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마주한 감각
2004년부터 안양은 내 삶터였다. 하지만 이 도시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건, 스무 해가 지나서였다. 2005년부터 시작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2023년에 벌써 일곱 번째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도,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우연히 SNS에서 본 홍보물 한 장이 나를 다른 시선으로 이끌었다.
안양의 옛 농림축산검역 본부 일대에서 진행된 APAP7 전시를 본 후, 안양예술공원과 평촌 도심에서 열린 공공예술프로젝트 도슨트 투어에 참여했다. 열정적인 설명, 흥미로운 작품들. 그런데도 현장에는 나를 포함해 몇 명뿐이었다. 왜일까? 홍보가 부족해서일까?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낮아서일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져서 그 속에 숨은 예술을 보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문화예술교육 기획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2024 문화예술공간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가 열렸다. 지역책방 ‘뜻밖의 여행’ 책방지기와 뜻이 맞아, 〈안양, 숨은 예술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운 좋게 선정됐다.
그 프로그램 속 한 코스로 다시 참여한 평촌 APAP 도슨트 투어에서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여기에 이런 예술작품이 있었나요?”
매일 지나던 거리,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공공조형물들이 이제야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수업 이후, 참여자들은 산책 중에 마주한 작품을 사진 찍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익숙한 공간이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이후로 ‘예술 산책’을 계속하고 있다. 꼭 공공예술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보도블록 틈 사이의 풀 한 포기, 계절마다 잎의 색을 바꾸는 가로수, 창가에 드는 오후 햇살.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제와 전혀 다른 구름이 흐르고, 땅을 내려다보면 조용히 초록을 키우는 생명이 있다.
특별한 것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아도, 도시는 이미 예술로 가득하다. 달라지는 건 보는 감각뿐이다. 산책은 내가 직접 몸을 움직이며 세상과 마주하는 예술이다.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리듬과 속도로 세상에 닿는 일이다. 기분과 날씨, 발걸음의 속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꼭 시각적인 것이 아니어도 된다. 바람 소리, 손끝에 스친 나뭇잎, 어디선가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 카페 안 음악 소리. 오감으로 만나는 예술은 언제나 곁에 있다.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 내가 지나온 길 위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기쁨. 산책은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은 실천이다.
– 길 위에서 마주한 감각 –
오늘도 걷는다.
어제의 길, 같지만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는 길.
햇살은 다른 각도에서 스며들고,
바람은 또 다른 속도로 지나간다.
보도블록 틈 사이, 이끼가 작은 숲처럼 자라고 있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도, 이름 없이 피어난 것들.
그 앞에 잠시 멈춘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던 것,
너무 익숙해 닿지 않던 것.
낯설게 본다는 건
있는 그대로 두고
조용히 눈을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천 질문
Q.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서, 나만의 예술을 하나 발견해 볼 수 있을까?
Q. 익숙한 풍경 속에서 오늘 처음 본 것처럼 다가오는 순간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