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턴은 당직을 선다. 그건 지금 내가 돌고 있는 외과 수술방도 마찬가지다. 외과 수술방의 경우는 수술방 당직을 선다. 수술방 당직은 밤에 생기는 모든 응급 수술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 당직을 '로또'라고 부른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밤에 수술이 없다면 이보다 편한 당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에서 꽝의 확률이 당첨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듯, 외과 수술방 당직의 밤 또한 편한 날 보다는 한숨도 못 자는 날이 훨씬 많다.
나의 수술방 당직 역시 대부분 수술로 가득 차 있었다. 첫 번째 수술은 정형외과 수술이었다. 환자 침대를 끌고 들어가서 환자를 옮기고 '모니터링'이라는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검사를 하는 것 까지는 똑같다. 다만 정형외과는 그 뒤가 다르다. 수술 부위가 주로 팔, 다리이기 때문에 소독을 하는 동안 그 부위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수술은 다리 수술이었는데, 나는 사람의 다리가 그렇게 무거운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들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팔이 덜덜 떨려왔다.
“놓치면 안 돼요. 잘 잡아주세요.”
고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넵 알겠습니다!”
씩씩한 대답과는 다르게 내 팔은 점점 더 떨려왔다. 진짜 더 이상 못 들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1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다리를 같이 잡아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이제 내려놓으셔도 돼요”
나는 정말 다행히 별일 없이 다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오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득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한 내가 수술방을 잘 돌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이제 나가보셔도 돼요.”
정말 운이 좋게 나는 수술 보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형외과는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친구들을 선호하며, 상대적으로 작고 힘이 약한 친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힘이 약해서 수술 보조를 안 시켰나.. 이런 식으로 감점을 당하나..’
‘다리를 오분도 제대로 못 들 정도로 힘이 약한데 앞으로 다른 수술들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착잡했다.
정형외과 이후에 일반외과 수술이 두 개 더 있었고, 수술이 끝난 뒤 나가서 조금 쉬려던 찰나에 뇌출혈 환자가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경외과 수술 중에서도 가장 긴박한 수술인 뇌출혈 수술 같은 경우에는 정말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수술기구들을 준비한다. 일반외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머리 수술기구들인데 인계를 잘 받은 덕분에 큰 문제없이 기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가 올라오고 나는 환자와 함께 수술방에 들어갔다.
예상했다시피 신경외과 수술은 외과수술과는 상당히 많이 다르다. 그리고 신경외과 수술이 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짧게 자르세요.”
“더 짧게.”
“끝까지 보고 잘 좀 잘라 봐요.”
“아니 머리카락은 왜 같이 자르는데???!”
“잘 좀 닦아 봐요.”
“아니 피 나는 곳을 닦으라고, 여기!!! 여기!!”
“좀 빨리 좀 잘라요. 자르는데 한 세월이네..”
등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외과를 처음 돌 때 더 많이 혼나기도 했고, 수술방은 원래 혼나면서 배우는 곳이라고, 자기는 쌍욕까지 들어봤다는 친구의 조언 덕분에 멘탈이 깨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점점 신경외과 수술에도 익숙해졌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 마지막 봉합만이 남자 여유가 생긴 전공의 선생님은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경외과 수술은 처음이에요? 괜찮아요. 원래 처음엔 다 서툴러요”
“저는 지나치게 막 자르다가 교수님한테 크게 혼났었는데 차라리 선생님처럼 신중하게 천천히 하는 것이 나은 것 같아요.”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 선생님께서는 수술이 끝나고 수술방에서 나가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나에게 던지셨다.
“선생님은 처음 의대 올 때 의사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줄 아셨어요?”
어느덧 시계는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공의 선생님의 한마디에는 힘든 것에 대한 한탄보다는 이렇게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문득 신경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간까지 치열하게 수술 보조를 한 나도 조금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새 한숨도 자지 못한 정말 힘든 날이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