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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은 Nov 03. 2022

<고전정신> 사회3.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은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사례 1.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은 진희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한다. 일과를 마친 후 뉴스를 보는 것은 진희 씨 하루의 마지막 루틴이다. 그녀는 오후 아홉 시만 되면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움켜쥔다. 뉴스를 통해 하루 동안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과 사고가 보도된다.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는 진희 씨의 눈은 반짝인다. 훈훈한 뉴스가 나오면 그녀는 미소를 짓고 안타까운 뉴스가 나오면 그녀는 탄식한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뉴스가 보도된다. 어느 정치인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뉴스다. 뇌물을 꿀꺽하는 정치인은 역사 속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며 탐관오리에 관한 내용을 접할 때마다 진희 씨의 눈살은 지금처럼 찌푸려졌었다. 그런데 긴 세월이 흐른 현대에도 뇌물을 받는 정치인이 있다니! 진희 씨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든다. 진희 씨가 바라는 정치인은 뇌물을 받는 정치인이 아니다. 진정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사례 2.

다음 날에도 진희 씨는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는다. 오늘은 훈훈한 뉴스가 많이 나오면 좋으련만. 적당한 기대와 다소간의 우려가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텔레비전을 켠다. 어제와 똑같이 훈훈한 뉴스와 안타까운 뉴스가 연달아 보도된다. 그러다 뉴스를 보던 그녀의 미간이 움찔거린다. 오늘도 역시 진희 씨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정치인에 관한 뉴스다. 앵커는 어느 정치인이 회식을 하다가 식당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소식을 알린다. 그를 말리는 종업원에게 폭력까지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도 한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에서 정치인의 고함이 흘러나온다. 아직까지 저런 권위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니! 어제에 이어 진희 씨의 가슴은 거듭 답답해진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인 뉴스 시청이 오히려 점점 하루를 망치는 느낌이다. 진희 씨가 바라는 정치인은 왜곡된 권위 의식을 표출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진정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을 파악하라

어떤 의미로는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정치인이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우리 모두는 선거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투표의 형태로 정치에 참여한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벌이는 정치 토론도 정치 참여의 일환이다. 토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장소와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다. 지인들과 차를 마시며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 또한 훌륭한 정치 토론 중 하나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정치 활동을 펼친다. 우리는 모두 정치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보내는 내내 정치인으로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선거권을 행사하는 순간이나 정치 토론을 벌이는 순간에만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뿐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각자만의 본업을 따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M. Weber)는 일반 국민들을 임시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정치를 본업으로 두지는 않지만 특정 순간에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이다. 말 그대로 임시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는 각자만의 본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에 정치를 직업으로 삼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만약 모든 사람이 임시 정치인이라면 국가는 원활히 운영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정치 활동은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직업 정치인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다. 임시 정치인과 다르게 직업 정치인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정치에 투영하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에 하루 종일 참여할 여력이 없기에, 그들은 직업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해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직업 정치인의 본업은 곧 정치가 된다. 그래서 정치인이라는 명칭은 보통 직업 정치인에게만 쓰인다. 정치인의 존재로 인해 정치 활동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또 아니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많은 요건이 요구된다. 직업인들이 갖춰야 하는 역량 중 가장 중대한 역량인 전문성은 정치인에게 있어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정치인은 정치 활동의 전문성은 물론이거니와 윤리 의식과 특유의 성품까지 함양해야 한다. 정치 영역은 단순히 전문적인 영역을 넘어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영역인 탓이다. 아무에게나 정치를 맡기면 국민들의 삶은 불행에 가까워질 것이 뻔하다. 전문성, 윤리 의식, 성품……. 덧붙여서 정치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얼마간의 물적 기반까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요건은 이렇게나 다양하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을 파악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정치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우리는 이왕이면 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싶어 한다. 결국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테마가 된다.

문제는 우리도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한데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국가를 이끄는 중책을 맡겨야 하는가? 한마디로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지지해야 하는가?     


그런데 피지배자들은 어느 경우에 그리고 무엇 때문에 복종을 할까요?

(전성우 옮김, 나남, 2007, 21쪽)     


베버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논한다. 여기서 그는 어떤 정치인이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서술한다.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을 파악하는 일은 국민에게도 그리고 정치인에게도 긴요하다. 베버가 쓴 ‘복종’이라는 표현에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를 ‘지지’의 뜻으로 읽으면 한결 받아들이기가 쉽다. 국민은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악함으로써 자신들이 어떤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이 확실히 자리 잡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를 통해 정치인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뛰어난 정치인을 선출하기 위해서 또 뛰어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국민과 정치인이 알아야 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제시한다.     


