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후에 남편이 꺼낸 얘기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직업에도 매력이 있다고 여겼던 터여서 그녀는 쾌히 동의했다. 생활은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커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과 남편뒷바라지는 바쁜 일상을 선물했다. 이 선물에 유효기간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남편과는 잠자리가 줄었고 어느새 각 방을 사용하는 밤에 익숙해져 갔다. 집에서도 외식을 가서도 혼자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지배했다. 몸은 두 남자와 있어도 그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가족이라는 경계 너머에 있었다. 그들의 몸으로 그녀가 마치 이물질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경계라도 하듯 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식탁에서 두 남자가 대화하는 장면 앞에서 수저를 천천히 들며 친구 혜영이가 딸과 자주 여행을 간다는 말이 떠오르며 신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딸로 둔갑시킬 수는 능력이 준다면 하는 착상마저 들었다.
추운 겨울에 갑자기 땀을 줄줄 흘리며 들어오는 그녀의 생물학적 변화의 모습에도 두 남자의 무관심은 이어졌다.
“엄마, 땀을 왜 그렇게 많이 흘려?”
“여보, 추운 겨울에 웬 땀...”
무방비 상태에서 오십이 넘어 찾아온 군손님은 그녀의 일상을 더 외롭게 했다. 수시로 화가 올라오고 한겨울에도 땀으로 몸을 적시는 증상이 이어졌다. 남편의 관심으로 극복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 하루는 “여보, 나 요즘 갱년기가 찾아왔나 봐.”라고 남편에게 말했을 때 “그럼, 병원에 가봐. 약 먹어야지.”라는 텅 빈 메아리만 돌아왔다.
그러한 생활이 이어질 때 새로운 만남은 그녀에게 행운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 남자에게, 그녀의 가족에게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얘, 요즘 어떻게 지내?”
“뭐, 그럭저럭...”
“내가 다니는 모임에 안 나올래?”
“무슨 모음인데?”
“글쓰기 모임이야. 너는 글을 잘 쓰니 금방 익숙해질 거야. 구성원들이 모두 가정주부고 회장도 괜찮은 사람이고.”
고등학교 동창인 혜영의 제안에 그녀는 솔깃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생각에 설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모임에 처음 나간 것은 그해 가을이었다. 북카페는 빈티지 가구들이 벽 둘레를 감싸고 있었고 책장 한쪽에 남루한 서적과 다른 곳에는 최근에 출간된 책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모임은 청일점을 제외하고 그녀와 비슷해 보이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회장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희고 검은색이 적당히 섞어있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저음에 차분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