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3년 2월에 발행했던 브런치북 <시간이 주는 힘>에 수록된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 보완했습니다.
가끔 혼자서 걷다 보면 우연히 만나는 소소한 온기에 마음에 위로를 받곤 한다.
오랜만에 종로 낙원상가 뒤편을 갔을 때다. 떡집들과 조그마한 미술전시관을 지나 보면 골목마다 있던 옛 공예품 전문점들은 여전했다. 잠시 후, 신호등 앞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맛이 궁금해서 들어갔더니 싼 가격에 놀라면서 주문한 카페라테를 들고 나오면서 신호등을 건너며 마신 라테 한 모금에 취해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사진 한 컷으로 녀석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온 몸속으로 속속 스며들어 나의 마음 곳곳에 퍼져 온기를 전해주길 바라면서...."
한 모금을 더 하고 걷다가 반대 방향에서 외국인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다. 그중에 가장 키가 큰 남자분이 나를 보고 미소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모르는 사람끼리는 주고받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공감이다.
공감은 아픈 마음도 치유하지 않던가!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뛰어넘는 세계 공통의 감정 치료제인 공감과 배려.
외국에 나가면 종종 경험했던 터라 나도 그에 화답했다.
잔잔하며 친근한 소리 없는 신호인 미소.
그 안에는 "반가워요~~"라는 말이 녹아 있다.
스마일!
.....
스마일!
순간, 라테의 여운에 그 미소가 스며들어가 내 마음에 평화가 살포시 와 앉았다. 조금 전 라테를 마시며 바랐던 일이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휘감겼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주고받은 그 공명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난 뒤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소리 없는 작별 인사를 바람에 실어 전송했다.
"그대들이여! 가시는 길에 평화가 함께하길!"
그날, 늦가을 바람결에 스치듯 지나가던 어떤 외국인이 던진 아름다운 미소와 나의 공감.
그 힘은 위대했다.
또 한 번은 안국역 근처에 갔을 때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젊은이들로 북적댔다. 오늘은 아내와 딸이 역 근처에 맛있다는 베이커리 집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임무를 완수하고 인파에 밀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글귀가 생각나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죄송한데요. 사진 촬영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라고 하며 중년 여성이 친구분과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잠시만요. 어떻게 찍어드릴까요?"
"아, 네. 이 옆 가게와 하늘이 나오게요"
그분은 친구와 둘이 포즈를 취하고 나는 핸드폰 카메라 버튼을 세 번 눌렀다. 한 번은 그냥 눌렀다. 또 한 번은 두 분에게 포즈를 주문하며, 마지막 한 번은 무릎을 땅바닥에 대며 파란 하늘이 나오게 버튼을 눌렀다.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건네자 그녀들은 "감사합니다."라며 길을 떠나고 나도 걸음을 다시 떼는데 불현듯 스치는 글귀에 다시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 메모를 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툭!
낙엽 한 잎이 내 등 뒤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가락이었다. 본인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내게 위로라도 받고 싶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 듯한 짧고 강한 공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