고난도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카리스마

정치 영역은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영역이면서, 정치인이 마음먹은 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 고난도의 영역이기도 하다. 정치인이 자신의 뜻대로 정치 활동을 펼치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정치 활동의 난도가 이리도 높은 이유는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베버는 정치를 국가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베버에 의하면 국가는 구성원이 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다. 국가라는 집단 속에서 구성원들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권력은 무엇인가. 권력은 그것을 행사하는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면, 정치는 국가라는 집단 속에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에게 무언가를 강제함으로써 국가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행위다. 국가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풍족하게 경영하기 위해, 정치인은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강제한다. “사회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니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버리시길 바랍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세율을 올리겠습니다. 세금을 더 내시길 바랍니다.” 정치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행하는 사소한 행동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이전보다 세금을 더 내는 우리의 행동은, 정치 활동의 결과로 우리에게 강제된 특정한 행동이다.

이렇게 정치는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다. 이 사실은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강제하는 특정한 행동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힘들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가령 어떤 정치인이 고소득층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을 지원한다고 가정하자. 이는 곧 소득이 많은 국민에게 세금 납부라는 특정한 행동을 강제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은 만족하겠지만 세금을 더 내는 고소득층은 불만을 품는다. 정치인의 정치 활동은 이런 식으로 국민의 이득과 손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정치인이 직면한 정치의 높은 난도는 이러한 실상에 기인한다.

국가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힌 공간이다.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정치는 필연적으로 이 복잡한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다룰 수밖에 없다. 정치는 실타래를 푸는 고도의 작업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현명하게 풀어 줄 정치인을 원한다. 이 말인즉슨 실타래를 풀려는 정치인은 선제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인의 자격으로 정치 영역에 진입하려면 국민들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아야 한다. 고난도의 정치 영역에 진입하려는 사람은 먼저 권력을 획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베버는 정치인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를 제시한다.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획득하려면 권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베버는 권력 획득의 기반으로 전통, 법, 그리고 카리스마를 내세운다.

권력 획득의 첫 번째 기반인 전통은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당위성에 권력의 근거를 둔다. 대대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왕의 권력이 전통에 힘입은 대표적인 권력 유형이다. 과거에도 왕의 권력을 따랐으니 지금도 왕의 권력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봉건적 도그마 위에 전통적 권력이 세워진다. 이와 달리 과거가 아니라 명문화된 법률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받는 권력도 있다. 여기에서 권력 획득의 기반이 되는 요소는 법이다.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하는 법이 권력을 보장한다. 정치인은 법을 등에 업고 합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베버는 전통과 법보다도 강력한 요소가 있다고 강조한다. 바로 권력 획득의 세 번째 기반인 카리스마다. 카리스마는 간단히 말해서 사람 자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다. 이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함양하기 힘든 요소다.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베버는 카리스마야말로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획득하는 중대한 요소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에게 끌린다. 카리스마는 정치인에게 위대한 영웅의 느낌을 부여한다.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정치인을 보며, 국민들은 그에게 매혹되고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동시에 경외심까지 느낀다. 카리스마의 힘은 전통의 독단과 법의 강제를 뛰어넘는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전통과 법에 의할 때보다 사람 자체에 매력을 느낄 때 더욱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전통이나 법규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같은 책, 23쪽)     


카리스마는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획득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카리스마적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영양분으로 삼아 단단해진다. 또한 카리스마적 권력은 정치 활동에 필요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카리스마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권력 획득의 강력한 요소인 카리스마로 인해, 정치 활동을 하려는 사람은 비로소 고난도의 영역인 정치 영역으로 진입한다.     


권력을 감당하는 사람만이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이 되기 위한 권력 획득 기반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러나 정치에 있어 권력의 획득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이 되려면 권력의 획득보다 권력의 행사가 더더욱 중요하다. 카리스마만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권력의 획득에 뒤이어, 획득한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정치인의 자질을 결정하는 문제로 떠오른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인은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는 태도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다. 우선 지극히 개인적 목적과 관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 부류가 있다. 이들은 권력을 자신의 돈과 명예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고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은 대개 권력에 취한 자들이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듯이 권력에 취한 그들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결여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개인적 이해가 관여되니 정확한 판단이 내려질 리 없다. 그 결과 뇌물을 수수하거나 식당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잘못을 범한다. 진희 씨를 비롯한 국민들은 자신이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을 금치 못한다.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며 권력도취에 빠져 허영에 찬 자화상에 몰두하는 짓거리 등,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모든 행태는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행태입니다.

