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시장 보러 가는 날
[분단의 비극, 달라진 언어의 비극]
성길 씨네 담근 김치가 어느새 다 떨어졌다.
그래서 조금 전에 김치를 좀 담가보려고 이것저것 사겠다고 시장으로 갔던 아내가 빈손으로 그냥 돌아왔다.
성길 씨가 눈이 둥그렇게 되어 물었다.
“아니 왜 빈손으로 그냥 왔어?”
“배추며 무며 쪽파값이 비싸도 이만저만 비싸야지요.”
“그래? 남새(채소)값이 너무 올랐단 말이지?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요. 그래서 만져보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그냥 돌아온 거죠.”
“아니 남새(채소)값이 도대체 얼마나 올랐기에 그렇다고 그냥 맨손으로 돌아왔어? 웬만하면 그냥 사지 그랬어?”
“으이그, 웬만해야지요. 가지고 간 돈이 부족한데 어떻게 사요. 그래서 그냥 온 거죠.”
성길 씨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주머니를 뒤지더니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자, 이거면 되겠어?”
아내가 지폐를 받으며 대답했다.
“아마 이 정도면 그럭저럭 겨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허어, ①간달까지만 해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니 그새 많이 올랐나 보군. 그래 맞아. 지난 여름에 그렇게 심한 태풍이 오고 게다가 ②큰물까지 터졌는데 남새(채소)값이 오르지 않고 배기겠어? 자, 그럼 다시 나가서 사보도록 해요.”
“엄마 나도 같이 갈래.”
그때, 방 안에 있던 혜영이가 뛰어나오며 쫓아나섰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를 빗지 않아서 그런지 좀 어수선해 보였다.
“넌 집에 가만히 있지 시장에는 또 왜 따라가려고 그러니?”
“너무 답답하니까 엄마하고 같이 바람 좀 쐬려고 그러지.”
“머리를 그렇게 보기 싫게 헝클어뜨린 채 그냥 나가려고? 같이 나가려면 이리 좀 와봐. 내가 머리 좀 빗어줄게.”
아내는 빗으로 혜영이의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성길 씨가 혜영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혜영아, 너 그 긴 머리가 귀찮지도 않니? 웬만하면 이제 ③중발머리를 하고 다니는 게 어떻겠니?”
“싫어. 난 아무리 귀찮아도 이대로 지낼 거란 말이야.”
“허허, 그래? 너 지금 ④인민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 그렇지 얼마 뒤에 중학교에 가면 긴 머리로 다닐 수 없단 말이야.”
“아니야. 그건 아빠가 몰라서 하는 소리란 말이야. 요즘엔 중학교에 가도 얼마든지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닐 수도 있단 말이야.”
“그래? 허허허, 녀석두 차암.”
성길 씨는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혜영이가 몹시 귀여웠다. 그래서 연신 너털웃음 소리를 내며 혜영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뒤, 이윽고 아내와 혜영이가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아빠,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집 잘 보고 있어야 해. 알았지?”
“그래, 알았어, 임마. 자식도 차암. 그리고 참, 당신 이따가 짐이 너무 많으면 나를 나오라고 부르든가, ⑤발바리차를 불러서 타고 오도록 해요.”
“알았어요. 무슨 짐이 그렇게 많다고 돈 아깝게 그런 걸 다 불러요.”
“그래? 그럼 알아서 해요. 잘 다녀오도록 하고.”
성길 씨는 밖으로 나가고 있는 아내와 혜영이를 향해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어디서 불어오고 있는지 열린 문을 통해 불어오는 ⑥가는바람이 성길 씨의 얼굴을 상쾌하게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 * )
< 북한말 풀이 >
① 지난달 ② 홍수 ③ 단발머리 ④ 초등학교 ⑤ 소형택시 ⑥ 미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