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전시관, 기억을 걸다

도록 속 그림 한 장, 엽서 하나

by 바다기린

꼭 집을 나서야만 예술을 만날 수 있을까. 전시를 다녀오면 도록이나 책, 포스터, 엽서를 사곤 한다. 그렇게 모은 걸 쌓아보면 아마 내 키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여자는 두껍고 비싼 도록일 거다. 그럼에도 그때만 잠깐 들춰보고는 다시 꺼내보지 못한 페이지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페이지를 조심스레 뜯어낸다. 그리고 얼추 맞는 액자에 넣는다. 마치 전시장을 다시 찾은 듯, 그 그림에 빠져든다. 그림을 바라보다 감정을 붙잡고, 짧은 글을 남긴다.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도록에서도 한 장을 떼어낸다. 그림을 고르고, 액자에 담고, 바라보고, 기록한다. 그렇게 집에서도 예술을 감상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과 살아간다.


엽서도 있다. 전시장에서 모은 엽서를 작은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정리하다 보니 제법 많다. 다양한 작가들, 그 앞에서의 나, 그날의 감정들이 떠오른다. 그건 마치 내가 가진 수장고 같다. 누군가에겐 그저 엽서지만, 내겐 기억이자 기록이다. 이번엔 엽서 사이즈에 맞는 작은 액자 몇 개를 꺼내 나만의 전시회를 열어본다. ‘이사 온 뒤피전’, ‘무드등 아래 모네전’, ‘오늘도 감정과다전’. 이름도 내 마음대로 붙인다. 진심 가득한, 작지만 다정한 하우스 갤러리다.

한때 나는 집에서 독서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미술 관련 책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미술관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 집 벽에 명화카드를 붙이고 조명을 어둡게 조절했다. 그림만 조명을 받게 하고, 조용히 감상하며 감정이 머무는 그림 앞에 서서 글을 쓰게 했다. 아이들은 진지했고, 감상글은 생생했다.

“이 그림은 가만히 있어서 좋아요.”

“혼자 있는 사람 같아서 자꾸 보게 됐어요.”

그 말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림 앞에서 감정이 피어나는 순간을 함께 지켜본 날들. 나에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수업이었다.

예술도 경험이다. 꼭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전시장을 누비지 않아도 괜찮다. 도록 속 그림 한 장, 엽서 하나로도 충분하다. 쌓아둔 것을 꺼내 감상하고, 그 감상을 글로 남긴다면 집도 예술이 흐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림을 보고 떠오른 마음 한 조각을 남긴다.

– 집이라는 전시관 –

액자에 넣은 엽서를 벽에 걸었다.

거실 한켠, 조명이 스치는 자리에.

처음엔 낯설던 그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히더니

마침내 내 감정에 물들어왔다.

사둔 것들을 꺼내어 다시 보는 일,

그건 어쩌면

내가 지나온 감정을

다시 한번 나에게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천 질문

Q. 전시장에서 사 온 엽서나 도록을 꺼내어 다시 감상해 본 적 있나요?

Q. 지금 내 공간 한켠을 나만의 갤러리로 바꾼다면 어떤 장면을 걸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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