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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Oct 22. 2020

어린 왕자도 외로웠을까?

외로움과 함께하기

 어린 시절 처음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뭐지?'였다.


 도대체 어린 왕자가 뭐라고 하는 건지, 여우와 뱀, 꽃은 어떤 존재인 건지, 왜 모자 보고 보아뱀이라고 하는 건지 내용을 온전히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내용 그대로를 공감하기란 어려웠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 보니 '아.. 이런 뜻이었구나' 감탄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주옥같은 말들의 대잔치인 명작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막에서는 조금 외로워.

 그런데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어린 왕자>


 어린 왕자와 뱀의 대화 중 한 부분이다. 인생을 살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이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혼자일 때도 함께할 때도 귀신처럼 빠짐없이 따라다니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우리는 사막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항상 누군가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극복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즉,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는 외로움이 해소되지 않는다.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은 사막일까?
아니면 어린 왕자의 말처럼 사람일까?


왜, 우리는 사람 사이에 있어도 외로운 것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모두가 내 생각에 동의하진 않으며 내 마음 상태를 항상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도 내 마음과 같기를, 내 힘듦을 온전히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에 외로움이 증폭되는 것 같다. 함께 있어도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아 더 외로운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외로움이 시작된다.


 어린 왕자에는 유명한 장미꽃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에는 장미꽃을 그저 어린 왕자가 아끼고 사랑한 존재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그때는 장미꽃을 통해 아낌없는 사랑이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한 번에 느껴진다. ‘길들여짐’이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너는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야’라는 문장도 어린 왕자의 명대사 중에 하나이다.


 지금 장미꽃 이야기를 읽었을 때 드는 생각은 관계를 대하는 마음에서부터 외로움에 대한 해답으로도 느껴진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위해 바친 시간과 정성이 장미꽃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성을 쏟을수록 장미꽃은 더 교만해졌고 이는 어린 왕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두고 그 별을 떠난다. 떠나온 후에야 비로소 장미꽃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외로움이란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준만큼 그 사람도 나에게 해주기를 혹은 조금씩 변화하여서 결국 내 마음과 비슷해지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외로워진다.


 가령, 내가 아플 때 친구가 같이 아파해주거나 혹은 비슷한 아픔을 느낀 적이 있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 힘이 되지만, 나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친구는 지금 인생의 누구보다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경우라면 나도 모르게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정답은 결국 내가 진실하게 대하는 마음 그뿐인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 마음, 해주지 않았을 때에 내가 느끼는 서운한 감정. 이것은 이미 내 몫이 아닌 것이다. 내가 장미꽃에 쏟은 정성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가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장미꽃이 나의 정성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각자가 별개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이 결국 중요한 것이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공들인 시간 때문인 것이지 장미꽃이 어린 왕자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주어서가 아니다.


장미의 마음과 별개로 어린 왕자의 마음과 정성을 쏟은 그 시간 자체로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어린 왕자>


 대다수가 어른이 되면 점점 눈에 보이는 가치들에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의과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20대 후반, 50대 중반에 외로움이 가장 큰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20대 후반이 사회 진입 기이고 50대 중반은 통상 은퇴시기로 인생 전환기이다. 이처럼 특정 시기에는 사람이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사회의 진입기에는 친구들은 각기 서로 다른 상황과 공동체 속에 속하게 되고 , 은퇴기에도 마찬가지로 삶에서의 큰 변화와 또 그 시기에 확연히 달라진 각자의 환경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확실한 것만 쫓게 된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어야 마음이 편하고,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한번 해보자 하고 달려든다. 남들이 선택해온 가치를 내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가치로 그대로 가져와 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휩쓸려 가다보면 결국 어느새 외로움의 방으로 스스로 가있다.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했을 때 수많은 양의 그림보다 양이 담긴 네모난 상자를 그려주었을 때 더 좋아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양이 있고, 모자를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으로 보는 어린 왕자의 생각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창조해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도 어릴 적에는 어린 왕자처럼 순수하게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때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


 이렇게 외로움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에서도 오고, 더 나은 상황을 살아가고 발전해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좌절감과 부러움에서도 온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없애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의 생각과 처한 상황을 나와 똑같게 만들면 될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린 왕자처럼 스스로가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그 마음에 당당해져야 한다. 살면서 외로움을 안 느낄 순 없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 하고 있는 생각만이 정답이 아니며 내가 하는 생각과 길도 이미 잘 가고 있는 길임을 좀 받아들이면 사람들 속에 있어도 좀 외로움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왕자도 외로웠을까?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여우의 말에서 어린 왕자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과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을 잘 배웠을 것이다.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와 외로움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잘 알려준 여우, 장미꽃, 뱀이 있었기에 어린 왕자는 아마 외롭지 않았을것 같다.



석촌호수에서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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