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은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큰 아이는 불쑥불쑥 저렇게 묻곤 한다. 처음에 저 질문을 받았을 때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곤혹스러웠지만 역시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렇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아직까지 날은 추웠고 우리는 모두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고 내 뱃속에는 넷째가 자라고 있었다.
눈이 올 것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냈고 대충 집을 치웠다. 바닥을 쓸고 정리한 다음 쏟아지는 잠을 이길 길이 없어 점심도 먹지 않고 낮잠을 잤다. 혹시 택배라도 올까 봐 안방 문을 조금 열어놓고서.
한두 시간쯤 잔 것 같았다. 몸이 찌뿌둥하니 더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동생들이 없을 때 큰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학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후 2시쯤 일어나서 큰 아이를 데리러 바로 집을 나섰다.
엄마가 일찍 데리러 온 것이 좋은지 겅중겅중 뛰듯 걷는 큰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나는 식탁에 큰 아이의 간식거리를 차려놓고 습관처럼 소파에 드러누웠다. 곧 학습지 선생님이 오셨고 선생님과 큰 아이는 바로 큰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다시 누운 지 한 15분 후 수업이 끝났고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현관에서 배웅을 했다. 나는 큰 아이와 남은 공부들을 이어서 하기 위해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볼일이 있어 나갔던 남편이 볼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얼굴만 내밀어 인사를 하고 다시 책에 눈을 돌리려는 찰나, 남편의 다급하고도 놀란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누구 발 다쳤어?"
그제야 방을 나서서 남편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을 때 나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바닥에는 온통 붉은색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남편은 발자국이 이어진 곳을 따라 바쁘게 살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발자국을 찾았다. 발자국은 꽤나 넓게도 찍혀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전실, 안방, 남편의 서재, 그리고 큰 아이와 내가 있던 방까지.
나는 얼른, 시간의 경과에 맞춰 나의 시선과 자취를 떠올려야 했다. 잠들기 전은 물론, 낮잠에서 일어나 큰 아이를 데리러 가고, 갔다 와서 부엌에서 간식을 차리고 소파에 누워 있다가 현관에서 선생님을 배웅하고 큰 아이의 방에 들어가기까지. 이 발자국들은 대체 언제 찍힌 것인지, 누구의 것인지, 왜 나는 남편이 발견하기 전까지 집에 있었으면서도 먼저 발견하지 못했는지, 생각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꼬리를 물었다.
남편과 내가 수선을 떨기 시작하니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큰 아이가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호기심에 끼어들고 싶어 했으나 불안과 공포에 순식간에 휩싸인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발자국을 피해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앉혀 시종 맨발이었던 내 발바닥을 살폈고 나는 아까 집에 들어와서 큰 아이가 벗은 양말과 아이의 맨발을 이리저리 들여다봤다. 남편은 양말도 벗지 못한 채로 꼬랑내만 날 뿐일 자신의 발과 신발까지 살폈다. 그 어디에도, 피가 난 흔적은 없었다.
남편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한 듯 한 발자국들을 자세히 보았다. 발가락이 뭉개진 듯한 형태. 그리고 핏빛. 물감이나 인주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아도, 붉게 묻어난 그것은 피가 분명했다.
보폭은 넓지 않았다. 아니 사실 보폭을 가늠할 수도 없었다.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보듯한 것 같은 잔걸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발가락의 모양이었다. 도무지 이게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의 것이라기엔 발가락의 모양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고 동물의 것이라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 컸다.
발자국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건지도 모호했다. 대리석으로 된 현관에는 발자국이 없이 깨끗했고 바닥부터 발자국이 찍혀 있었으며 그 발자국은 분명히 안방과 서재의 베란다에도 이어져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14층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 베란다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터무니없었다.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생각을 해도,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공포에 숨이 막힐 뿐이었다. 큰 아이는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겁을 먹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현장보존이 어려울까 봐 아직 둘째, 셋째는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지도 못한 상태였다.
목이 빠지게 기다린 경찰이 도착했다. 분실된 것이 없었고 별다른 피해가 없음을 확인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경찰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일은 자기도 처음이라는 말을 남기며 과학수사대가 곧 올 거라고 했다.
TV에서만 봤던 과학수사대가 장비를 가지고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현관까지 지문 채취와 발자국 채취를 하고 집에 들어섰다. 시약 검사를 한 결과 발자국은 혈흔이 맞다고 했다. 역시나였다. 분명해질수록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조사관들 역시 발자국의 형태가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고 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조사관들의 지시에 따라 남편과 나, 큰 아이는 면봉으로 입 속을 긁어 제출했다. 조사관들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철수했다.
나는 다시 한번 발자국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사진에는 좀 더 짙은 색 만치나 짙은 두려움과 공포가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는 더 진한 핏빛이었다.
