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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히 Mar 27. 2024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야근의 이유

 - 04. 나에겐 의미 없는 퇴근시간

 자사연수가 끝난 주말에 부랴부랴 구한 방은 회사와 가깝다는 것 외에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그런 방이었다. 1층짜리 건물이었고 한옥을 개조하여 원룸형식으로 만든 집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건장한 성인 한 명이 몸을 비틀어 게걸음으로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나는 다행히 몸을 안 비틀어도 되었지만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씁쓸했었다.


  주말 밤이 되면 바로 옆방에서 프리미어리그 축구중계 소리가 들렸고, 골목길에 몇 명이 지나가는지 발소리만으로도 알아맞힐 수 있었다.


 창문은 있었지만 방범이랍시고 쇠창살을 쳐놨었는데,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방 안에서 보면 영락없는 감옥 같았다. 그나마 삐그덕 거리는 침대라도 있어서 독방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 있었다.


  보잘것없는 내 방과는 달리 회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멋지게 빛나고 있었다. 멋들어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허름한 원룸을 나오는 순간 나는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어깨가 절로 펴졌고, 걸음걸이에 당당함이 묻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본 나의 동기들도 나만큼이나 당당했었고, 빛이 났다. 나 이외의 동기들은 모두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었고, 부모님과 함께 서울이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나와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 오롯이 혼자였기 때문에 스스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그들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여유로움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우리 집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나 또한 이제 경제활동을 막 시작했었고 집의 사정을 알았기에 나 혼자 모든 걸 처리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내가 회사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혹시나 지각할까 봐 다른 동기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했고, 반면에 퇴근시간은 없었다.


 퇴근시간을 지켜봤자 집에는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었고, 또한 집에 빨리 간다 한들 혼자 먹는 저녁은 꽤나 쓸쓸하고 고독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시간을 조금만 더 보내면 선배들과 함께 외롭지 않은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퇴근시간에 그렇게 목메지 않았었다.


 남들은 야근을 하기 위해서 저녁을 먹거나 야근 후 회식을 했었지만, 난 저녁을 먹기 위해서, 그리고 회식을 하기 위해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야근을 했었다.

이전 03화 05:20 부산에서 서울행 KTX 첫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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