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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토랑 Nov 06. 2023

잘못 알려져 괴물이 돼버린 인생 멘토 쇼펜하우어

#1 쇼펜하우어 말 듣고 까칠하게 살면 바보 됩니다

철학자들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1_쇼펜하우어

"사랑은 성욕에 불과하다",


"남들에게 베풀지 말라",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낫다",


"오늘은 고약하지만 내일은 더 고약할 것이다"


누구나 알법한 유명한 철학자 중에 이런 과격한 말을 남긴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쇼펜하우어인데요.



"진짜 저런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의 책 원문을 읽어보면 진짜 저런 이야기를 대 놓고 합니다.


긴 글로 읽으면 쇼펜하우어의 냉소적인 덕담이 더 "헉"하고 다가오죠.


잔정이 사라지고 사는 게 팍팍해져서 그런지 요즘그의 인생론이 좀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면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 명언은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에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 전부터 가슴으로 와닿기도 한데요.


그런데, 짧게 잘린 쇼펜하우어의 인생 명언에 따라 까칠하게 살면 혼자 바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우리 삶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니까요.





쇼펜하우어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본 이유




쇼펜하우어가 삶은 곧 고통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 철학자였다면?


그는 흥미로운 철학자일 순 있어도 역사에 남은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순 없었을 겁니다.


쇼펜하우어가 삶이 곧 고통이라는 걸 입증하려고 했던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먼저 쇼펜하우어는 삶이 왜 고통이라고 생각했는지부터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를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깐 하던 일을 모두 멈추시고  질문 답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하시나요?



.

.

.


여러 답이 가능하겠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분들도 많겠죠?


조금 더 깊이 내려가보죠!


그렇다면 왜 굶어 죽지 않고 살려고 하시나요?


왜 우리는 매일이 고단해도 발버둥 쳐서라도 살아야 할까요?


너무 힘들다면 살아갈 의지를 포기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꼭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위해서 일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왜 꿈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그 꿈을 이루는 걸 왜 욕망하시나요?

 

명예를 위해서?


부를 위해서?


그렇다면 명예와 부는 왜 추구하시나요?


이 집요한 질문들이 바로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삶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인간은 사랑이든, 명예든, 돈이든 뭐든 그것을 왜 욕망하는지도 모른 채 욕망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꼬리 질문을 통해 깊이 파고들어 가면 우리는 내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어라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들이죠.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이 있기 이전에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삶의 의지는 이미 발동돼 있습니다.


우리는 시동이 걸려있으니까 어디든 가야 하는 자동차입니다.


누가, 왜, 시동을 걸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출발해서 나의 쓸모를 찾아야 하는 존재들인 거죠.


쇼펜하우어는 인간 이유도 모른 채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평생 고통받는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고통이 끝나는 죽는 날이 고통이 시작되는 태어난 날보다 더 낫다고 말했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욕망해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합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 원하는 걸 쟁취하지만 곧 싫증이 나 권태로움을 느죠.


돈은 더 많은 돈을, 권력을 더 큰 권력을,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게 만들면서 끝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니다.


쇼펜하우어가 보는 인간은 욕망하는 데서 오는 고통에 신음하거나, 권태로움에서 오는 고통에 신음하기를 반복하며 매 순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그는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 거고, 그토록 시니컬한 인생론을 남긴 겁니다.


여기중요한 지점인데요.


이렇게 보면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사는 건 어차피 고통이니까
발버둥 치지 말고 대충 이기적으로 살아"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인생이 고통스러우니까 서로 연민하면서 금욕적으로 살아"라고 말합니다.


반전이죠?


지금부터는 그가 우리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성찰에서 어떻게 동정과 연민을 강조하는지 그 맥락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전쟁 같은 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쇼펜하우어는 어려운 말로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하니까 저는 좀 더 쉽게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과장 진급을 바라보는 대리 두 명이 있다고 해볼게요.


김대리는 성실히 일하지만 사내 정치에 약한 직장인입니다.


반면 박대리는 일은 잘 못해도 입사 후 단 한 번도 회식에 빠지지 않을 만큼 상사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노련한 직장인이죠.


진급 발표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김대리는 박대리가 술자리에서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때 김대리의 기분은 어떨까요?


울화통이 터져서 박대리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내일 출근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이를 갈며 일찍 잠에 든 김대리는 꿈을 꿉니다.


자신이 박대리를 제치고 과장으로 진급해 승승장구하면서 임원까지 달고 퇴직하는 꿈이었죠.


