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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Feb 28. 2024

술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

전쟁터에 나오긴 했는데요. 도외주세요... (대목차)

나는 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술에  취해서 제대로 된 판단력을 잃고 실수든 사고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 냄새나는 액체가 사람을 망가트리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한 글을 쓴 적 이 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넌 술도 안 마시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술 안 마셔도 밖에 가서 놀아봐!”, “진짜 헌팅포차나 클럽 이런데 안 가봤어?” 등등 남들은 시끄러운 곳에서 술을 곁들여 노는 것이 좋을지 몰라도  나는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평온함을 좋아한다. 술집보 다는 카페에 가서 마시는 차 한 잔이 더 따듯하고 날 포근하게 만 들어준다. ‘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술이 주는 진실을 말할 기 회와 나의 고통까지 술이 앗아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 솔직히 이것 들을 종종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 쉽지 않은  시간이 있으니까 또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살면 재미없지 않냐 는 말 그럴 때면 시시한 게, 평온한 게 좋다는 말과 함께 어색한 미 소를 짓는다. 나의 두근거림과 설렘은 특별한 상황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지 친 하루를 끝내고 저녁노을을 보며 집에 갈 때, 밤하늘의 별을 볼  때,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산책할 때, 맛있는 밥을 먹을 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재미를 느낀다. 나의 사 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특별하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지루함에도 소소한 행복이 있다. 난  그런 재미에 살아간다. 이 정도로 나는 술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알코올은 사람을  망가트리는 존재 그 이외로는 생각을 안 했다. 그런 내게 술에 관 한 생각을 바꿔준 시간이 있다.」


‘나를 쓰다’라는 글쓰기 수업이 있다. 글쓰기 멤버들하고  첫 뒤풀이를 한 날이었다. 사실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가 있다 는 것을 알았지만 글쓰기 수업 전날에 같이 입사한 동기들과  친해져 보겠다고 먹지도 않는 술을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들이부은 상태에서 해롱해롱 한 상태로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입사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벼락치기하던 시간에 술을 마셨으니, 글을 쓸 정신도 없어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글쓰기 수 업을 들으러 갔다. 


글을 써오지 않은 나에게 작가님은 지금 쓰면 된다고 글을  쓸 시간을 주셨다. 큰일 났다. 뇌가 안 돌아간다... 머리가 멍하고 사고 자체가 안 된다. 술을 이렇게 마신 적이 처음이라 숙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글쓰기 멤버들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뇌가 안 돌아가요... 글이 안 써져요...” 라 고 말이다. 글쓰기 멤버들은 다들 자기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원래 술 먹을 때 보다 술 먹은 다음 날이 힘든 거예요.” “이따 술 어떻게 먹을 거예요?”라며 술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술에 대해 떠들다 보니 내 차례가 다가오고 정지된 뇌를 가 지고 쓴 글을 작가님 앞에 가져갔다. 사실 생각할 여유가 없어  예전부터 고민한 글의 주제를 써가서 그런지 작가님이 별다른 피드백을 주시지는 않았다. 윤리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건  견해차이기 때문에 피드백이 올 게 없는 주제이긴 하다. 노린  건 아니었는데 이번 한 주는 잘 넘어갔다며 속으로 좋아했다.  


드디어,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글쓰기 멤버들과 작가님, 모르님과 함께 포차로 갔다. 글쓰기 멤버들과 술 한 잔을 들이 켜다 보니 안주가 나왔다. 인원이 7명이라 테이블이 2개였는 데 음식이 우리 테이블에 놓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남자  쪽 테이블 여자 쪽 테이블이 나뉘었는데 주섬주섬 먹다 보니  모르님이 “아니 당신들만 먹어 우리는 뭐 먹어! 이거 그건가?  옛날에 남자가 다 먹고 나면 여자가 먹었는데 이분들 다 드시고 나면 우리가 남는 거 먹는 건가?” 계란말이가 나오면 반반  나누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계란말이가  나오자 모르님이 “이번엔 우리가 먼저 먹을 거야”라며 계란말이를 한 조각 집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웃게 되었다. 신기하게 이 사람들과 있으면 나는 자주 웃는다.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인 걸까? 이 사람들이 좋았다. 


