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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15. 2023

남들도 다하는 연애

첫 연애란 어떤 걸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 걸까.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었지만, 주위에서 어찌나 떠들어 대던지 본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체험판만 수백 번은 해본 듯한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법, 누군가의 호감을 알아채는 법, 효과적인 고백 방법, 연인과 좋은 추억 남기기 좋은 데이트 코스 열 가지, 연인 사이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 백가지 등등. 그건 누군가의 경험담, 혹은 충고, 조언, 아니면 이루지 못한 바람. 


세상은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노래했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스스로 헤엄을 치고 있는 건지 그저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지도 모른 체 어설프게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그러다 어쩌다 닿게 되는 누군가가 내 운명의 상대이길 막연히 기대하면서.  




취업 전선도 다를 건 없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직종, 대기업 면접에 합격하는 법, 중소기업 취업의 장단점, 성공을 보장하는 창업 노하우, 단기간에 공무원 시험 합격하는 법, 대학원 진학할 때 고려해야 할 것 열 가지 등등. 


수많은 광고판이 주위를 둘러싸고 들썩였지만, 그 내부에 깔린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취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건 도피 혹은 도태를 말하는 거라고. 


누구는 눈만 맞아도 썸을 타고, SNS에 커플 사진도 서버 점검 하듯 순식간에 바꾸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온갖 모임에 참가해도 다른 이성과 차 한잔 못 마시는 것처럼, 취업 전선도 비슷했다. 누군가는 자동문 열리듯 회사가 알아서 모셔 간다는데, 누군가는 이력서 백장을 넣어도 받는 거라곤 불합격 통지서나 무응답.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 그것도 알아준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박사 과정. 

이 정도면 그래도 이력서에 붙일 만한 반짝이 스티커 정도는 되지 않을까. 주위에서 다들 취업 소식이 들리니 내게도 막연히 이 지루한 논문 쓰기의 터널을 빠져나가면 짜잔, 하고 기회의 문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문 뒤의 주인장이 까다로울지는 몰라도 그래도 결국에는 문이 열리겠지, 그렇게 희망회로를 돌렸을 때가 있었다. 


논문을 쓰는 틈틈이 작성하기 시작한 연구 기획서, 자기소개서 (cover letter), 업데이트 한 이력서 (CV). 신중하게 선택한 전공 분야,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교수와 연구진에 대한 공부. 해당 대학에 대한 자료조사 등등. 


정석적인 방법대로 준비했고, 열심히 화살을 쏘아 날렸다. 그중 누군가는 내게 문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내가 연애하고 싶다고 내가 마음에 드는 이성들이 알아서 내 앞에 찾아와 주지 않듯, 고용주들 역시 꼬시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정중하게 이런저런 이유라도 들이대며 거절해 주는 건 양반이고, 최악은 아예 반응조차 해주지 않는 곳이었다. 혹시 잘못 보내진 건 아닐까, 스팸통에 박혀 있는 건 아닐까. 고민고민하다가 연락을 해봤다가 그 자리는 이미 찼다는 소릴 들으면,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기분이 밑바닥으로 처박히곤 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불합격에 논문도 쓰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뒤숭숭해서 일단 논문을 끝내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영국 정부는 그렇게까지 인자하진 못했다. 빠듯한 기간으로 주어진 학생 비자가 만료되어 쫓겨나지 않으려면 그 안에 논문을 마무리 짓는 건 물론 취업까지 성공해서 취업 비자로 갈아타야 했다. 


계속된 실패와 시간제한까지 걸리자, 더 이상 내 전공이나 진로 희망 사항 따위는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었다. 


지원 분야와 대학/회사 이름만 바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찍어내서 이곳저곳에 다 뿌려댔다. 런던이며 다른 도시까지 몇 시간이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면접을 보러 돌아다녔다. 인성 테스트는 물론 실기 시험까지 보기도 했다. 취업 설명회는 거르지 않고 찾아다녔고, 면접관에게 미리 연락해 취업운을 점쳐보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Thank you for applying for.... Unfortunately/ we are sorry..." 따위로 시작되는 메일. 


그런 메일들이 쌓여갈수록 내가 희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신감, 그런 것들 위로 불합격 통지서들이 내려앉아 나를 덮어 버리는 기분. 그러다 종국에 남은 건 '실패'라는 단어. 


차라리 연애는 못하든 안 하든 그런다고 현대 사회에서 굶어 죽진 않겠지만, 취업을 못하면 당장 생활비와 숙소는 물론 한국에 돌아가 모든 걸 리셋해야 하는 상황. 


그래, 그때의 나는 사람이기보다 유기견 같은 심정이었다. 오라는 곳이 없어 어디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못 박힌 체 누군가의 인정 혹은 허락만을 기대하는 상황.


'누구든 좋으니 날 좀 데려가 주세요'


만약 가능했다면 이런 글이라도 목에 매단 체 런던 옥스퍼드 서커스 한복판에 서있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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