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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Mar 01. 2024

각자의 수액이 있다.

전쟁터에 나오긴 했는데요. 도외주세요... (대목차)

3 off 가 끝나고 걸어가는 건지, 기어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게 출근하는 어느 날이었다. 신나게 출근한  적은 없지만 오랜만에 출근하기도 하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쉬는 동안 반 시체처럼 아무것도 못 먹고 앓았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가기 싫었다. 


간호사인데 미련하게 왜 참아? 병원에 가면 되잖아 응급실은 폼으로 있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응급실이 갈만한  곳이 한 곳 있는데 거기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이다. 나의 증상은 복통과 구토, 탈수 응급실에 가서 입원하게 되면 내가 근무하는 병동이다. 그 현장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끔찍 그 자체여서 상상하기도 싫었다. 신규 그러니까 막내가 누워있고  선생님들이 일을 한다? 내가 수액을 끌고 다니면서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입원은 안 한다...라고 다짐했다. 


내 직업의 장점이자 단점은 직장이 병원이다. 아프면 어디 가는가? 병원! 나는 출근을 어디로 하는가? 병원! 일거리가 늘어나고 민폐이지만 쓰러지면 누군가는 구해준다는 이야기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만약 입원해서 내 입원 간호기록지도 내가 작성하고, 수액이랑 약물도 내가 섞고,  통증 조절 알아서 하고 재미는 있겠다. 


이 이야기를 하려 했던 건 아닌데... 하여튼 나는 나의 인생의 동반자 포카리스웨트를 들고 출근했다. 솔직히 음식을 거 의 못 먹은 지 한 달여간 돼서 포카리스웨트는 매일 같이 들고  출근했다. 나도 살아야 했기에 라운딩을 돌 때 환자가 수액을  맞고 있으면 수액 뺏어 맞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침대도 같이 뺏어서 눕고 말이다. 그런 충동을 막아준 건 나의 이성과 포카리스웨트이다. 포카리스웨트는 나의 수액이 되어주었다.  


나의 수액은 포카리스웨트지만 나의 동기들과 선생님들은  달랐다. 선생님들과 동기들의 수액은 바로 ‘커피’였다. 출근  때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사 오셔서 얼음이 녹은 채 거의 그대로 가져가셨지만 혈관에 혈액이 아니라 커피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 같이 커피를 들고 출근하셨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환자가 수액을 맞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것처럼 간호사들은 커피를 생명수처럼 마신다. 안 그러면 다크서클로 줄넘기가 가능해지고 좀비가 된다. 


오랜만에 출근했으니, 환자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나의  눈에 들어온 환자가 있었는데 약물을 다량 복용하고 자살 시도 한 환자였다. 내가 담당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쓰여  자꾸만 눈이 갔다. 그 환자가 그런 시도를 한 이유는 차트에 쓰여 있지 않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봄이 와서 그런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다. 그래도 원래는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상주가 안 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주할 수 있게  돼서 보호자 분이 옆에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안심된 것도 잠시 나는 환자 보기 바빠서 그 환자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처치를 해주고 기록을 넣고 있었는데 그 환자가 보호자랑 스테이션 앞을 지나갔다. 그 환자에게 저절로 눈이 가게 되었는데 수액 거는 데에  육포가 걸려있었다. 그걸 보는데 웃음이 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으려고 한 사람이, 지금도 죽고 싶다는 사람이 수액 걸이에 육포를 걸고 산책하러 가다니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여웠다. 내게 포카리가 수액이 돼주었 듯 그 환자의 수액 걸대에 있는 여러 개의 수액보 다 그 육포가 그 환자한테 제일 좋은 수액이 되어줄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성격과 개성이 있듯 내게는 포카리스웨트, 선생님들에게는 커피, 환자 분에게는 육포라는 각각의  수액들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자신의 수액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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