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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은 Nov 04. 2022

<고전정신> 생활2. 말 잘한다고 소문날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사례 1.

진우 씨는 오랜만에 대학 후배와 만난다. 취업한 이후로 대학교 지인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진우 씨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후배는 고사하고 친한 친구와도 만나지 못했다. 이번 만남도 후배가 진우 씨에게 먼저 연락한 탓에 겨우 성사된 만남이다. 곧 대학을 졸업하는 후배가 고민이 생겼다며 진우 씨에게 만남을 요청한 것이다. 후배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선배라니. 후배를 만난 진우 씨의 어깨가 약간 으쓱거린다. 후배는 진우 씨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민은 취업이다. 졸업이 코앞인데도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란다. 후배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우 씨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후배의 고민을 가만히 듣던 진우 씨는 그에게 일갈한다. “여태까지 취업 준비도 제대로 안 했으면서 걱정만 하면 어떡해?” 이어서 진우 씨는 따끔한 충고를 늘어놓는다. 후배는 처음에는 그의 충고의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진우 씨의 말투에는 계속 날이 서 있다. 충고가 계속될수록 후배의 표정은 점점 굳어진다.     


사례 2.

진우 씨가 회사에 다닌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다. 더 이상 진우 씨에게서 주니어 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연차가 쌓인 데다가 업무를 원활히 처리하는 진우 씨라 팀 내에서의 평판도 대체로 좋다. 단 한 부분만 빼고. 대부분의 팀원들은 진우 씨의 직설적인 말투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팀장도 이 사실을 의식하는지 진우 씨에게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다듬어 보라고 자주 권유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진우 씨의 말투는 얼마간 부드러워지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의 직설적인 말투는 특히 팀 회의에서 두드러진다.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가 마련되면 진우 씨의 말투는 평소보다 더 날이 선다. 팀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겠다 진우 씨는 이슈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고 늘어놓는다. 팀원들은 처음에는 그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디어 자체만 놓고 보면 꽤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우 씨는 직설적인 말투로 일관한다. 팀원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진다. 팀장은 또다시 머리를 감싸 쥔다.



팔방미인이 알려 주는 설득의 기술

말은 참으로 오묘하다. 글, 그림, 영상과 같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도 우리는 말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 어떤 표현 방법들보다도 말을 가장 자주 사용하고 제일 많이 사용한다. 방 안에 혼자 있을 때의 독백, 가족과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 친구와의 전화 통화와 같은 사적인 범주에서부터, 학교에서의 과제 발표, 회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국제적인 협상과 같은 공적인 범주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쉬지 않고 말을 생산해 낸다. 이렇듯 말은 사적인 자리와 공적인 자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소에서 발화된다. 진우 씨도 후배와의 사적인 자리, 그리고 팀 회의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모두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민회, 법정 등 다양한 장소에서 발화가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생산되고 생겨나는 말은 기본적으로 생각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리는 말을 매개로 삼아 우리가 가진 생각을 표현한다. 우리의 생각은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독백조차도 그렇다. 연극배우들은 독백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만, 결국에 그들의 독백은 관객의 귀에 흘러들어 간다. 다양한 장소에서 발화되는 말들의 이러한 동일성은 곧 생각의 수용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상대방이 소수이든 다수이든 간에,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가 표현하는 생각을 수용할지 수용하지 않을지를 결정한다. 우리의 말이 설득력을 갖춘 말이라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을 수용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우리의 생각을 수용하도록 만들려면 설득력 있는 말하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설득력이 말의 힘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정립된다. 생각을 담은 우리의 말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전달하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우리가 하는 말이 설득력을 갖출수록 그 말의 힘은 증대될 것이다. 그리고 말의 힘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사람, 즉 말 잘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이 순조롭게 수용하도록 만든다.

자신의 말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인들은 모두 말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들이 희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시중에는 설득의 기술에 관한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설득력 있는 말하기가 중요해진 지금 설득의 기술을 배워야 할 필요성도 증가한 것이다. 설득의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말해야 말 잘한다고 소문날까?”

설득의 기술에 관한 수많은 책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설득의 기술을 논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은 빠지는 법이 없다. 사실 그는 설득의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다. 그의 저서는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논리학, 문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천문학, 생물학과 같은 분야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족적이 남아 있다. 가히 팔방미인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통해 설득의 기술을 전수한다. 말하자면 『수사학』은 팔방미인이 알려 주는 설득의 기술이다.

원래 수사학이라는 학문은 고대 그리스의 지식인인 소피스트들이 가르치는 설득의 기술에서 유래했다. 지금 시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에서도 설득력 있는 말의 위력은 엄청났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였기에,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말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앞에서 살핀 『향연』을 상기해 보라.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는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가. 그들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당시의 지식인인 소피스트들에게 설득의 기술을 배웠다.     


대중 가운데 일부는 되는대로 그렇게 하고, 다른 일부는 버릇이 되어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두 방법이 다 가능하다면 체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또한 분명 가능할 것이다.

