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그댄 나의 연예인

by Soo

나에게 연예인이라는 것은 바야흐로 9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열광하게 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 존재의 시작이었다. 코 묻은 돈을 모아 테이프를 샀고 그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어댔고 그렇게 모은 앨범들을 책상에 주욱 늘어놓는 것은 꽤나 상징적이었다.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폼나는 것이었고 초딩 주제에 의식 좀 있는 꼬맹이 흉내를 내 보려고 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비단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들의 음악이 그 꼬맹이 눈에는 정말 짱이었다. 울트라 캡숑 멋지고 좋은 것이었다는 거다.

연대적으로 보자면 그 후에도 H.O.T 나 신화 같은 그룹에 또 푹 빠졌었는데 이젠 얘기가 좀 다르다. 그들은 내게 오빠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오빠라고 부르기에 나는 너무 어렸지만 나는 이제 꼬마가 아니라 어엿한 숙녀라는 거다. 그들은 너무나 깔롱지게 멋있었고 잘 생겼고 춤도 잘 췄다. 그 당시에도 조금은 유치했지만 그들의 노래조차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 멋있는 오빠들이 남자로 보이며 숙녀의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출현과 소식에 조금은 무섭게 집착하기도 했다. 그 시기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에게 그랬듯 그들은 "우리 오빠"였고 나는 그 오빠들의 "마누라"이고 싶었다.

그러한 시기를 지나 나는 커버렸다. 이제 그런 오빠들의 노래를 들으며 밤을 지새우거나 오빠들과의 이러쿵저러쿵한 장면을 상상만 하기에는 나는 할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누구도 내게 어린 게 공부나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젠 진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 세상에 깔린 온갖 재미있는 것들에 나를 던질 수 있다. 그래서 진짜로 그렇게 했고 그것은 정말 달콤하고 짜릿한, 처음 맛보는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에게 연예인이라는 것은 그저 TV에 나오는 사람들에 불과하게 되었다.

젊음을 즐기다 보니 나는 나이가 들었다. 어떤 것에 열광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살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에 둘러싸였다. 이젠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도, 처음 무언가를 맛보는 짜릿함도 기대할 수가 없게 된, 그야말로 어른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재미없었다. 재미있는 것이 그리웠다. 재미있어서 까르르 웃는 내가 보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국뽕으로 시작했다. 무슨 아이돌이 외신에서 난리라길래. 뮤직비디오에 숨 막히는 킬링 파트가 있다길래.

얘네가 그 엄청나게 유치한 노래 부르며 상남자 흉내 내던 걔네야? 그런데 왜 이렇게 잘해? 진짜 잘한다!

홀려서 온갖 뮤직비디오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신곡으로 나왔다는 노래는 며칠을 걸쳐 아이들 돌보는 틈틈이 몇 백번은 들었다. 그 노래만 들려도 남편이 그 노래 좀 그만 틀라고 할 정도로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의 노래가 핸드폰에 온통 다운로드되어있었고 생전 볼일이 없던 유튜브로 그들의 쇼까지 밤새워 보고 있었다. 힘들었던 날은 그런 날 대로 왠지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부부싸움을 한 날 조차 찝찝하게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되었다.

히죽히죽 웃으며 흐뭇하게 하루를 끝낼 수 있었다. 마치 연애할 적 남자 친구와 밤새워 통화를 해도 피곤한 줄 몰랐던 것처럼 빠져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것은 회춘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허기졌던 마음이 유튜브에 가득 차 있는 그들의 영상만큼이나 배부르고 든든해졌다.

그것은 확실히, 유년시절 "오빠들"에게 열광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춤과 노래, 됨됨이까지 완벽해 보이기 그지없는 청년들이지만 내일모레 마흔 줄에 들어서는 이 아줌마가 그 어린 청년들과 이러쿵저러쿵한 장면을 상상할까? 해서 할 것이란 말인가.

그들에게 매료됐던 부분은 그들의 "능력"이었다. 너무 멋있었고 대단했다. 엄청난 능력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무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숱한 노력이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변함없이 계속된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이 멋진 퍼포머들에게 무슨 단점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냥 홀딱 빠져버렸다.

그러는 와중 관심 있는 대상이 생기면 으레 자신과 비교해 보는 인간의 습성이 이상하게도 그들을 보며 발현되었다.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능력과 재주. 그 빛나는 매력에 대한 갈증과 질투가 생겼다. 나는 이미 나이 들었고, 외모가 망가지고 있고, 할 줄 아는 것이 아이 키우는 것뿐이며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꾸만 주저앉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한 번도 그들만치 치열하고 눈물 나게 노력해 본 적도 없으면서 이렇게 나이만 먹어버린 것이 염치없게도 억울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열심히, 맹목적으로 무언가에 매달려 살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나는 다시 젊어질 수없고 그렇게 열심히 살 자신은 없을 것이란 것과, 그들은 여전히 멋있고 앞으로도 멋있기 위해 계속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야속하게도 그것이, 성공한 이와 아직까지 딱히 그렇지 못한 나와의 차이인 것이다.

헤벌쭉하며 좋아하기만 하다가 문득 해본, 젊음과 빛나는 재능 그리고 뜨거운 열정에의 시기 질투는 그렇게 얼추 포기 비슷한 것으로 삭였지만 나는 여전히 그 반짝임이 부럽고 좋다. 내일모레 마흔 줄에 만난 나의 연예인은 그렇게 나를 계속 즐겁게 해주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연예인이 반짝반짝 빛나며 내 눈과 마음을 비출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들로 충분하다.

빛나는 젊음, 나의 연예인이여,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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