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느끼는 주님의 말씀

성서백주간 제27주 차(2 사무 13-24) 묵상

by 김곤

하느님의 길은 결백하고 주님의 말씀은 순수하며(2 사무 22, 31 참조)



하루 중에 장소 불문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마음의 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그동안 쌓였던 마음속 먼지들을 털어버리려 마음의 피난처를 향해 여행을 떠나 에너지를 축적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듯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거울 속에서 대화하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은 자신을 사랑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이쪽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데 저쪽이 조금은 결이 다르게 해석하면 난감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 간에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동네 카페에서 당뇨를 갖고 계신 장인어른이 최근 들어 건강식품의 의존도가 높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장모님에게 건넨 말로 불편한 일 있었습니다. 잠시 우리들 틈으로 싸늘한 침묵이 오가고 자리를 비웠던 아내가 돌아오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곳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침묵했습니다. 물론 그날의 일로 장모님과 저의 관계가 어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다만 집으로 가는 내내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을 필요 없는 감정에 소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감정의 소비에 사치를 부린 셈인 것입니다. 그날 저녁 묵상 시간에 저는 나의 감정도 중요하듯 상대방의 감정에도 충실해야 하는 사실을 잠시 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장모님과 저의 경우처럼 상대가 건넨 말을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기 있는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서로 다시 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상대에게 건넨 맑은 언어가 건너편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오염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화자의 말에는 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깃들어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이 말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지금 할 필요가 있는가, 한다면 상대를 배려하며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청자의 순수함이 빛을 발하면 대화의 격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정의 과소비도 줄이고 말입니다.




처음 성경말씀과 함께했던 사유의 시간이 맑게 흐르다가 다른 길로 향하며 조금은 탁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시공을 넘나들며 읽어야 하는 저로서는 성경 지식에 대한 내공이 약하기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치기에 가까운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아, 이 시대는 그랬나 보다’라고, 말씀 속에 숨어 있는 주님의 온기를 그냥 느끼면 느끼는 대로 읽어가면 되는 것을 말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 나오면 검색을 해보고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쌓이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모르면 모른 대로 물 흐르듯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주님의 숨결을 가슴으로 느끼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가슴으로 느끼기에.


‘아, 주님은 이러한 분이시구나.’ 때로는 '아,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여정은 사랑을 품고 애덕을 실천하고 참회의 기도를 하며 삶의 궤적을 그려가는 길에서 어떤 이물도 섞여 있지 않는 주님 말씀의 바다에 첨벙하고 사랑에 빠져 실컷 헤엄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허우적거리더라도 말입니다.


사진: 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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