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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시간-5. 통합 당직

 옛날 옛적 인턴에게는 당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병원에서 살면서 24시간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게 인턴이었다고. 잠은 일 없을 때 잠깐잠깐씩 쪽잠을 잤다고. 그래서 농으로 인턴은 병원 안에서만 살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하면 ‘in-turn'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턴이 필수가 아닌 세상이 되었고 병원들도 늘어나면서 인턴 자리는 많아졌지만 인턴들의 숫자는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인턴이 미달인 병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이 인턴도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맞물려, 인턴들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정맥혈 채혈과 혈당검사 두 가지 일은, 혈당검사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시고 정맥혈 채혈은 전담 채혈팀을 만들어 채혈팀에서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인턴들을 각종 심부름에서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20장씩 복사해와', '이거 드라이 좀 맡겨주세요', '우리 집 비번 ****인데 가서 책상 위에 있는 CD 좀 갖다 주세요' 등의 잡무 말이다.      

 이렇게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밤에는 인턴 전부가 아닌 일부만 남아도 충분히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때쯤 인턴과 레지던트의 일주일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 특별법이 생기면서 인턴들은 이 법에 의거, 밤에는 병원에 인턴 전부가 아닌 1/3만 남아서 1명이 3명분의 일을 하자는 당직제도를 병원에 제안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마찰이 많았다고 한다. 일을 줄여줬더니 퇴근까지 하려는 모습이 굉장히 괘씸하게 비쳤다고. 하지만 인턴들의 지속적인 건의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처음 건의를 하셨던 선배님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통합 당직이라는 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병원은 10학번 선배님들이 인턴을 할 때 이 제도가 생긴 것 같다.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ㅠㅠ     

 이 통합당직제는, 당직이 아닌 인턴은 오전 6시~오후 6시까지만 일하고 그 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는 당직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1학번 선배님들이 인턴을 할 때 병원 실습을 돌면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직 저녁 7시밖에 안됐는데 우리 인턴 퇴근했다고 미친 거 아니냐고 하는 모습을 본 뒤로 유명무실한 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요즘은 정말 잘 지켜지고 있다.     

 통합당직제에서 인턴은 자신이 도는 과와 관련된 병동을 4개~5개 정도 맡는다. 소아과의 경우 소아과 병동 1개와 신생아 중환자실 외에도 외과 병동 1개와 내과 병동 1개 그리고 격리 병동 1개를 추가적으로 맡게 된다. 밤에는 환자들도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검사를 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턴 한 명이 5개 정도의 병동을 커버해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3, 4일에 한 번씩만 당직을 선다. 당연히 당직 다음날도 저녁 6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해야 하지만 인턴이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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