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전환점

by 민토리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이 생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기분.

영국에 와서 살았던 그 오랜 시간, 타지 생황이 힘들어서 울었던 적은 있어도 한국이 그리워서 울었던 적은 없는데, 임신한 동안에는 정말 펑펑 울었다.




있지도 않은 가상의 따뜻한 엄마가 그리워 울었고,

날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러워 울었다.

나 같은 엄마를 둬서 이 아이도 나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게 되면 어쩌나 싶어 두려워 울었고,

어린 시절 당했던 학대의 기억이 악몽이 되어 돌아와 자다 깨서 울었고, 이런 엄마를 두게 될 내 아이가 가여워 울었다.


심지어 국수가 먹고 싶고,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은데, 남편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외국 사람이라 그게 서러워서도 울었다.


물론 임신 후반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를 악물고 직접 미역을 사다가 미역국을 한솥째 끓여 냉장고에 차곡차곡 얼려두고, 출산 준비를 했었다.

15시간이 넘게 산통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혼자 버텼다.

아이를 출산하고 산모 네 명이 나눠 쓰는 병실로 옮겨진 뒤, 우리에게는 방문객 한 명 오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첫째를 출산하기 직전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던 까닭에, 남편이 2주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출근하자 집안이 텅 빈 기분이었다. 적응되지 않은 빈 집에 혼자 남은 나와 갓난아이.


잠이 든 아이를 거실 카펫 위에 눕여놓고 나는 하염없이 창밖만 쳐다봤다. 아무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차가 없으면 슈퍼마켓에도 갈 수 없는 한적한 곳의 정원 딸린 큰 집에 이사 오면서 나는 육아에 적당한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울어도 괜히 이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딱 좋다고.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집은 혼자 남은 엄마의 정신 건강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집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온전히 고립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나마 첫째를 낳고는 어떻게든 버티긴 했다. 아이가 5개월이 되었을 때는 파트타임으로 복직까지 했고, 정 못 견딜 때는 아이를 품에 안거나, 유모차를 끌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둘째가 태어났을 때. 그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첫째 때와 똑같은 상황인데, 대신 갓난아이 외에도 돌봐야 하는 두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생각은커녕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다가 저녁이 찾아오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났다.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는, 출장 일정이 나온 그날부터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시부모님이 그럼 스페인에 와서 시댁에 머무는 게 어떠냐고 먼저 제안해 주셨을 때 정말 감사했다.


내 출산 때도 와보기는 커녕 전화도 잘하지 않았던 내 가족들 보다 그래도 낫구나 싶었다.

그동안 서운했던 거야 둘째치고 그래도 먼저 오라고 하셨으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육아를 도와주시려나 보다, 그렇게 김칫국을 거하게 마시고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그렇게 나는 막 4개월이 된 둘째와 2돌을 넘긴 첫째를 데리고 스페인 시댁에서 3개월을 살았다.


스페인에 가기 전 나는 오래간만에 설레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어쩌면 내게도 조금의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

영국 집과 달리 도시의 구시가 (Old town)에 위치하고 있어 번화가는 물론, 갈 곳도, 공원도 근처에 많으니 적어도 심심하진 않겠다는 들뜸.

이참에 나도 스페인어를 마스터하자,라는 다짐, 등등.


남편과 나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첫째가 갈 수 있는 스페인 유치원도 알아봤고, 가지고 갈 수 없는 육아 용품도 미리 구매해서 배달시켜 놨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Expat group도 몇 군데 뒤져서 엄마/육아 모임에 미리 연락도 해놨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의 스페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함께 간 남편이 일주일 뒤 영국으로 돌아가고, 첫째가 유치원에 등원하기 시작하고, 딱 일주일.


나는 내 선택을 후회했다.

기대는 배신감이 되었고, 들뜸은 사라지고 실망과 분노가 자리 잡았고, 나는 영국에 있을 때보다 더 갑갑함을 느꼈다.


그건 전환점이라면 전환점이긴 했다.

시댁과 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골이 파이기 시작한, 그 전환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