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분들인데 왜 나는 그토록 상처받았을까.
내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
물론 아이가 울 때 달래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키거나, 이유식을 먹이거나, 그런 일들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었지만, 어차피 부모는 우리이고, 아이는 한 명에 어른이 두 명이었으니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스페인에 두 아이와 함께 남기로 했을 때, 나는 그분들이 나와 함께 육아에 동참해 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남편의 잦은 출장 때문이었으니까.
스페인으로 오라는 제안을 나는 '그래, 우리가 너의 육아를 도와주마'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곧 나는 그게 동상이몽이었음을 깨달았다.
먼저 그분들에게는 정해진 스케줄이 있었고,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그 스케줄은 그대로 지켜져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들에게 '웬만한 일'에 포함되지 못했다.
첫째는 울기 시작하고, 시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킷을 그대로 내버려 둔 체 나가버리셨다. 시어머니 역시 아무런 얼굴 표정의 변화 없이 그런 시아버지를 따라 나가셨다.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혼자 식당에 남아 첫째를 달래 옷을 입히고, 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오는데 속에서 불덩이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왜 남의 아이를 때리냐고, 화를 내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어도, 영어도, 스페인어도 생각나지 않고 덩어리 진 감정만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어느 날에는 슈퍼마켓에서 함께 장을 마치고 나오다가 첫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길래 둘째를 일단 차에 태우고 시부모님께 양해를 구한 뒤 다녀왔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차로 급하게 다가가니 뒷좌석 카시트에서 둘째는 숨이 넘어가라 울고 있었고, 시부모님은 앞 좌석에 언짢은 기색으로 앉아계셨다. 아이가 왜 우느냐고 물으니, 그걸 왜 자신들에게 묻느냐는 표정으로, 모른다고 대답하셨다. 왔으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시면서.
차 안의 숨 막히는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이상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우는 아이를 달랬는데, 달래면서도 혼란스럽고 화가 났다.
왜 아이가 울도록 내버려 뒀느냐, 좀 안아줄 수는 없었느냐. 아이 상태라도 살피게 좀 멈췄다가 가면 안 되겠느냐. 입 안으로 맴도는 무수한 말들이 역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으로 응어리졌다.
설상가상으로 여느 때처럼 첫째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둘째를 데리고 밖에 나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유치원 연락을 받고 첫째를 일찍 집에 데리고 왔다고 연락하셨다. 부랴부랴 집에 돌아갔는데, 아직도 얼굴에 운 자국이 남아 있는 첫째의 뺨에 잇자국이 나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뭐냐고 물으니, 시어머니는 마치 처음 봤다는 듯, '그래, 잇자국 같네'라고 하셨다. 그럼 유치원 선생이 아무 말도 안 한 거냐, 하고 물으니, 그런 말은 없었고 첫째가 울고 열도 있는 것 같아서 집에 보냈다고 했다.
그럼 누가 얼굴을 잇자국이 날 정도로 물었는데 아이가 멀쩡히 놀아야 할까. 기가 차고, 화가 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한 뒤 시어머니에게 말을 전해 달라 부탁했다. 나 혼자 가면 제대로 설명을 못할 것 같으니 시어머니에게 함께 유치원에 가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렇게 유치원에 갔는데, 유치원 선생과 시어머니 두 사람 다 너무 태평하게 대화를 하는 거다. 유치원 선생이 원생 기저귀를 갈러 간 사이, 다른 아이가 첫째의 얼굴을 물었다, 아이들끼리 놀면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는데,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아이들이 그렇지, 하고 동조하신다.
'No te preocupes' (걱정 마라) 하는 소리를 반복하는데 기가 찼다. 걱정을 하지 말라니, 아이 뺨에 저렇게 선명한 자국이 남았는데 걱정하지 말라니. 준비해 온 스페인어로 항의하는 내게 그들은 마치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저 말만 반복했다.
시어머니에게 배신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훅, 하고 열이 솟구쳐 오르며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이 개 같은 상황도, 이 사람들도, 이 땅도. 모든 게 싫어졌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비행기표를 끊어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저녁에 남편과 통화하며 한참을 화를 내며 울었다. 남편은 곤란해하면서도 정 그러면 돌아오라고 말했다. 자신의 부모님에게 대신 말해주겠다고도 했다.
순간 우습게도 영국에서 어학 연수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외국인 학생을 돈줄 이상으로는 보지도 않던 영국인 호스트맘. 견디다 못해 어학원에 불만을 말하자, 호스트맘에게 따로 연락해서 잘 말해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내 하루는 더한 악몽이 되었지.
게다가 지금은 타인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돌아가면 필연코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되리라. 그럼 남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어 그런 관계의 단절을 겪어야 하는가.
그래서 참았다.
저녁에 시부모님이 다양한 모임 등의 이유로 나가시고 나면, 난 혼자 두 아이 밥을 먹이고, 첫째 목욕을 시키는 동안 둘째가 목이 터져라 우는 걸 들으면서도, 묵묵히 하루를 견뎠다.
그분들의 점심 식사 후 시에스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텅 빈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헤매면서도, 차라리 그렇게 지친 아이들을 품에 안고 벤치에 앉아 있는 게 마음 편했다.
그렇게 하나 둘 늘어난 상처가 깊게 패이는 걸 보면서 나는 서서히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