(같은 책, 107쪽)     


베버는 권력의 후광을 개인적 목적에만 비추는 정치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국민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강제하는 힘인 권력을 개인적 이해에 따라 휘두르는 행태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칫하면 뇌물을 수수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것 이상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국민이 아닌 정치인 자신만을 고려해 이루어지는 정치는 국민에게 해를 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울러 정치인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개인적 목적에 의해서만 행사되는 권력의 유효 기간은 다분히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거품이 꺼지면 그의 권력은 금세 박탈당한다. 이와 같은 권력의 허무함을 베버는 비극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들과 달리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 부류도 있다. 개인적 목적이 아닌 대의적 목적을 추구하는 부류다. 대의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은 자기 자신보다 국민에게 더 관심을 둔다. 이들은 오로지 국민들을 우선적으로 헤아린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은 개인적 목적을 넘어 대의적 목적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베버는 대의를 추구하는 태도 그 자체만으로는 여전히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목표의 추구와 목표의 달성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목표의 추구가 곧바로 목표의 달성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대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대의의 실현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베버는 대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은 더 나아가 대의의 실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의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대의의 실현이 훨씬 중요하다. 아무리 국민들을 생각해 정치 활동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종국에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는다면 실패나 다름없다. 대의적 목적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국민이 만족하는 결과까지 도출될 때 정치는 완성된다.

정치인은 개인적 목적으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나 대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의 완수는 권력을 활용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치인에게는 권력을 감당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앞에서 계속 밝혔듯이 권력은 국민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강제하는 힘이다. 권력은 엄청난 파급력을 내재한다.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면 폭력으로 변질된다. 권력과 폭력은 한 끗 차이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힘은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만이 감당할 수 있다.

권력을 감당하려는 정치인들을 위해 베버는 정치인의 역량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정치인의 역량은 열정, 책임감, 분별력이다. 먼저 열정은 대의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다. 대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면 대의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말하자면 열정은 정치 활동의 원동력이다. 대의에 대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정치인은 정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친다. 마치 자동차의 가속 장치인 액셀과 같다. 그렇지만 열정만으로는 권력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지나친 열정은 권력의 폭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로 액셀을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것이 책임감이다. 열정의 과열을 방지하려면 열정을 적절히 통제하는 책임감이 함께해야 한다. 열정과 책임감은 정치인이 권력을 감당하기 위한 두 가지 축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분별력은 현실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눈이다. 운전자는 주변 상황에 따라 액셀과 브레이크를 언제 얼마만큼 밟을지 판별한다. 정치에서도 열정과 책임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전제 조건으로 분별력이 요구된다. 정치인은 분별력을 통해 현실이나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열정과 책임감을 나타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열정, 책임감, 분별력을 갖춘 정치인만이 획득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한다. 파괴적인 힘이 잠재된 권력을 개인적 목적이 아닌 대의적 목적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데 쓰려면 그에 걸맞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국민들은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을 바란다. 권력을 감당하는 역량을 갖춘 정치인만이 진정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정치에 관한 고정 관념이 존재한다. 정치는 권력 싸움이라는 관념과 정치인에게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관념이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들이다. 스스로를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정치에서도 현실 감각을 중시해 위와 같은 고정 관념을 표방한다. 그들에 의하면 정치는 이해관계가 얽힌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싸움이다. 권력 싸움에서 이기는 이들은 이득을 취한다. 정치는 이득을 취하기 위한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꾸며야 한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정치인보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미지의 지배 아래서 정치인은 화법을 가다듬기도 하고 프레임을 이용해 정치 전략을 구상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치에 관한 고정 관념을 고집하는 이들은, 정치란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고 정치인에게는 이미지보다 뛰어난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을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매도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의 눈에 순진한 사람들은 정치에 비현실적인 낭만을 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또는 불가피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국민이 진심으로 바라는 정치와 정치인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이해관계 속에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애쓰는 정치와 국민 모두의 이해를 고민하는 정치. 인기를 끌기 위해 꾸며낸 이미지를 강조하는 정치인과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정치인. 진희 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와 정치인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은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묘사한 정치인의 모습과 상통한다. 아무리 권력 싸움과 이미지가 정치의 현실적인 요체라 하더라도 정치의 참된 본질을 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은 자신이 바라는 정치인을 파악하고, 정치인은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

베버는 1864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한다.

베버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이어간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외에도 베를린 대학,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한다. 정치, 경제, 역사, 종교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대한 베버의 관심은 사회과학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졸업 후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한 베버는 이후 프라이부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도중에 건강이 나빠져 퇴직한다. 그는 퇴직 이후에도 활발히 학문 활동을 펼치며 대표작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발표한다.

1918년에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지만 곧바로 건강이 악화된다. 결국 베버는 2년 뒤인 1920년 사망한다.



※ 추천 도서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전성우 옮김,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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