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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Oct 12. 2020

구차해져도 괜찮다

나는 오스칼이 아니다

 나는 항상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 간의 간극이 존재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간극은 더 커져만 갔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절실하지 않은 척
노력을 결과로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은 척
자꾸만 포장하곤 했다


 한 번 포장하는 것이 어렵지 그다음은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포장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일례로, 직장에서 내가 개발하고 있는 시스템을 현업에게 설명하는 공유 세션이 있었다. 속으로는 나도 한 부분을 맡아 멋지게 발표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내게 한 꼭지의 발표 기회가 왔을 때에는 '괜찮은데.. 혹시 하고 싶은 분이 계시면 다른 분이 하셔도 돼요.'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막상 발표의 기회가 주어지자 며칠간 어떻게 설명하면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울지 발표 구상을 하고 장표도 이리저리 구성하여 미리 발표 시나리오를 작업 해두었다. 당시 업무 환경은 보안상 회사 내부망에서만 가능했기에 퇴근하고 집에서 시간을 따로 내어 미리 발표 문서작업을 했었다.


 그 결과 공유회에서는 안정적으로 발표를 마쳤고, 추가 질문에도 잘 대답하여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발표 연습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막힘없이 술술 말해요~’라고 감사하게도 칭찬을 해주셨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에요~ 준비 많이 못했어요. 아직 한참 부족한걸요' 였다.


또, 내 노력을 뒤로 숨기고 애쓰지 않은 척했다.


 이런 내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잘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이 결과물을 내기 위해 그렇게나 애를 쓴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평소 말하는 능력에 큰 자신이 없던 나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준비와 연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 노력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었다


 나 스스로가 내 노력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만 멋있고 대단하게 보이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내가 가진 실력과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년에 관심 있게 본 예능 중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로펌에서 한 달간의 인턴 생활을 수행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 프로그램으로, 평소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법 지식과 법조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지만,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처음에서 오는 서툼과 두려움.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과 멘토 변호사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멘티들은 몇 가지 과제를 수행했고 그 과정 뒤에는 항상 멘토 변호사들의 조언이 더해졌다. 그중에서도 의연하고 상처 안 받는 '오스칼'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던 한 멘티에게, 멘토 변호사가 해준 진심 어린 말이 너무나 와 닿았다. 그간의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한 번에 설명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좀 되게 평범한 사람이고

그냥 이 지구 상에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렇게 하면 좀 더 내가 절실해도 되고

내가 좀 욕심 내도 되고

그게 막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 게 아니고

그냥 원래 인생인 거고


내가 절실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좀 더 구차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굿피플-멘토 변호사의 말 中>


 그랬다. 나는 내 욕심과 절실함에 솔직하지 못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이렇게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와 평가가 좋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사람들에게 내 노력을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노력한 결과가 겨우 이거야? 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한 번은 직장에서 기술 교육을 수강한 뒤 자격 인증시험을 치르는 과정에 참여했다. 난생처음 써보는 신기술과 프레임워크 환경에서 실습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웠고, 배운 개념을 토대로 새로운 주제를 선정하여 팀과 개인 과제를 각각 하나씩 수행해야 하는 빡센 일정 속에서 첫 개념 이해부터 쉽지 않았다.


 스스로가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과제에 임하고 싶은 마음과 혹여나 불합격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겹쳐 며칠을 혼자 밤을 새우다시피 공부를 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그 오류를 구글링 하여 겨우 해결하면 또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겨났다. 계속된 이해와 오류 조치의 반복이었고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틈틈이 업무 수행도 병행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결과는 합격으로 마무리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다른 사람은 네가 그렇게 노력한 것 아니?'라고 물었다.

 물론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나의 힘겨웠던 그 시간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이만큼 노력한 것인데 그 노력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는 것이 낯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멘토 변호사는 이어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 로펌 들어갔을 때 로펌 다 힘들고

다 열심히 하고 밤새웠는데 자기 혼자

밤새운 티 맨날 내는 사람들 보면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그게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자기 욕망에 솔직한 사람인  같아요.


 사람은 자기 욕망에 되게 충실하게 행동하고 있는데

나는 굳이 저렇게 티를 내야 될까?

나는  가만있어야지. 우아하게. 그런 생각?


<굿피플-멘토 변호사의 말 中>


  어느 조직에서든 모두가 그 사람의 노력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본인의 노력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과하게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신의 노력을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정도와 느낌이 다르겠지만 자신의 노력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는 사람에 한정하여 보자면,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은연중에 굳이 저렇게 표현해야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사람은 자기 욕망에 제일 솔직한 사람이었던 것인데 말이다.


 내 안에도 잘하고 싶고, 좋은 성과를 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행여나 그 욕망이 과하진 않을까? 더 이상 고심하면서 필터링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과 노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원래 이 정도 하는 사람이야. 가 아니라,

 나도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어쩌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좀 더 구차해져도 된다
오스칼은 만화에나 나오는 인물이니까




망리단길 맥주집에서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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