(천병희 옮김, 숲, 2017, 24쪽)     


문제는 소피스트들이 가르치는 설득의 기술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설득의 기술을 기술한 텍스트는 여럿 존재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체계성은 부족했다. 설득의 기술이 체계도 없이 전수되니 사람들은 말을 잘하더라도 단지 되는대로 또 습관적으로 잘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기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체계도 없이 전수되는 설득의 기술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리한다. 그 결과가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을 다룬 학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을 엄밀한 사변적 학문으로만 취급한다고 곡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유용성에도 주목한다. 수사학은 하나의 기술을 다룬 학문으로서 우리의 일상 속에 용해되는 실용성을 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학문으로서의 체계성과 기술로서의 실용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여기에 『수사학』의 고유한 가치가 근거한다. 학문으로서의 체계성과 기술로서의 실용성을 지녔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수사학』은 이후에 등장하는 설득의 기술에 관한 이론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이어 설득의 기술을 정리한 사상가들은 그를 모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시대도 예외적이지 않다. 현대에 쏟아져 나오는 설득의 기술에 관한 수많은 책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력 있는 말하기의 구성 요소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설득의 요소는 세 가지다. 말하는 사람인 발화자의 성격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 듣는 사람인 청중의 감정을 뜻하는 파토스(pathos), 말의 논리를 가리키는 로고스(logos)가 그것이다. 상대방이 우리의 생각을 수용할지에 대한 여부는, 우리가 설득의 세 가지 요소를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해서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첫 번째 것은 말하는 사람의 성격에 달려 있고, 두 번째 것은 청중이 어떤 심적 상태에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세 번째 것은 말이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말 그 자체에 달려 있다.

(같은 책, 31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첫 번째로 제시하는 설득의 요소는 에토스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에토스는 발화자의 성격을 의미하지만, 이것이 활발함이나 소심함 같은 표면적인 성격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에토스는 성격의 단순한 개념을 넘어 발화자의 전문성이나 성품까지 함의한다. 에토스는 발화자의 전체적인 실체를 정의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설득에서 에토스가 담당하는 역할은 발화자에 대한 청중의 신뢰도 증진이다. 뛰어난 에토스는 높은 신뢰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이 말할 때 보다 귀를 기울인다. 뛰어난 에토스를 함양한 사람의 말에 우리는 더욱 잘 설득되는 것이다. 지금 말하는 발화자가 어떤 사람인가. 지금 말하는 발화자의 에토스는 어떠한가. 즉 지금 말하는 발화자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말의 설득력을 산정한다. 이렇게 말의 설득력은 발화자의 에토스에 의해 차이를 나타낸다.

가령 우리가 손목이 아프다고 가정해 보자. 마침 우리 옆에는 요리사와 정형외과 의사가 있다. 손목이 아파 울상을 짓는 우리를 보고 요리사와 정형외과 의사는 각각 조언을 건넨다. 우리는 누구의 말에 설득될까? 당연히 정형외과 의사의 말에 설득될 것이다. 그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손목 통증에 관해서는 요리사의 에토스보다 정형외과 의사의 에토스가 훨씬 뛰어나다. 이 말인즉슨 정형외과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에토스에 기반한 신뢰도로 인해 정형외과 의사의 말은 막강한 설득력을 갖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요소들에 비해 에토스가 가장 효과적인 설득의 요소라고 설명한다.

두 번째로 설득력 있는 말하기를 구성하는 요소는 파토스다. 파토스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발화자가 청중을 설득하려면 청중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항상 감정을 느낀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한 우리의 내면의 감정은 부단히 요동친다. 이는 발화자가 우리를 설득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발화자의 말을 들으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발화자의 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은 고조되기도 차분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변주는 설득 여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말이 청중의 파토스와 보조를 맞출 때 설득은 이루어진다. 반대로 말이 청중의 파토스를 거스른다면 설득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똑같은 말이어도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보다 기분 좋게 말하는 사람의 말이 더 받아들이기 용이하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고려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청중의 파토스에 주의하는 발화자의 말은 설득력을 갖춘다.

마지막으로 논리를 가리키는 로고스가 설득의 한 축을 차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로고스는 말의 증명과 관련된다. 발화자의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를 증명하는 요소가 로고스다. 로고스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발화자는 정확한 논거와 적절한 근거로 말의 논리성을 구축해야 한다.

말의 논리성은 설득의 기본이다. 기본적으로 청중을 설득하려는 발화자는 논거와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청중은 이해하기 힘든 말보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에 더 쉽게 설득된다. 그들이 발화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득은 그것으로 실패한다. 발화자에게 말의 비논리성은 치명적이다. 논거나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말에 완벽한 논리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청중 앞에서라도 완벽하게 논리적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결국 목적은 설득이니까. 논리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청중의 귀에 발화자의 말이 논리적인 말로 들린다면 설득은 이루어질 수 있다.

