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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은 Nov 04. 2022

<고전정신> 생활1.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자면

플라톤의 『향연』

사례 1.

“답장이 너무 늦어.” 성수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고충을 토로한다. 그는 대학교에서 사귄 여자 친구와 연락 문제로 종종 갈등을 일으킨다. 성수는 여자 친구의 연락에 재까닥 답장을 보내는 반면, 여자 친구는 성수의 연락에 뒤늦게 답장하기 때문이다. 성수가 연락을 보낸 지 몇 시간 뒤에야 여자 친구의 답장이 오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다. 문제가 지속되니 성수는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답장이 너무 늦어.” 예상외로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는 성수에게 연락 빈도가 중요하냐며 반문한다. 성수는 충격을 받는다. 성수는 사랑하는 사이라면 연락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랑의 감정을 못 이겨 연락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구는 반대다. 친구는 사랑과 연락은 별개라고 단정한다. 그는 아무리 사랑해도 연락은 늦을 수 있다며 성수의 여자 친구를 대변한다. 사랑과 연락의 관련성에 대한 둘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둘은 술을 마시며 길고 긴 대화를 이어 나간다. 테이블에 술병이 쌓일수록 사랑을 논하는 성수와 친구의 진지한 수다는 깊어만 간다.     


사례 2.

수진 씨는 남자 친구와 8년 동안 사귀는 중이다. 대학생 시절 처음 만나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둘은 알콩달콩 연애한다. 남자 친구와 오래 만나다 보니, 이제 수진 씨는 남자 친구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가족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편안함이 수진 씨를 괴롭힌다. 수진 씨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고충을 토로한다. “남자 친구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게 정상인가?” 그녀는 사랑이란 뜨거운 설렘이라고 생각한다. 편안함이 설렘을 밀어낸 지금, 수진 씨는 남자 친구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없다. 수진 씨의 생각에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친구는 편안함도 사랑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렘 대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단지 사랑의 성질이 변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사랑과 편안함에 대한 둘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둘은 술을 마시며 길고 긴 대화를 이어 나간다. 테이블에 술병이 쌓일수록 사랑을 논하는 수진 씨와 친구의 진지한 수다는 깊어만 간다.         


 

사랑을 주제로 한 진지한 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별의별 주제가 등장한다. 대화는 학교, 직장, 가족 및 주변 지인, 돈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로 시작된다. 그러다 테이블에 술병이 쌓이면, 일상적인 소재는 교육, 직업, 인간관계, 경제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된다. 우리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교육 시스템을 고민하고, 직업의 본질을 고찰하고, 인간관계의 공허함을 술회하며, 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 술자리에서의 진지한 수다는 이렇게 심화된다. 수다라는 단어에 진지함이 어울리는 수식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는 진지한 맛이 곁들여져 있다.

진지한 수다가 취하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 사랑이 빠지면 섭섭할 것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사랑은 빠지지 않는 주제 중 하나다. 다른 주제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진지한 수다처럼, 사랑을 주제로 삼는 진지한 수다도 일상적인 연애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성수와 수진 씨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개인적인 연애 경험담이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논의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진지한 수다는 머나먼 과거에도 이루어졌었다. 플라톤의 『향연』은 사랑을 주제로 한 진지한 수다를 담은 대표적인 고전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우리와 같이 『향연』의 등장인물들 또한 술을 마시며 사랑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플라톤의 『향연』. 서양철학의 시초인 철학자 플라톤이 쓴 저서라 그런지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렇지만 향연의 뜻은 단순히 말하면 그냥 술자리다. 『향연』은 『술자리』로 대체해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향연』은 등장인물들의 술자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고대 그리스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비극 작가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에서 술자리가 마련된다. 영광스럽게도 여기에는 아테네의 유명 인사들도 참석한다. 희극 작가, 의사, 그리고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까지. 많은 사람들이 술자리에 참석해 우승의 기쁨을 나눈다.

플라톤이 작품을 통해 묘사하는 술자리는 묘한 기시감을 풍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의 술자리 풍속은 지금 시대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흔히 보는 풍경과 비슷하게, 『향연』에서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늘의 주인공에게 넉살스레 축하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받은 주인공은 쑥스러워한다. 술자리가 성대하게 열리고 사람들은 1차로 밥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신다. 그들은 쓸데없이 결의에 차 다짐하기도 한다. “오늘은 과음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다짐이 무색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술자리는 점점 떠들썩해진다.     


우리는 오늘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하세. 그리고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 것인지는, 자네들이 그러기를 원한다면, 내가 기꺼이 제안하겠네.