남편이 둘째, 셋째를 데리러 간 사이 나는 바닥을 미친 듯이 닦았다. 혹시나 안 닦은 곳이 있을까 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닦고 또 닦았다. 닦으면서도 몇 번을 몸서리쳤다.
동생들이 오자 큰 아이는 집에 발자국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어린 동생들은 큰 감흥이 없었다. 잠시 느낀 긴장과 공포는 오롯이 큰 아이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애는 애였다. 금방 잊고 마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남편은 급한 일이 있어 나가야 했고 집에는 나와 아이들만 남았다. 나는 현관문의 보조 잠금장치까지 모조리 잠가 걸어두고 창문도 걸어 잠갔다. 집안 구석구석의 어두움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불도 모두 켜 두었다. 머리 속에는 우리 가족이 아닌 그 어떤 기괴한 존재가 떠올랐다. 그것에 대한 공포는 사람의 모습을 했건, 사람이 아닌 모습을 했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겁을 아이들 앞에서 티 낼 수는 없었다.
남편은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죽검을 가 져와 침대 옆에 세워두었고 나는 잠시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든 잠에서 몇 번이고 깨어야만 했다. 눈을 뜨면 어둠 속에서 자꾸만, 침대 옆 바닥에 나 있던 발자국처럼 내가 누운 바로 옆에 누가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낮잠에 들어 정신없이 자고 있었을 그때 그 발자국이 찍혔었다면..? 잠든 나를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었다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알 수 없는 그 발자국의 주인이, 대궐같이 넓지도 않은 이 집 어딘가에 아직도 있다면....?
그 후로 몇 주간,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불안과 공포는 나를 계속 괴롭혔다. 태교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까 걱정도 됐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게는 뱃속의 아기 말고도 배밖에 보살펴야 할 아이가 셋이나 더 있었기에 그 불안과 공포에 마냥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덤덤한 남편과는 달리 다소 편치 않은 수일을 보냈지만 한 마리 망각의 동물인 나 역시 별수는 없었다. 점점 무뎌졌고 일상은 평온해졌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문득문득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껄끄러웠다. 무엇이 되었든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과학수사대가 주고 간 명함이 화장대 위에서 가끔 눈길을 붙잡을 때면 남편에게 전화해보라고 채근을 했다. 남편은 일이 바쁘다며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해서 수사결과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잊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여가 지났을까. 그 어느 날도 오늘처럼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그 빨간 발자국은 누구였대? 아직도 경찰서에서 전화 안 왔어?"
나는 볼일을 보러 나가는 남편에게, 이따 시간 되면 꼭 과학수사대에 전화해보라고 했다. 큰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그 일을 잊기는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받아들여야 한다는 담담한 마음이 급작스레 드는 순간이었다.
밤늦게 귀가한 남편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과학수사대에 전화해봤냐고 물었다. 남편이 내 눈을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당신이랑 내 유전자가 둘 다 섞여있대."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섞여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남편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랑 내 유전자가 섞인 거면 애들이라는 거지. 잊어버려, 그냥."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날 나와 남편은 물론, 세 아이들 중 누구도 발에 피가 난 흔적이 없었거니와 아무런 흔적이 없기는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나는 분명히 바닥을 닦았다. 그걸 그날 경찰과 과학수사대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남편도 그걸 분명히 들었다.
나는 내 귀와 남편의 입을 의심했다. 수사결과를 내 귀로 직접 듣고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오기가 순간 치솟았다. 남편은 과학수사대 수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하니 받아들이자 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다가 곧 멈추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이 나왔다. 아니, 나는 결론을 만들어야 했다.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명피해도, 재산피해도 없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은 겨우 다시 평온해졌고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나는 더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세상에는 온갖 흉악한 범죄와 사건들로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다,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을 먼저 수사하는 게 옳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한없이 뒤로, 뒤로 밀려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결론이 빠르게 머릿속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남편과는 그것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1년 여가 지난 후 그 집을 떠나 이사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발자국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더 이상은 궁금하지 않다. 궁금증은 곧 공포였다. 잊으려면 얼마든지 잊고 살 수 있는 것인데 꼭 잊을만하면 큰 아이는 묻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만든 결론을 아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오늘처럼 "그러게. 누구였을까." 하며 다른 말을 얼른 꺼내 환기시켜 버리는 식으로 뜨뜻미지근히 얼버무릴 뿐이다.
피 묻은 발자국.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모를, 기괴하기 짝이 없던 모양과 패턴의 발자국. 여러 장 찍어놓았던 사진과 동영상은 마치 내 기억이 그러고자 마음먹었던 것처럼 클라우드에서도 삭제되어있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인터넷의 단지 카페에 올렸던 사진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