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헬리콥터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연휴를 맞은 성길 씨가 오늘도 할 일 없이 거실 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TV 시청을 하고 있던 아내가 성길 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이 멀쩡한 소파를 두고 바닥에 앉아서 보고 있어요? 소파로 올라와 앉아서 편하게 봐요.”
“아니야. 괜찮아. 난 가끔 이렇게 ①올방자를 틀고 앉아 있는 게 더 편해.”
그러자 아내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나하고 같이 앉아 있는 게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으이그, 사람두,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해. 그래 그럼 소파에 같이 앉아줄게.”
성길 씨는 그제야 벌떡 일어나서 아내가 앉아 있는 소파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아내가 좀 못마땅하다는 듯 다시 중얼거렸다.
“으이그, 억지로 엎드려서 절받기를 한 것 같네요. 호호호…….”
“그래? 그럼 도로 내려가서 앉을까?”
“마음대로 해요.”
“으이그, 속으로는 은근히 좋으면서도…….”
성길 씨는 이렇게 대꾸하면서 한쪽 팔로 아내를 꼭 껴안았다. 그러자 아내가 성길 씨의 손을 뿌리치며 혜영이의 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왜 이래요? 혜영이가 보면 어쩌려구?”
“혜영이가 보면 어때서 그래. 괜찮아요.”
성길 씨는 짓궂게 이렇게 대꾸하면서 아내를 껴안은 손에 힘을 더 주어 바짝 껴안았다. 그러자 성길 씨와 아내가 떠드는 소리에 방에 있던 혜영이가 뛰어나오며 물었다.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성길 씨가 아내를 꼭 껴안고 있던 손을 풀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좋은 일은 무슨……. 넌 그새 숙제는 다 했니?”
“숙제는 벌써 다했는걸. 다른 책 보다가 나온 거야.”
“아하, 그랬구나. 너 나온 김에 저기 가서 ②주름막 좀 내려줄래? 햇볕이 드니까 아직도 제법 뜨거운걸.”
“알았어, 아빠.”
혜영이는 곧 주름막을 걷어내리고 다시 소파로 와서 같이 앉았다. 그러자 성길 씨가 다시 혜영이에게 물었다.
“혜영아, 너 지난번에 아빠하고 엄마하고 같이 야외로 바람 쐬러 갈 때 생각나지?”
“우리 식구들이 바람 쐬러 한두 번 갔어야지. 언제 갔을 때 말이야?”
“왜 간달(지난달)에 어느 시골에 가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③다릿돌을 건너서 간 적이 있었잖아?”
“으응, 이제 생각났다. 그런데 왜?”
“그래, 그래. 거기 갈 때 도간도간(드문드문) ④집함이 있던 것도 생각나니?”
“맞아. 일하던 농부들이 그 속에서 잠도 자고 밥도 해 먹으면서 살림을 한다고 그랬잖아.”
“그래, 맞았어. 집이 멀면 자주 집에 가기가 번거로우니까 아예 농장에 집함을 갖다 놓고 농사를 짓고 있는 거지. 그 안에 냉장고며 세탁기 그리고 TV까지 갖다 놓고 아무 불편없이 아주 잘 산다고 하더라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이번에는 아내도 끼어들었다.
“아, 그런데 난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건 왜?”
“얼마나 정신이 빠질 정도로 시끄러웠어요. 비행기가 자주 뜨고 내리는 소리가……. 아마 그 근처에 비행장이 있나 봐요.”
“으응, 그래. 나도 정신이 다 나갈 것 같더군. 아마 그 ⑤아근에 ⑥직승기장이 있는 모양이더군.”
그때 마침 TV에서는 혜영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빠, 엄마,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만화영화 좀 보게 조용히 해.”
“그래 알았어. 이제부터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게.”
“나두……. ”
성길 씨와 아내는 입을 꼭 다문 채 열심히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혜영이를 귀엽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 북한말 풀이 >
① 책상다리하다 ② 커튼 ③ 징검다리 ④ 콘테이너 ⑤ 부근 ⑥ 헬리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