그런데 김대리는 현실 같은 이 꿈을 통해 아무리 승진을 빨리 해도 직장 생활은 똑같이 고통스럽다는 걸 깨닫습니다.


1년, 2년 빠른 진급에 목숨 거는 게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죠.


김대리는 출근해서 술에 절어 터널터널 들어오는 박대리를 만납니다.


이때 김대리는 박대리에게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김대리는 분노를 느낄까요 아니면 연민을 느낄까요?


제가 비유적으로 말씀드렸지만 딱 이 지점이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포인트입니다.


내가 승진이라는 걸 왜 욕망하는지도 모르고 마치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집착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직장 생활은 어차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래서 결국 직장 생활에 초연해질 수 있다면,


나의 경쟁상대에게도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전쟁도, 한발 짝 떨어져서 보면 총칼을 겨누는 모두가 결국엔 피해자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발발했든 거기서 허망하게 죽어나가는 모든 이들은 처담한 비극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이죠.


쇼펜하우어는 나를 개별화해서 사고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지구적 관점에서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모두가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만물을 연민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그의 텍스트로 직접 보여드린다면 이렇습니다.

(어렵게 말하는 철학자들의 말에 진저리 나신다면 가뿐히 넘기셔도 좋습니다)



개별화의 원리에 대한 간파, 즉 의지가 그 모든 현상에서 동일하다는 것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 명확하게 되면, 이 인식은 곧 그 이상의 영향을 의지에 끼치게 된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의 눈앞에 걸려 있던 마야의 베일, 개별화의 원리가 없어져서, 그 사람이 이미 자기와 남을 이기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도 자기 고통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관심을 가지며, 그리하여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남들의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면 자진하여 자기를 희생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이러한 사람은 모든 존재자 가운데에서 자신의 가장 깊고 참된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무한한 고통까지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전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쇼펜하우어,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2020 P. 439




쇼펜하우어는 삶을 전쟁으로,


모든 인간을 무의미한 전쟁에 붙잡혀 간 병사로 본 거고,


이 전쟁을 끝내는 건 상대를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참혹한 전쟁에서 고통받는 서로를 연민하며 전쟁의 무의함을 깨닫고 모두 함께 총칼을 내려놓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가 나의 명예, 나의 재산, 나의 사랑 같은 헛된 욕망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맥락입니다.


쇼펜하우어는 헛된 욕망을 추구하면서 못 가졌다는 고통과 가져도 별 거 없다는 권태로움에 빠져 평생을 소비하지 말고,


함께 고통받는 만물을 연민하며 금욕적으로 사는 게 고통으로 가득 찬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 겁니다.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는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빌드업을 한 거죠.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야심작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착안해 세계는 '의지'라는 절대적 힘에서 의해 돌아간다는 걸 철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했어요.


그 가운데 인간은 그 의지라는 맹목적인 힘에 떠밀려 살면서 왜 욕망하는지도 모른 채 욕망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면서 고통받는다고 말했죠.


이러한 세계관 위에 쇼펜하우어는 "나 자신을 잊고 만물과 하나가 됨으로써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며 욕망하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불교의 범아일여 사상을 받아들여 독특한 인생철학을 완성했습니다.





쇼펜하우어라는 핑계




유난히 하루가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친 하루에 사는 건 고통이고 세상은 지옥이라고,


피곤한 인간관계 따윈 맺을 필요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 게 최고라고,


욕정에 불과한 사랑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건 시간 낭비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쇼펜하우어를 만나면 역사에 남은 유명한 철학자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대신해주고 있으니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강조한 건,


나와 같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타인을 연민하기 위함이었단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 불행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쇼펜하우어라는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을 비관하며 이기적으로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말 일그러진 인생 멘토 쇼펜하우어와는 이제 작별할 시간입니다.


진정으로 쇼펜하우어를 인생 멘토로 여기는 사람은 불행으로 가득 찬 삶을 경멸하며 잔뜩 찌푸린 얼굴이 아니라,


별 거 없는 일상에서도 너그러이 자비를 베풀 줄 아는 부처의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참고 문헌>

[쇼펜하우어 인생론 사랑은 없다], 쇼펜하우어, 이동진 역, 해누리, 2023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쇼펜하우어,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2020

[쇼펜하우어 철학적 인생론], 쇼펜하우어,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2020

[왜 살아야 하는가] , 미하엘 하우스켈러, 김재경 역, 청림출판, 2022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뮤얼 이녹 스텀프 외 1명, 이광래 역, 열린 책들, 2018

[즐거운 서양철학사], S.P 렘프레히트, 김문수 역, 동서문화사, 2017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역, 을유문화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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