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감상을 글쓰기로 확장하는 연습
남편이 주말도 없이 바쁘게 지내던 시절, 나는 매일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돌봄 속에서 내 마음을 꺼내놓을 대화는커녕 생각을 정리할 틈조차 사라졌다. 그때, 문득 글이 그리워졌다. 2010년 1월, 블로그에 첫 기록을 남겼다. 하고 싶은 말과 남기고 싶은 장면들을 하나씩 올리다 보니 일상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매일 이어지던 기록은 가끔 멈추기도 했는데 그 쉼조차 의미가 있었다. 메말라 보이던 땅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다시 숨 쉬듯 글도 잠시 멈출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품을 수 있었다.
나는 말보다 글이 더 편하다. 생각이 많고 말에 순발력이 없는 탓에 손끝으로 천천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좋다. 특히 그림을 보고 글을 쓸 때면 나조차 몰랐던 마음과 마주치게 된다. 그림은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보여주고 때로는 내 일상과 닮은 어느 날을 불쑥 꺼내놓는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그렇다. 출근, 사무실, 식사, 퇴근, 휴식… 반복된 일상을 포착한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호퍼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빈방의 빛》이다. 줌 수업 배경화면으로도 자주 사용했는데, 어느 날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떠오른 마음을 블로그에 적어두었다. 내 감정은 말보다 장면으로 먼저 스며들고, 그 장면은 언젠가 글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그림 앞에 앉으면 늘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림을 본다는 건 한 장면을 붙잡아두는 일이다. 빠르게 스쳐가는 이미지와 달리 좋아하는 그림은 눈을 붙잡고 마음을 열게 한다. 처음엔 단순히 색과 형태를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곧 내 마음속 이야기가 고개를 든다. ‘오늘은 왜 이 빛이 더 외롭게 느껴질까?’ 그림은 장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렇게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이 문장으로 스며들고 문장은 다시 나를 이해하는 작은 통로가 된다.
아래는 《빈방의 빛》을 보며 적어둔 글의 일부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 순간의 감정이 생생하다.
“인간의 공간인 방 안에 창문 밖 자연의 빛이 들어왔다. 인공적인 조명이 아닌 자연의 햇빛이 빈방을 밝힌다. 그 빛이 빈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점차 줄어들다 사그라지고 또 나타나 점점 늘어갈 것이다. 그 빛이 빈방에 드리우는 공간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또 달라질 거다. 에드워드 호퍼의 《빈방의 빛》은 인간이 만든 공간에 자연의 시간이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정지해 있지만, 내 마음속 그림은 빛을 따라 변화하며 흘러간다.”
– 말을 대신해 떠오른 장면 –
말로 하기엔 조심스러웠던 마음이 그림 앞에선 고요히 머문다.
빛을 따라 흘러가는 한 장면 속에 어쩌면 그날의 내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천 질문
Q. 오늘 하루,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그걸 장면 하나로 떠올려보고, 짧은 글로 남겨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Q. 일상을 표현한 그림을 보고 나의 일상 속 감정을 꺼내어 짧은 글로 옮겨볼까요?
커버 그림: 에드워드 호퍼 <트루로 집에서 스케치하는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