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는 스페인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한 구시가 (Old town)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80만 정도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제대로 된 도시란 소리다.
드높은 건물들, 빽빽한 차량들, 6월의 햇살에도 불구하고 정장을 입고 있는 직장인들.
발렌시아는 휴양지가 아닌, 사람들이 매일을 살고 있는 도시였다. 그 와중에 플리플롭을 신고,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관광객들은 모래 속에 섞인 구슬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심지어 내가 처음 갔을 때는 아직도 실내 금연이 금지되지 않았던 시기였고, 동양인은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Bazar라고 불리는 잡화상 같은 곳에서 일하는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던 때였다.
남미인들조차 대낮에는 잘 볼 수 없었고, 스페인 사람들보다 얼굴색이 좀 더 하얀 영국, 독일인들 조차 길거리에서 눈에 뜨일 정도였으니, 그 거리에 등장한 쨍한 색감의 여름 드레스를 입은 동양인 여자를 생각해 보라.
시선을 받는 건 영국에서도, 유럽을 여행할 때도 진절머리 날 정도로 겪었던 거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스페인은 또 좀 달랐다. 특히 더워서 그런지 거리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는 어르신들의 시선. 지나가던 개가 갑자기 두 발로 서서 걸어도 그렇게 집요하게 쳐다봤을까.
거기다 더한 건 Bazar라고 불리는 잡화상에 들어가거나 그 앞을 지나갈 때다. 마치 드론이 뒤에 따라오는 것처럼 시선이 따라붙었다. 일부러 무시하고 살 걸 찾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근처로 다가와 내게 중국말로 뭐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을 이해 못 하겠다고 영어로 대꾸하면 큰 소리로 그 사실을 가게 안의 사람들에게 중국어로 전달하기도 했다. 대충 중국인이 아니다, 혹은 일본인이다, 뭐 그런 소리였다.
가끔은 스페인 사람이 날 점원으로 착각하고 다가와 뭘 스페인어로 묻기도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얼마나 신기하겠어.
동양인 여자가 혼자 낮에 여름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서커스 수준으로 눈에 뜨일 텐데, 거기에 스페인 남자와 함께 거리를 누비기까지 하니 말이다. 내가 겪은 당시의 스페인은 확실히 영국보다 조금 더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봤자 타인의 시선들. 나 역시 벽에 걸린 그림인 듯 무시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부모님 역시 딱히 다르진 않았다는 거다. 아들이 해외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한 번도 스페인을 벗어나 아들을 방문해 본 적 없으신 분들이다. 당연히 영어도 못하신다. 딱 한국의 내 가족들처럼.
그들은 아들이 갑작스레 데리고 온 동양인 여자친구를 정중하게 맞이해 줬지만, 그 정중함이 반가움이나 환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무해하게 웃으며 어설프게 스페인어로 인사했고, 집에 초대 (받진 않았지만) 해주신 걸 감사했다. 그렇게 아주 짧은 인사가 끝난 뒤에는 빠른 스페인어로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아들의 방문을 기뻐했고, 그 역시 오랜만에 본 가족들과의 재회로 바빴다.
고장 난 인형처럼 미소를 얼굴에 새겨놓고, 나는 한참 동안 병풍이 되어 가족 상봉의 환희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눈치 있게 남편이 나를 방에 데려다주고 다시 부모님의 부름을 받아 사라진 뒤 나는 가만히 방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어릴 때부터 썼던 방이라는데, 참 낯설었다.
그제야 하나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도시라고 했는데도 왜 나는 그의 부모님을 만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그의 부모님 댁에 머물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두컴컴한 방 (참고로 스페인은 햇살이 뜨거워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집안 전체를 데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낮에는 보통 블라인드를 쳐서 햇빛을 막아 놓는다. 그래서 밖은 환하지만 내부는 어두운 집이 꽤 된다). 낯선 가구들. 복도를 통해 들려오는 낯선 말소리.
그곳에는 휴양지의 찬란한 햇살과 내 다름마저 감춰주는 외국인들의 물결도 없었다. 스페인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던 영어도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남편은 확실히 스페인 사람이었다.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한 낯선 두려움, 긴장과 불안함.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건 관람객으로 있다가 갑자기 무대 위로 끌려간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살아 날뛰는 현실 안에 내던져진 기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