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백주간 제26주 차(2 사무 1-12) 묵상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요.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여종들에게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2 사무 6, 22)
‘딸깍딸깍’
수돗물의 공급이 부족했던 1960년대 농촌지역 집 앞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려고 작두펌프질을 했을 때 나는 소리입니다. 펌프에 먼저 마중물을 채우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솟아오릅니다. 과거 농촌이나 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물통을 머리 위에 이고 동네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가는 모습은 흑백 티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물은 어떻게 흐르는가.
저는 물을 많이 마십니다. 어떤 날은 4리터를 보통은 2리터는 섭취하려고 합니다. 감기라도 걸려 약을 복용하는 날이면 몸 안의 독소를 빼려고 의도적으로 더 많은 양을 몸 안에 공급하려고 노력합니다. 한여름에는 폭포수처럼 세찬 시원함을 한겨울에는 얼어붙기도 하고 차갑지만 은은하게 흐르며 온기를 건네는 봄가을의 강물처럼 사계절의 서사를 품고 흐르는 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따스함을 건넵니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는 법이 없습니다. 무더운 날에는 두꺼운 알갱이로 변신하여 우리들의 입속을 시원하게 한 후에 하수구에 버려지더라도 말입니다. 흐르고 흐르며 정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 호수, 강, 우물, 바다 등 자신의 편의대로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서 잠시 머무는 곳에서도 무색의 광을 발합니다. 이것저것 가리고 재는 법도 없습니다. 진흙탕을 만날지라도 어디에서든 본질을 잃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이처럼 삶의 정화 과정을 거치는 사람은 어떠할까요. 위를 안 보는 그는 온기가 배어있을 것입니다. 늘 겸손하고 배려가 있으며 소외된 사람들 편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 16-17)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기 위해 요르단 강물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낮추는 모습처럼 우리를 낮추고 이웃을 나보다 낫게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일이 얼마는 중요한지라고, 흐르는 물처럼 제 영을 정화해 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알게 해 준 오늘 묵상의 시간입니다. 물이 흐르고 흘러 정화해 가자 어디에선가 새들이 날아들고 온갖 물고기들이 꿈틀거리며 몰려드는 장면을 떠올려보며 매일 기도하며 제 마음을 정화해 가면 좋은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어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시간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인생이거늘 우리는 조금 잘 나가는 가 싶을 때 오만이라는 먼지가 몸 안으로 은밀히 스며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막 교부들의 삶의 여정을 그린 가톨릭신문의 한 칼럼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원로들이 포이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기도하는데 졸면 깨우겠느냐”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내 어깨에 누이고 그를 쉬게 할 것입니다.” 참 따뜻함이 전해오는 말입니다.
오늘 다윗과 사울의 딸 미칼의 대화 속에 저의 모습을 비추어봅니다. 나는 과연 내 삶의 여정 속에서 나 자신을 정화해 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젊은 시절 거침없이 상사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던 저는 일 좀 잘한다고 거만하게 굴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지금까지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를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따스한 손으로 그들의 상처를 만져주길 기도합니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ps: 주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시편 52,12) 우리가 높은 자리만 보기보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흐르는 물처럼 늘 정화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