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턴의 시간- 6. 헬프 좀요

아마 다른 모든 병원에도 있겠지만 우리 병원의 인턴들 사이에는 '헬프'라는 제도가 있다. 병원은 특성상 한번 응급 상황이 터지면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질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인턴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아지거나 술기를 여러 번 실패해서 다른 동기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우리는 이 헬프를 사용한다. 솔직히 인턴 시작 전 나는 이 제도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헬프를 친 동기가 있을 경우 가서 도와줄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술기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보다 큰 게 우리 인턴들인데 과연 헬프를 친다고 올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갈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인턴생활은 ‘경쟁’이었다. 점수를 위해서 경쟁하고 내가 원하는 과에 가기 위해서도 경쟁하는 그런 무한경쟁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헬프라는 것에 응해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누가 자신의 경쟁자를 위해서 자신의 일을 미뤄주고 도와주러 올까? 이 생각은 내 동기 인턴들의 행동을 보고 싹 바뀌었다.     

 우리 인턴들은 3월 1일 00:0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 우리 중 7명의 인턴들은 밤 12시부터 당직을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날의 당직이었다. 늦은 밤부터 당직을 시작해서 인지 아니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날 밤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당황스러운 일은 항상 예상치 못할 때 발생하더라.     

 병동에서 소변 줄을 꼽는 것은 인턴의 일이다. 소변줄 꼽기는 그렇게 어려운 술기는 아니다. 대학생 시절 모형을 상대로 수백 번 연습하기도 하였고, 딱히 복잡하지도 않다. 다만, 특출 나게 환자가 전립선 비대증이 매우 심할 상황에 소변줄 꼽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술기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첫 당직 날, 불가능에 가까운 그 상황을 만났다.      

 소변줄이 정말 안 들어갔다. 좀 더 힘을 줘서 세게 넣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힘으로 밀어 넣을 경우 요도에 손상이 생겨서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은 나였기에 그 선택지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헬프를 쳐보기로 했다. 새벽 2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어서 나는 동기들이 도와주러 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거 말고는 정말 답이 없었다.     

 'A 병동에 소변 줄이 정말 너무 안 들어가서 그러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는 분 있나요?'

솔직히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어, 경이 어떤 환자야?"     

 솔직히 너무 놀랐었다. 이 시간인데도 올 줄 몰랐는데... 

 "첫 근무 날이어서 잠이 안 오더라고"     

 동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5명의 동기가 더 도움을 주러 왔다. 나를 제외한 6명.. 당직을 서는 모든 인턴들이 한번씩은 왔다 간 것이다.     

 “마취 젤을 써보자”     

 “선생님 심호흡해보세요.”     

 등등의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모든 시도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외과 레지던트 선생님마저 실패하시고 비뇨기과에 컨설트를 넣는 것으로 일은 힘겹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때 느낀 고마움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 뒤로 나는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헬프를 나갔다.      

 “동맥혈 채혈 여러 번 실패했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콧줄이 들어갔는데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런 말들이 인턴 단톡 방에 보일 때마다 항상 빠르게 뛰어갔다. 그러면 거기에는 항상 나보다 먼저 도와주러 온 인턴 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다. 바쁜 시간대에는 2~3명 정도 그렇지 않은 시간대에는 10명이 넘게 와서 절반 정도는 그냥 다시 자기 일을 하러 가는 경우도 많았다. 집단 지성의 힘은 정말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분은 혈관이 많이 움직이네."     

 "혈관을 한쪽으로 몰아서 고정시킨 다음에 찌르면 잘 되더라"     

 "바늘을 눕혀서 혈관 방향으로 찌르면 잘 나오더라. 내가 해볼게."     

 "콧줄은 40cm 정도에 걸리는 느낌이 나는데 이때 삼키라고 하면 그 뒤로는 잘 들어가"     

 "청진기로 콧줄 소리를 확인할 때에는 눕혀서 확인하면 잘 들려"     

 우리들은 헬프를 요청한 동기들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했다.     

 "아니.. 7번을 찔렀어요. 처음에 선생님이 2번 실패하고 똑같은 옷 입은 다른 사람들이 와서 한번씩 다 찌르고 가는데 아무도 피를 못 뽑는다고요!! 찔리는 환자 생각도 좀 해줘요. 아파 죽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도와주러 갔다가 나도 덩달아 실패해서 함께 혼나고 사과하는 죄송스러운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다 같이 빠따를 맞는 것이 혼자 교무실에 불려 가서 몇 마디 듣는 것보다 훨씬 낫듯이, 같이 혼나고 같이 사과했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일할 때는 함께 일하고 함께 실패해서 함께 혼나기도 하고 성공하여서 함께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식은땀을 닦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헬프를 다닌 덕분에 일 자체는 더 많아졌고 항상 다리가 아팠지만 기분은 훨씬 좋았다. 내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동기들이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한 것이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 날이면 가끔 같이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지원 희망 칸에 이비인후과를 쓰긴 했는데 이제는 사실 이비인후과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     

 “나도 B과를 썼었는데 이 과는 별로인 거 같아.. 그냥 딴 곳을 쓸까?”     

 “나 오늘 사고 처서 사유서 써야 돼 휴..”     

 “야 괜찮아 나는 이미 두 개 썼어.”     

 가고 싶은 과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기도 하였고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기도 하였다. 나의 인턴 동기들은 더 이상 나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나의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야 선배고 교수고 뭐고 동기가 제일 소중해”      

 선배들이 항상 하는 말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맞습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 말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 나를 이끌어주고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동기들이 어떻게 더 소중하다는 거지? 하지만 인턴을 하면서 정말 동기들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것도 동기들이었고 내가 고민들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조언을 받기도 할 수 있는 것도 동기들이었다.     

 인턴이 무한경쟁이고 동기들은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함께라는 건 정말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이전 05화 인턴의 시간-5. 통합 당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