(천병희 옮김, 숲, 2016, 29쪽)     


그러던 중 의사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주제에 관해 근사한 말을 미리 준비해 왔는지 주제도 자신이 제안하겠다고 요청한다. 사람들은 동의한다.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의사는 주제를 던진다. 그가 던지는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의사는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수다스러운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에게 의사의 질문은 기폭제와 같다. 안 그래도 입이 근질거렸던 사람들은 의사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의견을 쏟아 낸다. 그렇게 사랑을 주제로 한 진지한 수다의 서막이 오른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자면 어쩌고저쩌고…….” 순서가 정해지고 다들 사랑에 관해 한마디씩 던진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어쩌고저쩌고…….” 본격적으로 진지한 수다가 펼쳐진다. 사랑을 주제로 갑론을박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제한된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만으로 진행되는 영화 장르가 떠오르기도 한다.

첫 타자는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가치다. 무언가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가치인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우리는 사랑의 이러한 독보적인 가치성을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히 서고자, 부끄러운 행동을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동시에 고귀한 행동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의 인격적인 발전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사랑은 사랑의 주체가 발전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셈이다.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은 사랑은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한다. 인간에게 발전은 곧 행복이다. 때문에 사랑에 빠져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한 인간은 행복을 만끽한다. 인간을 발전시키고 행복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성질은,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다음은 술자리의 주인공인 비극 작가와 친한 친구 차례다. 비극 작가의 친구는 사랑을 두 유형으로 나눈다. 저속한 사랑과 고상한 사랑이 그것이다.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우열이 존재한다는 시각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저속한 사랑은 상대방의 영혼이 아닌 육체에 매혹되는 사랑이다. 저속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쾌락만을 추구한다. 그는 상대방의 영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저속한 사랑은 냄비처럼 쉽게 타오르고 쉽게 식는다. 사랑이 가변적이라는 뜻이다. 가변적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의 자격이 있을까? 비극 작가의 친구는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가변성을 내재한 저속한 사랑은 성숙하지 못한 사랑이다.

반대로 고상한 사랑은 상대방의 육체가 아닌 영혼을 좇는다. 고상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아름다운 성품을 추구한다. 육체보다 영혼을 바라보는 고상한 사랑의 위대함은 불변적이라는 데 있다.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고상한 사랑은 여간해서 동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랑은 오랜 기간 지속된다. 불변적인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자격을 얻는다. 성숙하지 못한 저속한 사랑에 비해 고상한 사랑은 성숙한 사랑이다.

비극 작가의 친구가 웅변을 끝내자 이번에는 의사가 입을 연다. 그는 의사답게 사랑에 관한 견해도 의학적 지식을 빌려 피력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사람의 신체는 두 부류로 나뉜다. 질병에 쉽게 감염되는 병약한 부위와 질병에 끄떡없는 튼튼한 부위가 그것이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병약한 부위를 관리하고 튼튼한 부위를 지켜야 한다. 사랑도 사람의 신체와 같다. 사람의 신체와 유사하게 사랑 또한 병약한 사랑과 튼튼한 사랑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랑을 이루려면 병약한 사랑을 지양하고 튼튼한 사랑을 지향해야 한다.

이처럼 의사는 사랑을 의학적 지식에 빗대어 거창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비극 작가의 친구가 들려준 사랑 이야기와 비슷하다. 저속한 사랑과 고상한 사랑이 병약한 사랑과 튼튼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자고 제일 먼저 제안한 사람의 견해라기에는 다소 밍밍하다.

의사의 바통은 희극 작가가 넘겨받는다. 의사가 그랬듯이 희극 작가도 특기를 살려 스토리텔링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나 보다.

희극 작가는 세상에서 사랑이 처음 시작된 경위에 관해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생김새는 지금과는 판이했다. 두 얼굴이 하나의 몸에 달려 있었고 팔과 다리는 각각 네 개였다. 팔다리가 지금의 인간보다 많아서였는지 그들에게는 강한 힘이 넘쳐흘렀다. 강한 힘을 소유한 만큼 그들은 자신감도 가득했는데, 얼마나 자신만만했냐면 신의 말을 듣지 않고 신에게 대들 정도였다. 인간의 오만한 반항은 계속되었다. 결국 참다못한 제우스 신이 그들에게 벌을 내려 인간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한 몸이었던 것이 각각 얼굴 하나에 팔다리를 두 개씩 가진 두 인간으로 나뉘어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였던 것이 떨어지면 다시 하나가 되려고 하는 법. 둘로 나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서 서로를 간절히 찾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찾아다니는 그들의 행동은 현재까지 끝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사랑이 시작된 경위다. 희극 작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는 다시 하나가 되려는 성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몸이었을 때의 그들은 신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정도로 강했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들은 완전성을 느낀다. 이 완전성이 아주 먼 옛날 한 몸이었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느끼는 완전성은 신에 대한 경외심마저 부차적인 감정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희극 작가의 스토리를 정리해 보면 사랑은 완전성에의 갈망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결국사랑은 좋은 것이다

