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턴의 시간-4. 3월의 인턴은 고달파

 3월 1일부터 드디어 본격적인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아과 일은 할 만했다. 아니 굉장히 좋았다. 애초에 힘든 턴도 아니었고 선배가 인계를 잘 해준 덕분에 별 실수 없이 잘 해낼 수 있었다. 물론 사소한 실수는 있었다. 하지만 소아과 레지던트 선배님들은 이 사소한 실수들에 대해서 나를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입 인턴이 이 정도밖에 실수를 안 한 것에 대해 놀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선생님 소아과 하실래요?? 그냥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저 이런 말 아무한테나 하는 사람 아니에요! 잘 생각해봐요!”     

 소아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물론 소아과에는 관심이 없던 나였기에 에둘러서 거절했지만 이 질문은 정말 인턴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이다. 인계를 잘 해준 Y선배에게 정말 너무 감사해서 연락을 해서 밥이라도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갓 정형외과 1년 차가 된 Y선배의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떡진 머리에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밥보다는 잠이 필요한 모습이었다. 일과시간은 정말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문제는 당직이었다.      

 우리 병원은 통합 당직제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이게 뭔지는 이후의 글들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내가 소아과를 돌고 있더라도 당직 시간에는 내과나 외과 병동에서 피도 뽑고 심전도도 찍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3월의 인턴은 피를 잘 못 뽑는다.     

 첫날 채혈을 실패한 것이 떠올라서 처음에는 바늘을 잘 찌르지 못했다. 최대한 혈관을 찾아보려 했지만 혈관은 정말이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에 일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망설임과 혈관 찾기를 통해 딱 한 번만 찔러서 피를 뽑았다. 대략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명 피를 뽑을 동안 병동에는 5개의 채혈 처방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렇다. 3월의 인턴은 미숙하지만 병원은 3월이라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머뭇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때부터는 혈관을 정확히 못 찾아도 대충 이 정도일 것 같다 하는 곳을 푹푹 찔렀던 것 같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 내에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한 번에 뽑지는 못했지만 세 번 정도 찌르면 피를 뽑을 수 있었고 채혈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욕도 정말 많이 먹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심한 말을 듣지는 않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인턴한테 뭘 더 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고 한다.     

 우리는 당직실에 모일 때마다 피 뽑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 못 뽑겠다. 언제쯤 되면 잘 뽑을 수 있을까?”

 “보통 4월만 돼도 잘 뽑는데...”

 “난 4월이 돼도 못 뽑을 것 같은데 후...”     

 “오늘도 6번 찔러서 간신히 뽑았다. 미안해 죽겠다. 나 같아도 화날 것 같다”     

 등의 푸념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의 손목과 팔을 만져보며 혈관을 느끼고 찾아보았다.      

 채혈이 가장 어려웠지만 채혈만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환자가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할 경우 'levin tube' 일명 '콧줄'이라는 것을 삽입한다. 이 콧줄은 코를 통해서 들어가서 위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환자가 음식을 삼키지 못하여도 영양소를 흡수하게 할 수 있게 해 준다. 굉장히 좋은 기구이지만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첫 번째 단점은 들어갈 때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콧줄을 넣을 때 심하게 기침을 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콧줄을 다시 뽑으려는 분들도 많다. 이럴 경우 인턴 일을 오래 한 인턴들은 "환자 조금만 잡아주세요"하고 콧줄을 다 넣고 "이제 별로 안 불편하죠? 잘 들어갔어요. 고생하셨습니다."하고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예상했듯이 처음 인턴을 시작한 새내기 인턴들에게는 그럴 깡이 없다. 기침을 하거나 너무 고통스러워한다 싶으면 혹시라도 잘못 들어갔나 싶어서 뺏다가 다시 넣기도 하는데 당연히 뺏다가 넣어도 고통스럽기는 똑같다.     

 "당신 말고 잘하는 사람 데려와!!!!!!!!!!! 이게 뭐야!!!!! 원래 불편한 것이 어딨어?!!!!"     

 의식이 있으신 분들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만 병원에는 치매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는 콧줄을 꼽다가 멱살도 잡혀봤고 내 인턴 동기는 콧줄을 꼽으니까 할머니가 “너는 어미도 없냐”며 자기 얼굴에 침을 뱉었다면서 하루 종일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초반의 인턴들에게 더 고통을 주는 것은 콧줄의 두 번째 단점이다. 바로 잘못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청진기로 공기 소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야 '이걸 어떻게 못 듣지'할 정도로 확연하게 잘 들리는 소리이지만 역시 초반의 인턴들에게는 여간 듣기 힘든 소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 들어간 것 같은 콧줄도 소리가 애매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뺏다가 다시 꼽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소리가 들려서 고정을 했음에도 '내가 잘 들은 게 맞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러는 동안에도 일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우리가 잘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어가지만 잠을 못 자는 것보다는 내가 실수를 해서 환자에게 조그마한 문제라도 생기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우리가 실수를 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복수 천자'나 '트라키오스토미 튜브 교체'등의 술기들은 정말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을 하고 잠깐 쉴 틈이 생기면 동기들과 ‘피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뽑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소연하기도 하고 인턴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 정도가 된다. 운이 좋아서 새벽에 전화가 안 온다면 4시간을 잘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3시간 안팎으로 자고 다시 새벽 6시에 출근을 한다. 피곤할 만도 하지만 잘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인지 생각만큼 피곤하지는 않다. 우리들의 인턴 첫 주는 그랬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으며,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여서 힘들었던 한 주였다. 

이전 03화 인턴의 시간-3. 인계를 받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