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충격을 받은 여자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성길 씨의 아내가 아침부터 옷 정리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여름옷을 정리하고 가을에 입을 옷을 꺼내 놓기 위해서였다.


한동안 옷 정리를 하고 있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구, 이러언, 당신 겨울 양복은 미리미리 ① 드라이크리닝을 해둘 걸 깜빡했네. 지금이라도 바로 세탁소에 가지고 가서 맡겨야 되겠네.”


아내의 말에 성길 씨가 알 수 없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그랬소?”


“드라이크리닝이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거 혹시 ②들어온 말 아니야?”


“맞아요. 그럼 거기서는 드라이크리닝을 뭐라고 해요?”


아내의 물음에 성길 씨는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생각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그거 입에서 뱅뱅 돌면서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걸. 내가 다음에 생각이 나면 그때 알려 줄게. 허어, 내가 벌써 건망증이 들은 건가!”


“으이그, 지금 당신 나이가 몇인데 벌써 기억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아내는 성길 씨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대꾸하고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참, 그나저나 그 여자 요즈음에도 만날 시가지를 돌아다니던데요.”

“그 여자라니?”


“전에 당신도 가끔 봤잖아요. 그 머리 돌아버린 여자 말이에요.”


“아하! 그 여자 말이로군. 그 여자 정말 ③꼴묵재기가 말이 아니더군. 정말 안 됐어.”


“맞아요. 그 여자 시가지에 나타나서 돌아다닌 지가 벌써 3년은 넘었죠? 그때 처음 보았들 때보다는 그새 많이 망가졌더군요. 멀쩡하게 생긴 여자인데 정말 안 됐어요.”

성길 씨 내외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약 3년 전부터 정신이 돌아버린 여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나이는 40대 초쯤 된 것 같았다. 어디서 사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사시사철 입고 다니는 옷차림이 똑같다는 것이었다. 늘 오리털로 된 두꺼운 패딩 점퍼 차림에 우산을 하나만을 꼭 들고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더위를 타지 않는지 그 패딩 차림이었고 겨울에도 그 차림 그대로였다. 단 한 가지 옷이라도 벗거나 더 입지도 않고 늘 그대로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점퍼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하였으며 머리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감지 않았는지 몹시 헝클어지고 더럽고 지저분했다.


성길 씨의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여자 그래 보여도 돈은 꽤 있는 사람 같아요.”


“돈이 있는 것 같다구?”


“가만히 보면 끼니때가 되면 간이음식점이나 김밥천국 같은데 들어가서 점심을 사 먹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었거든요.”


“그래?”


“그리고 가끔 담배도 피우고 자판기에서 커피도 자주 뽑아 마시고 오후가 되면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돌아가곤 해요. 버스를 타고 가는 걸 보면 아마 집이 좀 먼 곳에 있나 봐요.”


“그거참, 아무리 생각해 봐도 ④새리새리한 여자로군. 그 여자 분명히 ⑤어제날에 무슨 충격을 받을만한 사연이 있었을 거야.”


“그야 그렇겠죠. 어떤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처럼 될 리가 있어요?”

“맞아요. 참 아까운 여자야. 얼굴도 그만하면 예쁘고 ⑥연삽하게 생겼던데!”


“아깝고 말고요.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가 그런 불행은 없어야 할 텐데……!”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성길 씨와 아내의 표정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 )






< 북한말 풀이 >


① 드라이크리닝 ② 외래어 ③ 꼬락서니 ④ 아리송하다 ⑤ 과거 ⑥ 싹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