술 게임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술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내가 생각한 술 게임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게임이어서 술을 한 번도 안 먹었다. 글쓰기 멤버들이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모르님이 계속 먹었다. 술자리를 즐겨하지 않아 술자리에 가면 불편했는데 자기만 먹는다며 투정 부리는 모르님을 보며 웃을 정도로 그 자리가 재미있었다. 


자리를 옮겨 노래방으로 갔다. 나는 뭘 그렇게 안 좋아하는 게 많은지 시끄러운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근데 이 사람들이랑 함께면 어쩌면 괜찮겠다 싶었다. 노래방으로 갔고 다들 신나게 놀았다. 작가님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벅찼고, 모르님과 글쓰기 멤버들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그렇게 크게 웃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웃었다.  


노래방을 나와 글쓰기 멤버들과 사진을 찍고 라면집을 갔다. 나는 그 라면집을 몰랐지만, 꽤 유명한 라면집이었다. 메 뉴는 짜파게티와 계란말이 맥주였다. 모르님이 메뉴를 시킬  때 맵게 해달라고 해서 속으로 “나 매운 거 못 먹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안 매웠다. 짜파게티는 안 매우니까 생각하면서 한 입 먹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자동으로 눈이 모르 님을 향해 돌아갔다. 나의 눈빛을 느꼈는지 눈빛이 달려졌다 고 모르님이 이야기했다.  


한참 떠들다가 시간이 자정을 넘겼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 어나 볼링장을 갔으나 토요일 밤의 볼링장은 자리가 없었다.  볼링장에서 나와 모르님은 집에 가자고 했지만 이미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사서 글쓰기 수업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모르님은 쉴 새 없이 중얼중얼 말했고, 수연  작가님은 거기에 반박하셨다. 


“자식 키운 보람이 없어!!” 

“여기에 모르님이 키운 자식 아무도 없어요.” 


모르님은 그렇게 말씀하셔도 노는 거에 진심이었다. 이모랩에 도착해서 이야기하다 클럽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말에  모르님은 일어나 이모랩을 클럽으로 만들어주셨다. 춤을 춰본  적도 없고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다 같이 춤을 추고 술을  먹었다. 평소라면 이런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그날이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계가 2시를 향할 때쯤 가자는 말과 함께 우리는 이모랩을 나섰다. 술을 먹던 중간에 차가 끊긴 나를 위해 글쓰기 멤버 언니가 집에서 재워주겠다고 말했지만, 좀 더 있겠다고 해 서 언니는 먼저 갔다. 


나는 첫 차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공부하다 잠이 들어 1시 간 동안 세상모르게 자다가 집으로 향했다. 7분이면 온다는  버스는 30분 뒤에 왔고 나는 너무 추워 동태가 되는 줄 알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따듯한 온수매트에 자는  상상을 하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내 방에서 자고 있었다. 곤히 자는 엄마를 내쫓을 수는 없으니, 소파에 가서 쭈그려 누웠다. 몇 시간 잤나?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근육통에 코끼리 코 100바퀴를 돌은 울렁거림이 날 찾아왔다. 휴무일이니  다행이지 출근 날이었으면 죽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날은 하루 종일 골골대서 누워 있다가 월요일에도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강당 의자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시간이 약인지 나는 3일 차가 되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일 것 같은 “내가 다시  술 먹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즐거운 맛을 들려버린 나는 “술은 먹을 거지만, 많이 먹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이제야 사람들이 술을 왜 먹는지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을 안 먹겠다는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이 숙취를 다시 겪더라도 또 글쓰기 멤버들과 술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기에 자신 있게 말하던 말이 있었는데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버린 나는 당당하게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환자분 술 드시면 안 돼요!” 


그 말을 뱉고는 나는 속으로 “환자분은 드시면 안 돼요. 근데 저는 먹을 거예요.”라는 생각 했다. 


동기들을 만나고, 글쓰기 멤버들을 만난 후부터 나에게 술은 알코올 냄새나는 액체나 사고를 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들과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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