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두 번째 가족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by 민토리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족들과의 불화에 시달렸던 사람은 늘 정에 굶주려 있는가.

결혼을 통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두 번째 가족을 만날 수 있는가.

딸 같은 며느리는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언어소통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관계란 건 있을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내게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요’다.




남편의 가족들을 만난 뒤, 첫인상은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 나름 열심히 노력하긴 했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애물단지 같고, 모난 돌 같은 나라도 나름 외부에서의 평은 좋은 편이었으니까.


가족들은 내가 반대표인 것도 몰랐지만, 학교에서는 모범생에 사교성 좋고 활발한 성격이라고 선생님이 굳이 부모님께 따로 연락까지 해서 칭찬할 정도였다. 물론 그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내게, ‘그런데 왜 집에서는 이따위냐?’하고 도리어 화를 냈지만.


어쨌건 밖에서는 잘 살아남으려고 스스로를 포장하는데 나름 능숙했다는 소리다.


스페인에서 나는 말 못 하고 못 알아듣는 초짜의 삶을 반복해야 했지만, 영국에서 한번 해봤으니 두 번째도 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내 곁에 든든한 조력자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나는 꽤 빠르게 스페인어를 익혔다. 프랑스어를 배웠던 짬밥과 라틴어에 근간을 둔 수많은 영어 단어들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말하는 건 서툴러도 뜻을 대충 알아듣고 이해하는 건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이해한다고 그걸 언어로 다시 능숙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시댁 가족들은 그때도 그렇고 아직도 내가 얼마만큼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지는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결혼 한 뒤 나는 스페인에 갈 때마다 시댁 가족들과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몸짓을 섞어가면서 대화를 하려 했고, 영국에 있을 때도 남편이 시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옆에 다소곳이 앉아 나름 대화에 참여하려고 애썼다.


초반에는 그런 내 나름의 노력이 통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좀 더 유해졌고, 나는 어쩌면 이렇게 새로운 가족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기대하기도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가끔 그들이 무해한 표정으로 내게 중국어에 대해 물어오거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무심한 소리를 할 때나, 인사한답시고 내게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듯 ‘나마스테’를 말할 때면 나는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분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넘기곤 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는 듯.


배탈이 심하게 나서 하루종일 앓아누워있다가 내려왔는데, 나름 나를 배려한다고 한 건지 ‘넌 매운맛을 좋아하니까’ 하고 매운 고추가 잔뜩 든 음식을 내 앞에 내밀어줬을 때는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기분에 밥상을 엎고 싶은 걸 꾹 참기도 했다.


그저 입맛이 없어 밥을 조금만 먹겠다고 했을 뿐인데,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더러 ‘당신이 한 심심한 요리가 쟤 입에 맞긴 하겠냐’하고 농담하듯 타박을 주고, 그 말에 시어머니가 불쾌해진 표정으로 나를 봤을 때는 진심으로 억울해서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다툼을 하다가, 그분들이 ‘Tu mujer’ (네 아내)라는 말을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을 못 알아듣는 척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남편이 시부모님께 내가 듣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화를 내면, 그분들은 ‘Ella no entiende nada’ (쟤는 아무것도 못 알아듣잖아) 하고 대꾸하셨다.

차라리 그 말처럼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 들었다면 나았을 텐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이 서서히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나는 점차 지쳐갔고,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스페인에 가는 게 조금씩 불편해졌다.


그래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집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가버린 아들이 몇 년 후에 난데없이 데리고 온 이방인 며느리. 그분들이 아는 동양인들이라면 잡화점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다였을 텐데.


스페인의 노/장년층은 중국인들이 스페인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스페인의 전통 시간 방식을 따르지 않고 시에스타에도 문을 여는 중국인들, 그들이 운영하는 스페인 바 (Bar - 보통 간단한 Tapas와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곳. 영국의 Pub과 비슷한 개념이다) 등, 그들은 어디 거리에 또 중국인 가게가 생겼더라, 하는 말을 아주 걱정스레 하며 혀를 차곤 했다.


그랬는데 그 비슷한 동네에서 온 며느리라니. 거기다 말도 안 통하는 며느리.


그분들은 어쩌면 남편이 타지에서 스페인 사람이나, 하다 못해 스페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유럽인 아내를 데리고 오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그분들이 즐겨 부르시는 '친구네 프랑스인/독일인 며느리'처럼 외국에 살아도 스페인에 종종 오며,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아는 며느리를 바랐을 지도.


그렇게 내가 두 번째 가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슬슬 거미줄에 걸릴 상황을 피할 각을 재기 시작할 때 우리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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