면 오히려 운이 굉장히 좋았던 2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