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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 2. 인턴 준비

인턴을 선택한 후 친구들과 베트남 다낭에 여행을 다녀왔다. 인턴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놀아두라는 선배님들의 조언에 따른 것이기도 하였고 인턴 시작 전 스스로의 마음을 재정비한다는 의미도 있는 그런 여행이었다. 굉장히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제 인턴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불과 한 달에 약간 못 미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일명 ‘지옥’으로 불리는 인턴 생활에 대한 대비를 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체 인턴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병원 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나였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선배들한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푹 쉬고 오면 된다.",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와라" 등의 대답이나 "화만 잘 참으면 된다." 등의 추상적인 대답뿐이었다. 인턴이라는 ‘지옥’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미리 인턴 일을 해볼 수 있는 자리라도 찾아봤지만, 아직 면허증도 나오지 않은 의사에게 일을 맡기는 곳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간접 경험이라도 하고자 인턴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았다. 책 속의 인턴은 정말 고된 일상이었지만 이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는 정말 훌륭했다. 멋있었다.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힘이 나기보다는 주눅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책 속의 그들만큼 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정말 무어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안 될 듯했다.      

 그러던 중 구원의 동아줄과도 같은 ‘인턴을 잘하는 법’이라는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강의 신청을 했다. 강의료는 상당히 비쌌다. 50명 정도가 듣는 단체 강의인데도 시간당 수업료는 거의 웬만한 개인과외보다 비쌌다. 하지만 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있을 인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나기에, 미련 없이 이 강의를 질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의미 있는 투자였다.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말씀을 꼽자면, “수술방에서 수술할 때 보조하는 것을 인턴들은 정말 많이 무서워하는데 사실 정말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사람은 수술 보조를 하는 인턴이 아니라 인턴이 수술 보조를 하는 수술을 집도하는 교수님이야”이다. 이 얼마나 역지사지의 지혜가 담긴 말인가.     

 인턴이 실수를 해도 사실상 책임은 교수님이 지기 때문에 인턴과 함께 수술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은 매우 상세하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해준다는 내용을 덧붙여 주셨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교수님들도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한때는 인턴이었기에 인턴이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였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한 다음에 혼이 나더라도 뚱해 있거나 지나치게 멘탈이 깨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잘하겠습니다.”하고 계속 씩씩하게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선생님은 다양한 언변으로 우리의 긴장감을 풀어주셨다. 강의를 들으며 언제부턴가 인턴에 대한 인식은 ‘무지하게 힘들고 지옥 같은 무언가’에서 ‘힘들지만 나도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수많은 정보들이 아니라, ‘너도 인턴을 잘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위로였던 것 같다. 혹시라도 나의 독자들 중에서 인턴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나도 ‘걱정하지 마 너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나 같은 쫄보도 인턴생활을 무사히 해냈으니까 말이다.


 강의가 끝난 후 집에 와서 지난 의대 생활 6년을 회상해보았다. 예과 2학년 때 하루에 4시간씩 했던 해부실습, 본과에 올라와서 2주마다 있는 시험에 대비해 밤 새 공부했던 일들, 본과 2학년 때 시험이 1~2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지만 한번 시험을 치를 때마다 평균 40페이지 ppt를 60개 넘게 시험을 쳐서 정말 힘들었던 일, 본과 3학년 때 매주 목요일 날 밤을 새우면서 금요일의 발표에 준비하던 일들, 본과 4학년 때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동기들과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을 준비하던 나날들.. 이 6년의 힘든 시간들도 버텼던 내가 인턴생활이라고 버티지 못하겠는가?


 인턴이라는 벽이 너무 높아 보였기에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여서 유급 없이 졸업한 의대 졸업생이자 일 년에 3,000여 개가 밖에 안 나오는 의사면허증을 쟁취해낸 한 명의 예비의사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최고의 인턴이 되어 보자.’


 나 자신에게 다짐하며 잠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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