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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Sep 06. 2024

여운이 긴 언어

우리는 칭찬과 꾸지람을 들으며 자라고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평생 도움이 되는 좋은 말을 남기며 용기를 주기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시간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날은 교내 체육대회 400미터 계주의 시간이었으며,  우리 반은 꼴찌로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 주자는 나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나는 앞 주자들을 모두 앞지르고 일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어릴 적 경험했던 즐겁고 통쾌한 일이다. 이때의 일로 나는 친구와 선생님들의 머리에 내 이름도장을 선명하게 새겼다. 경기가 끝난 후에 교실에서였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곤이는 육상을 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거야."라고 말씀했다.


나의 마음을 춤추게 했던 이 말은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아직도 마음속 깊게 새겨져 있을까. 칭찬의 힘이 세긴 센 모양이다. 선생님의 하신 그 말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힘이 되곤 했다. 긍정의 언어는 상대에게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는지 이때의 경험으로 알았다. 이후 나는 늘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처럼 언어의 위력은 대단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렸을 적 들은 말은 평생 잊지 못할 때가 있다. 딸이 초등학교 때 아내는 "우리 얘는 암기력이 뛰어난데, 계산하는 것을 싫어해서 수학을 못할 거야." 하고 자주 말했던 적이 있다. 결국 딸은 영어단어에 있어서는 암기의 신이 되었지만 수학은 싫어했다. 시간이 지나고 딸이 나에게 "엄마가 그때 얘기하기 전까지 나 초등학교 때에 수학 잘했었어."라고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말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안 좋은 에너지를 건네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긍정, 긍정, 긍정.... 의 생각으로 생활하면 좋을 것이다. 


혹시 주위에서 "너 미친 거 아니니? 그게 된다고 생각해? 네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어도 끊임없이 긍정이어야 한다. 주위에 혹시 이런 이가 있는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선례가 없다. 그렇게 하면 잘 되는 경우가 없었다."라고 하며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다. 그렇지 않아도 목표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게 인생이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


'발효식품'


숙성된 음식은 건강에 좋다. 1989년이었다. 일본에 유학 가서 낫또를 처음 먹었다. 냄새가 고약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밥그릇에 날계란을 터트려 넣고 간장을 약간 부어 밥과 비빈 후 김에 싸서 먹으면 한 끼가 해결되었다. 낫또는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 중에는 발효식품이 많다. 맛도 맛이지만 몸에 좋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에게는 김치가 단연 최고의 발효식품이다.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프라이팬에 볶은 후 두부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있으면 반찬이 따로 필요 없다. 아내에게 "오늘 김치찌개 먹고 싶다."라고 하면 "묵은지가 없어서 맛이 없을 텐데."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치는 김치찌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재료인데 종류 나름이어서 푹 삭힌 것을 넣어야 맛있다.


옛날에는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들은 집 앞마당에 있는 검정 항아리 속에 갓 담은 김치를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항아리는 겨울 동안에 김치를 충분히 숙성시켜 주었다. 옹기 벽의 미세한 구멍들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가정에서 김치 냉장고를 따로 두고 보관하지만, 그때만 해도 땅 속 옹기가 냉장고 역할을 했다. 겨울 지나 항아리 뚜껑을 열 때 옹기 맨 위의 배추 잎사귀에는 곰팡이 모양을 한 하얀 효모덩어리가 보인다. 골마지라고 하는 이것은 김치 등 발효 식품 표면에 하얀 막처럼 생성되는 물질로, 효모가 산소와 반응해 생기는 덩어리라고 한다. 골마지를 걷어내고 배추를 들어 올리면 배추 잎사귀는 얇고 보들보들했다. 네 등분해서 담근 배추포기 중 한쪽 집어 올려 쫘악 찢어서 쌀밥 위에 올려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갓 구운 고구마와도 찰떡궁합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 가정에서는 숙성된 김치를 보기 어렵다. 김장을 잔뜩 해서 보관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마트나 김치 전문점 같은 곳에서 구입하여 먹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집에서 김치전을 부쳐 먹을 때도 김치는 설익었다.


그럼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언어는 어떨까?

특히 말은 얼마만큼의 숙성과정을 거칠까?


잘 익은 김치를 먹으면 맛있듯이 말도 하기 전에 숙성과정을 거치면 맛이 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만나면 쉬지 않고 얘기를 해서 앉아있기가 거북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싶어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완전히 일방통행이다. 이쪽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안 준다. 그 언어 안에는 품격이 녹아있으면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험담이 들어가면 불편하다. 또 대화 시에 말을 함부로 하는 이도 있다. 나도 심사숙고하지 않고 언어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우를 범할 때가 있었다.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에 다툼도 일어나기도 남녀 간에는 헤어지자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기회에 내 말실수로 상처를 받았거나 기분이 언짢았던 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김치찌개에 잘 숙성된 김치를 넣어서 먹으면 깊은 맛이 나듯 말도 충분히 곱씹은 후에 밖으로 내보내면 상대방에게 맛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그 맛은 요리보다 더 깊 여운 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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