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다를 게 없었다. 공휴일로 지정된 국군의 날이라서 가족 모두 느긋한 늦잠을 즐기고 있었고 노는 날이 제일 바쁜 아들만 거실을 부스럭거리며 오간다.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본 릴스가 생각이 난다. 매월 1일에 하는 살림 루틴의 짧은 영상이다. 세탁기 내부를 청소하고 주방 후드, 식기세척기 청소하고 수세미 교체하고 식구들 칫솔을 새것으로 바꾼다. 뭐든 능동적으로 하면 그나마 낫겠지만 살림을 보면 그저 다 숙제같이 느껴진다. 깨끗한 하숙집정도로만 살자. 인테리어는 잘 모르겠고 냉장고만 잘 채워 넣자. 사실 그것만 해도 벅차긴 하다. 먹는 게 다 거기서 거긴 거 같아서... 어쨌든 1일이라는 것이 뭔가 시작하게 하는 설렘이 있긴 하다. 일상에 빠진 무기력함에서 건질 만한 장치를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말이다.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곧 풍요이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
어떤 순간에 내가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 그 순간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는 어떤 순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내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됩니다.
- 견 見 <여덟 단어> 중에서-
이 잠시 허락된 아름답고 화려한 짧은 가을을 공허에 뺏기고 싶지 않았다.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더하고 싶은 마음. 10월의 날들의 멋짐을 발견하며 순간의 합을 모아 보련다. 10월이면 찾아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곡이 있다. 원곡은 봄의 세레나데이지만 우리나라 한정 가을 특별곡이 되었다고 한다. (봄이든 가을이든 다 어울리지만 봄엔 벚꽃이 꽉 잡고 있으니...)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이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작년이었을까. 큰 아이 초등학교 공개 수업을 갔을 때였다. 공개 수업을 마치며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시고 아이들이 이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6학년이었으면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부르는 것을 보니 평소에도 선생님과 이렇게 많이 불렀음을 알 수 있었다. 해맑고 장난 가득하지만 눈길을 주면 피하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부르는데 얼마나 귀엽고 또 기특했는지 모른다. '얘들아, 너희들은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화장을 해서도 아니고, 옷을 잘 입어서도 아니고. 그냥 존재가 사랑스럽다.' 노래는 얼마나 또 아름다운가. 너를 만나는 세상 더는 소원이 없고 살아가는 이유 꿈꾸는 이유가 너라는데 이런 표현에 어찌 울컥하지 않을까. 멜로디는 또 어떠한가. 내가 지나가다 들었다면 걸음을 멈춰서 듣고 싶을 만큼 빠져든다. '아~아~아~아~'이 부분에서는 너무 행복해서 울어버리는 것도 표현에 미치지 못하게 느껴진다. 잠시지만 교실 가득 빈틈없이 채워지는 시공간의 아름다움에 홀려 들었다.
음악과 기억이 만나 특별해졌다. 다행이다. 의미를 찾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아무것을 찾게 되어서. 외로움이 불편하지만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하고, 여유와 무기력 그 어딘가에서 그래도 자기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몽글한 시간의 허그가 있어서 말이다. 그때 노래 부르던 딸은 중학생이 되어서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데 저녁 먹으러 오면 슬그머니 BGM으로 이 노래를 틀어봐야겠다. 딸이 뭐라고 할까. 왠지 슬그머니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