정리하자면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사람은 설득의 세 가지 요소인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모두 활용해야 한다. 발화자는 청중에게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동시에 청중의 감정을 고려해서 말해야 하며, 기본적으로 자신의 말의 논리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설득의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활용된다면 청중을 설득하려는 발화자의 시도는 성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맞는 말만 해서는

발화자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활용할 때 청중은 설득된다. 이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설득에 있어 로고스 외 다른 요소, 특히 파토스를 포함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은 욕구와 용기보다도 이성을 중시했다. 당연히 발화자의 말을 들을 때도 얼마나 이성적으로 말하는가, 다시 말해 얼마나 논리적으로 말하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폈을 것이다. 플라톤에게서 말의 설득력은 로고스에 연유한다. 이는 플라톤이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이유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눈에 소피스트들은 말의 이성적 측면인 논리를 무시하고 청중의 감정만을 겨냥하는 사기꾼으로 보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피스트들은 논리 그 자체보다도 청중을 감정적으로 선동해 설득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었다. 로고스에 방점을 찍었던 플라톤이 파토스를 자극하는 소피스트들을 좋게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토스도 설득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한 것이다.

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플라톤 철학과 대조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플라톤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과 더불어 감정에도 상당한 비중을 둔다. 그는 스승의 고지식함을 탈피하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간에게는 이성뿐 아니라 감정도 중요하다. 따라서 그는 청중을 설득할 때에도 로고스 외 다른 요소인 파토스를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엄격한 이성 예찬자인 플라톤이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주장이다. 심지어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청중의 귀에 발화자의 말이 논리적인 말로 들린다면 설득이 이루어진다고도 주장했다. 플라톤 속 터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도 로고스를 완전히 결여한 말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플라톤의 입장과 동일하게, 로고스를 무시하는 소피스트들을 우호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토스가 설득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지도 않는다. 설득을 위해 논리적으로 말해야 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지나치게 논리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청중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예정된 일이다. 로고스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청중의 파토스도 로고스 못지않게 중요하다.     


감정은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과 관련하여 의견을 바꾸게 하는 모든 느낌이며,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수반된다.

(같은 책, 127쪽)     


한마디로 맞는 말만 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맞는 말을 듣기 좋게 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적지 않은 역사 속 위인들이 꿋꿋하게 맞는 말만 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로고스를 중시하는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법정에서 로고스에 기반해 맞는 말만 하다가 청중의 심기를 건드렸다. 청중의 투표 결과 소크라테스에게는 사형이 언도되었다.

맞는 말만 해서 손해를 보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소크라테스의 사례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맞는 말만 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비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를 늘어놓고 팀 회의에서 직설적인 말투로 일관한 진우 씨를 보라. 아마 후배와 팀원들은 점점 진우 씨를 멀리할 것이다. 후배와 팀원들의 파토스를 고려하지 않고 맞는 말만 고집한 진우 씨는 인간관계의 축소라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하려면 진우 씨는 앞으로 맞는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파토스를 고려하며 말해야 할 것이다.          



『수사학』에는 설득의 기술에 관한 여러 팁도 서술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나 명언을 활용하는 방법, 상대방과의 논쟁 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는 방법, 억양과 목소리의 크기, 유머의 효과 등 설득에 도움이 되는 팁을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려 주는 팁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의 활용이 전제될 때 가능한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파토스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들어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성적으로 맞는 말만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나의 말이 논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이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숙고하지도 않고 일단 뱉어 내는 세태가 만연하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맞는 말은 강요하는 말투, 무시하는 말투, 빈정거리는 말투, 나무라는 말투에 올라타 상대방을 공격한다. 감정이 상한 상대방이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과실은 말하는 사람에게 있는데 화살은 엉뚱하게도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을 향한다는 것이다. “나는 맞는 말을 했는데 쟤는 왜 못 받아들이지?” 친구와 친구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 모두 매한가지다. 다들 애먼 사람을 손가락질한다. 이처럼 듣는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는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내민다. 맞는 말을 하는 것만 신경 쓰지 말고 듣기 좋게 말하는 것도 신경 쓰라고. 상대방의 신뢰를 받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고, 그러면서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우리의 말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전수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말 잘한다고 소문날 거야!”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322)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난다. 마케도니아 왕을 진료하는 의사였던 아버지 덕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릴 때부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다. 17세가 된 그는 아테네로 건너가 플라톤의 제자가 되어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학을 계속한다.

플라톤 사후에는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가 마케도니아 왕의 초대를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곳에서 훗날 세계를 정복해 대왕으로 불리게 되는 어린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를 가르친다.

이후 아테네로 귀환한 그는 교육 기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다. 동시에 학문 연구에도 매진해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논리학, 수사학, 문학, 천문학, 생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이름을 남긴다.

말년에 다시 아테네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에 정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22년 숨을 거둔다.       


   

※ 추천 도서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시학』, 천병희 옮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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