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3세대가 사는 거실에서는 새벽에 이러한 스포츠경기를 볼 수가 없다. 심장이 약하신 장모님의 수면방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과 나는 우리 부부 방에서 본다.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아내는 딸 방에서 잔다. 장인장모님은 각자의 방에서 주무신다. 큰 거실은 비워있다. 3대가 모여사니 이런 때는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딸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절제와 배려가 몸에 익었다. 우리 가족 셋만 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다음은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때 아내와 딸그리고 내가 대화중일부다.
"나 이브 때 친구네에 가서 논다. 친구가 우리 집에 가자고 했는데 내가 안 된다고 했어."
딸이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때문에. 새벽까지 놀텐데 그러면 불편하니까."
딸이 다시 말했다.
"하루인데 데리고 오지 그래."
내가 다시 물었다.
"됐어..."
딸이 대답했다.
딸은 외동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족 셋만 생활을 하는 데에 익숙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자유롭게 자랐으니 더욱 그렇다. 그녀가 외조부모와 한 지붕 아래 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진학을 했을 때부터다. 그러나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집은 일주일에 한 번 왔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해외로 진학을 했으니 외조부모와 생활한 물리적 시간은 많지가 않았다.(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어른들과 생활을 하면 불편한 것이 많다는 것을.) 부모 하고만 있는 것을 좋아하는 딸이 아쉬움이 많을 것이라고 아내와 난 늘 안타까워한다. 본인이 아닌 부모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