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고마워요, 유*브, 넷*릭스.

아무말로 끄적이는 근황

by Soo

한동안 뜸했다.

별 생각을 안 하고 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은 많았지만 쓰기가 싫었던 것 같기도 하며 생각은 많았으나 쓸 수는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유*브에 빠졌었다.

한창 클럽에 드나들 때 들었던 노래들을 뭉개진 세월만큼이나 뭉개진 화질로 들여다보며 지금 젊은것들은 모를 흥과 노스탤지어를 묵힌 기억 속에서 꺼내보았다. 모르는 가수도 모르는 노래도 모르는 가사도 없었던 그때의 내가 약 20년을 더 살고 난 지금은 놀라울만치 까막눈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기운 빠지는 것이었지만 그런대로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릴 수는 있었고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며칠 밤은 ASMR 방송을 보느라 지새웠다. 얼음이나 사탕을 깨물어 먹는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애 넷을 낳고 시원찮아진 이로는 해낼 수 없는 행위여서였을까. 내 턱관절이 얼얼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본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이튿날 아쉬운 대로 과자 쪼가리라도 바삭바삭 깨물어 볼 뿐이었다.

넷플*스에 빠졌었다. 지금도 그러한 편이다.

동네 동생이 제발 보라고 보라고 쌍 따봉을 날려준 "엘리트들"이 그 시작이었다. 지금? 왜? 갑자기? 스러울 정도로 맥락 없는 베드신이 게이건 남녀 사이건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통에, 핸드폰 거치대에 핸드폰을 끼우고 설거지를 하다가 뒤에서 스윽 나타나는 큰 아이 때문에 몇 번 식겁했다.
언젠가 한번 꼭 배워보고 싶은 스페인어는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도무지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도 욕 몇 마디는 외우게 됐다.
몇 해 전 재밌게 봤던 드라마들을 다시 봤다. 어제 내가 뭘 먹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몇 년간 기억력이 심하게 안 좋아진 내게는, 분명히 착실하게 전부 다 봤는데도 거의 매 장면이 새로웠다. 내가 둘째를 낳았을 적에 봤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메인에 뜨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검색해서 보기까지 했을까 싶지만, 아, 이 계정의 주인이 드라마를 좀 보기 시작하려나 똑똑하게도 알아챈 알고리즘이 열일을 했다. 몇 해가 훌쩍 지나 나는 아이를 몇 더 낳고 폭싹 늙어버렸는데 조인성, 공효진 배우는 여전히 멋졌다. 내용도, 배우들도, 배경 세팅도 너무나 세련되었다. 재밌게 봤다. 아, 이 드라마는 음악이 너무 좋았지 라고 끄덕이며. 아직 누를 다음화 버튼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 든든하다고 생각하며.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도 정작 방영할 시점엔 뜨문뜨문 보다가 지금에서야 나름 집중해서 보고 있다. 낮잠을 자야 할 시간에도 잠을 포기하며. 밤잠을 자야 할 시간에도 역시. 아깝지만, 피곤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느낌이다. 다음 날 또 그렇게 드라마에 빠져도, 그다음 날도 그러는 것을 망설이지 않게 된다.
ㅡ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 쓰자.
작가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 대사를 듣고는, 아이코, 나도 써야 하는데, 뭐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 뭐라도 써야지 라고 매 순간 생각은 하는데 방금 생각한 글귀를, 아이들이 나를 부르기라도 하면 새카맣게 잊곤 하는 것이 웃기고 슬픈 부분이다. 그렇게, 이상하게도 머뭇거리며 쓰고자 하는 의지를 넣었다 꺼냈다 하며 며칠을 보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새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즐겁고 신이 난다.

멍하니 몰입하며 나의 현실을 잠시 잊는 동안, 지어낸 갖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만들어 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기보다, 나와 상관없는 것들을 쓰고 싶다는 것이 맞다. 전혀 다른 사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면서 그 순간에는 내 마음도 다른 곳에 있다가 오면 좋겠다. 내 이야기에 몰두하며 다시 끄집어내는, 순간에 새겨진 자국들을 마주하는 것이 조금은 싫증 났다. 남이 지어낸 이야기들에 빠져 며칠밤을 새고 있는 주제에 그 이야기들이 쉽게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까지 하는 모양이다. 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쓸까 말까 망설이며 보낸 시간들은 그래서였다. 아무것이나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나 그랬듯 나는 아무것이나 쓰고 있다. 죄책감이 들고 각성이 필요하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괜히, 그렇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그냥 이대로 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쓰고 싶은 것만 쓸까 싶다. 그래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당분간은, 이튿날의 피로가 겁이나 망설여왔던 볼거리에의 중독을 즐겨야지. 화면 속 세상에서는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다. 날씨는 따뜻하고 맑다. 창밖의 날씨가 그러하듯 화면을 보지 않을 때도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즐겁고 좋은 것만 보고 싶어서, 나쁘고 괴로운 것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한발 물러나도 괜찮다. 그렇게 착각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안되는 걸까.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키는 대로 해버리겠다고 다짐해본다. 뭐 어때,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며 나는 여전히 똑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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