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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8. 밤에도 수술은 계속됩니다

모든 인턴은 당직을 선다. 그건 지금 내가 돌고 있는 외과 수술방도 마찬가지다. 외과 수술방의 경우는 수술방 당직을 선다. 수술방 당직은 밤에 생기는 모든 응급 수술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 당직을 '로또'라고 부른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밤에 수술이 없다면 이보다 편한 당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에서 꽝의 확률이 당첨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듯, 외과 수술방 당직의 밤 또한 편한 날 보다는 한숨도 못 자는 날이 훨씬 많다.       


 나의 수술방 당직 역시 대부분 수술로 가득 차 있었다. 첫 번째 수술은 정형외과 수술이었다. 환자 침대를 끌고 들어가서 환자를 옮기고 '모니터링'이라는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검사를 하는 것 까지는 똑같다. 다만 정형외과는 그 뒤가 다르다. 수술 부위가 주로 팔, 다리이기 때문에 소독을 하는 동안 그 부위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수술은 다리 수술이었는데, 나는 사람의 다리가 그렇게 무거운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들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팔이 덜덜 떨려왔다.     

 “놓치면 안 돼요. 잘 잡아주세요.”     

 고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넵 알겠습니다!”


 씩씩한 대답과는 다르게 내 팔은 점점 더 떨려왔다. 진짜 더 이상 못 들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1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다리를 같이 잡아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이제 내려놓으셔도 돼요” 


 나는 정말 다행히 별일 없이 다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오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문득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한 내가 수술방을 잘 돌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이제 나가보셔도 돼요.”     

 정말 운이 좋게 나는 수술 보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형외과는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친구들을 선호하며, 상대적으로 작고 힘이 약한 친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힘이 약해서 수술 보조를 안 시켰나.. 이런 식으로 감점을 당하나..’

 ‘다리를 오분도 제대로 못 들 정도로 힘이 약한데 앞으로 다른 수술들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착잡했다. 

 정형외과 이후에 일반외과 수술이 두 개 더 있었고, 수술이 끝난 뒤 나가서 조금 쉬려던 찰나에 뇌출혈 환자가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경외과 수술 중에서도 가장 긴박한 수술인 뇌출혈 수술 같은 경우에는 정말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수술기구들을 준비한다. 일반외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머리 수술기구들인데 인계를 잘 받은 덕분에 큰 문제없이 기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가 올라오고 나는 환자와 함께 수술방에 들어갔다.      

 예상했다시피 신경외과 수술은 외과수술과는 상당히 많이 다르다. 그리고 신경외과 수술이 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짧게 자르세요.”

 “더 짧게.”

 “끝까지 보고 잘 좀 잘라 봐요.”

 “아니 머리카락은 왜 같이 자르는데???!”

 “잘 좀 닦아 봐요.”

 “아니 피 나는 곳을 닦으라고, 여기!!! 여기!!”

 “좀 빨리 좀 잘라요. 자르는데 한 세월이네..”


 등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외과를 처음 돌 때 더 많이 혼나기도 했고, 수술방은 원래 혼나면서 배우는 곳이라고, 자기는 쌍욕까지 들어봤다는 친구의 조언 덕분에 멘탈이 깨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점점 신경외과 수술에도 익숙해졌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 마지막 봉합만이 남자 여유가 생긴 전공의 선생님은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경외과 수술은 처음이에요? 괜찮아요. 원래 처음엔 다 서툴러요”


 “저는 지나치게 막 자르다가 교수님한테 크게 혼났었는데 차라리 선생님처럼 신중하게 천천히 하는 것이 나은 것 같아요.”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 선생님께서는 수술이 끝나고 수술방에서 나가기 전, 한 가지 질문을 나에게 던지셨다.


 “선생님은 처음 의대 올 때 의사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줄 아셨어요?”


 어느덧 시계는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공의 선생님의 한마디에는 힘든 것에 대한 한탄보다는 이렇게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문득 신경외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간까지 치열하게 수술 보조를 한 나도 조금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새 한숨도 자지 못한 정말 힘든 날이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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