이제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등장할 시간이다. 진지한 수다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들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다음 순서로 소크라테스가 나선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이란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사랑은 영혼과 육체 양쪽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훌륭하다. 고로 사랑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다. 이는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이 밝힌, 사랑에 빠진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견해와 결을 같이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사랑을 하지 않을 때보다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영혼과 육체가 동등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극 작가의 친구, 그리고 의사가 강조한 바대로 사랑에는 분명 우열이 존재한다. 앞사람들과 동일하게 소크라테스도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랑보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랑이 우위를 점한다고 판단한다.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운 사랑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랑이다. 사람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단계를 지나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고상하고 튼튼한 사랑, 즉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랑은 완전한 아름다움으로의 길을 활짝 열어젖힌다. 사랑은 완전성에의 갈망이라는 희극 작가의 견해와 유사하게, 소크라테스에게서도 사랑은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이렇게 매듭을 짓는다. 그의 발언은 술자리의 사람들이 여태까지 밝힌 견해를 종합해서 정리한 한편, 소크라테스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반영한 서설(敍說)이나 다름없다. 과연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철학자다운 해설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청년, 비극 작가의 친구, 의사, 희극 작가,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사랑을 차례대로 들어 보았다.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사랑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술자리에 범람한 것이다. 이들의 진지한 수다는 사랑이 무엇인지 논하는 지금 시대의 진지한 수다와 별로 다르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사랑을 이야기할 때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를 표출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성장한다.” “외모보다 성격이 중요하다.” “사랑은 나의 반쪽을 찾는 과정이다.”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을 설명하는 우리의 명제와 『향연』의 등장인물들이 주장하는 사랑에 대한 명제는 똑같이 다양하다.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견해 속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사랑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향연』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긍정적인 어휘와 연관시킨다. 발전, 고상함, 성숙, 행복, 완전성, 아름다움 등등. 그들의 견해에서 사랑의 부정적인 면은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사랑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같은 책, 102쪽)     


결국, 사랑은 좋은 것이다. 사랑의 주체가 발전해서든, 사랑은 성숙한 감정이라서든, 사랑은 완전해서든, 아름다움을 추구해서든 어쨌거나 사랑은 좋은 것이다. 그 의미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더라도 이것이 플라톤이 전달하는 메시지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플라톤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논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고수한다.          



때때로 우리는 술자리에서 사랑을 주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그러나 항상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술자리는 파한다. 아마 성수와 수진 씨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술집을 나왔을 것이다. 『향연』에서 펼쳐진 등장인물들의 진지한 수다도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종결된다. 그렇게 『향연』의 술자리는 파한다. 사랑에 대한 견해는 무척이나 다양하기에 확실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향연』의 술자리가 파한 지 200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사랑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사랑을 적확한 언어로 해명하려는 인간의 작업은 불필요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긴 시간 동안 정확히 무엇인지 규정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항상 사랑을 하면서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똑똑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가슴으로 사랑이 좋은 것임을 느끼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사랑을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미지의 영역인 사랑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태도는, 마냥 좋은 것인 사랑에 온몸을 내던지는 태도일 것이다.          



□ 플라톤 (Platon, BC 427~347 추정)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태어난다. 귀족 가문 출신인 그는 정치 입문을 준비하는 동시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을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에 적국 스파르타가 30인 참주를 내세워 과두 정치를 일삼자 플라톤은 정치 입문에 회의감을 느낀다. 이내 아테네는 30인 참주에 반발해 그들을 끌어내리고 민주 정치를 시행하지만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다. 결국 플라톤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치 입문을 완전히 포기한다.

정치 입문을 포기한 그는 아테네를 떠나 여행에 나선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여행하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다. 이후 플라톤은 철학에 전념,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연구와 교육에 몰두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국가』, 『향연』을 포함해 수많은 저서를 남긴 그는 기원전 347년에 삶을 마감한다.          



※ 추천 도서

플라톤, 『향연』, 천병희 옮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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