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코로나에 걸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영화에 푹 빠져 보냈다. 그동안에 수고한 나를 돌아도 보고 격려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나는 4남 1녀 중 막내로 자라어릴 적에는 혼자 방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던 때가 유학을 가서부터다. 그때를 회상하면 방 안에 있는 동안 누구도 방해 없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하루에 10분이라도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직장이나 모임에서, 학교에서나 친구들 틈에서 지쳐있는 나를 위해 짬을 낸다는 것이 어쩌면행복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광활한 들판을 배경으로 혼자 서 있는 주인공을 클로즈업하는 대서사시의 영화 속 장면처럼,그 시간만큼은 혼자 있는 나를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일 때 뭐 하세요?”
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혼자 있는 시간을 나는 오늘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예전에는 혼자 지낼 일이 많지 않았다. 내가 혼자 많은 시간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술과 담배를 끊고 기러기 생활을 할 때부터다. 아내와 딸이 외국에 있고 술과 담배를 안 하니 모임에 나갈 일도 친구를 자주 만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나는 혼자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하게 된 산책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퇴고 과정으로 성장해 갔다. 산책을 나가면 자연이 말을 걸어오고 어느새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과 대화한다. 그러면서 그들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한다.
지금도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혼자 있어도 바쁘게 생활한다. 그 원천은 글쓰기와 산책이다. 글쓰기를 하면서부터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어쩌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가끔 고독을 느끼며 그리운 사람이 떠올라 아쉬울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지면 무미건조한 생활이 될 것이 두려워 금시에 괜찮다고 나를 위로한다. 모자란듯하면서 아쉬움도 남아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지 않듯이.
내게 주어진 시간의 가르침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이 긍정으로 변하며 설렘을 맞기도 하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기 시작하여 용기도 얻는다. 그러면서 세상을 배려하며 공감하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데,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앞에서 겸손의 가치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그렇다. 그 시간은 나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나는 오래전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줄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몇 번은 “나와라, 그래도 얼굴 좀 보자.”라며 모임에 나올 것을 권유하다가 “나는 저녁에 안 나간다. 가족하고 지내야지.”라는 말을 반복하며 거절을 하면 어느새 연락이 오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러한 날들에 익숙해져 간다. 어쩌다 너무 반가운 친구가 연락을 해도 연가를 내어 낮에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떨다 온다.
인간관계가 넓다고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본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기에 그의 일상은 늘 바빠 보인다. 경조사에 모임에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러한 그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자신과의 관계는 어떠할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까. 혼자서도 그렇게 바쁜 시간들을 보낼까라고 생각하다가 어느새 주제는 나에게로 전이되어,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내게 어떤 가르침을 줄까라고 내게 물어본다. 그러면서 혼자 있어도 바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는생각으로 갈무리한다. 퇴직을 앞둔 나의 하루는 글쓰기로 시작하고 산책으로 갈무리한다. 글쓰기 할 때는 무아지명에 빠지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산책은 그날 쓴 글에 대해 사유의 공간에서 언어 알갱이들과 대화하면서 퇴고를 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두 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발령이 나 그 두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두고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이 소중히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다. 그 앞에서 굴복하느냐 아니면 헤치고 가느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삶의 구호로 여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출퇴근 왕복 4시간을 그저 그렇게 보내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지하철 안에서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보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숙제였다. 아침에는 아내가 역까지 차로 가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퇴근 후에는 혼자서 집까지 걸어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다. 피곤하기도 할 법한데 굳이 왜 걸어서 가냐고 묻는다면 집까지 걷는 한 시간 동안의 시간은 나와 대화하며 나를 위로도 하고 격려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답하곤 했다.
동료와 점심을 할 때였다.
“출퇴근하시는 것이 힘드시죠?”
그가 말했다.
“그렇죠. 어려운 상황이긴 한데 힘들다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저녁에는 집까지 걸어갑니다. 운동도 할 겸요.”
내가 말했다.
"와! 그럼, 더 힘들지 않으세요?"
그가 다시 물었다.
"이 상황을 이겨내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더라고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지 안 그러면 힘들 것 같아서요. “
내가 다시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와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린다. 건너편 네온사인 간판들을 바라보며 건널목을 건너고 걷고 또 걷는다. 거리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인적은 드물며 보도블록 사이로 가늘게 늘어서있는 희미한 네온사인 불빛만이 나를 반긴다. 어쩌다가 보는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 “피곤합니다.”라는 얼굴을 한 여학생이 지나간다. 나의 시선이 그녀에게 잠시 움직이며 “수고했어요.”라는 격려의 말을 바람에 실어 그녀에게 보낸다. 그 말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내게 돌아온다. 다시 골목길로 접어든 후 조금을 가니 공원이 있다. 사람들의 모습은 뜸하다. 공원길을 내려와 신호등을 건너 골목길에 접어들며 번화가로 접어들며 다시 신호등을 건너고 또 건너서 목적지인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자정이 되어간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데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치 인생길의 여정과 같다. 환하고 어두운 길을 가다가 신호등에 막히고, 다시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가다가 넓은 산책로를 만나 밝은 네온사인에 나를 기대고 걷다가 다시 신호등 앞에 멈추고 또 가고...
위기 상황을 추억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런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 생각은 다르게, 시간은 쪼개서... 긍정의 사고에는 나를 춤추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내게 등을 안 보인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그러면서 세상과 함께 하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한다. 그 안에 행복이 있기에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로운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