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rmal Mar 04. 2024

나... 건강한 거 맞지?

전쟁터에 나오긴 했는데요. 도외주세요... (대목차)

병동으로 배치받은 지 한 달 반 정도 된 시점. 근무복을 처 음 받았을 때는 딱 맞았었는데 한 달 반이 지나자 헐렁하다 못해 흘러내려 자꾸 바지를 올리고 다녔다... 신규 다이어트가  됐나? 신규 다이어트라고 하기 에는 너무 빠진 것 같은데... 심지어 오랜만에 근무표가 겹쳐 만난 선생님이 누군지 못 알아보셨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간호사의 업무 중 하나 환자가 오면 입원 초기 평가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곳에 몸무게 작성 칸이 있는데 3개월 안에  몸무게 5% 이상 감량되었는지 체크하는 칸이 있다. 그것을 할 때마다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병동 입사한 지 한 달 반 도 안 돼서 16kg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원 초기 평가랑 환자에게 영양제를 달아줄 때면 나도 같이 누워서 맞아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무게가 이렇게 빠진 이유는 있다. 밥을 못 먹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바빠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도 프리셉터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은 못 드셔도 우리는 밥을 꼭 먹였기에 밥을 먹을 수는 있었었다. 그래서 이걸 신규 다이어트라 불러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밥을 못 먹은 이유는 먹으면 토하고,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 질이 올라왔었다. 환자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식사 시간만 되면 밥을 다 치워버리고 싶었었다. 밥을 드시고 계시면 나는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며 팔찌 확인을 하 고 약을 챙겨드렸다. 그러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을 물어봐!! 기억을 못 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거기다가 치매냐는 소리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그럼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치매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다른 방에 넘어가 얼른 약을 돌려야 해서 가려하면  “밥은 먹었어?”라는 질문이 뒤통수에 꽂혔다. 나는 한 달간의 서사를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모든 환자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네~ 먹었어요.” 하고 넘어갔다. 


신규라서 8명의 환자를 담당했었는데 6명의 환자와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먹는 것에 스트레스받았던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식사가 나오지 않는 나이트를 하는 게 편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살이 빠지고 먹을 수 없던 게 걱정이 돼서 우리 병원 내과 진료를 봤다. 오전에 갔는데 과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초음파랑 피검사를 하자 했다. 음... 결과 오전에 나오겠지? 했는데 오후에 나온다고 했다. 나 출근해야 하는데... 결과를 듣기에는 글렀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다음 주로 예약을 잡고 출근했다. 일찍  병동에 도착해 막내 일을 끝내고 환자 파악을 했다. 환자 파악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했기에 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큰 오산이었다. 분명 듣고 있지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며 머리 위로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겨우 인계를 듣고 환자를 보려 했더니 오후 회진 시간이 돌아왔다.  


환자 담당 과장님이 오셔서 인계 판을 들고 달려 나가는데  트레이가 떨어져서 쾅 광과 쾅 소리가 나서 심장이 쫄깃해졌다. 안 때리니 천천히 오라는 과장님의 말씀에 웃음이 났다.  (원래는 되게 무서운 과장님이다). 회진을 다 돌 때쯤 과장님 께서 “어? 선생님 거 결과 나올 때 됐는데? 나왔을 텐데.”라 고 하셨다. 나를 못 알아보시는 줄 알았는데 놀랐었다. 스테이 션으로 가자는 말씀에 프리셉터 선생님과 다 함께 스테이션으로 갔다. 


과장님께서 “선생님 차트 보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었다. 나는 내 이름을 치고 검사 결과를 틀었다. 검사 결과가 뜨자마자 먼저 “와 깨끗하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부끄럽기 하고, 너무 정상이기도 하고 많이 당황스러워서 자동으로 그 말이 나와 버렸다. 프리셉터 선생님과 과장님도 검사 결과를 보시면서 “음 괜찮네. 이상 없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이어 과장님께서 “그럼 살이  왜 그렇게 빠지고 토하는 거지? 일이 너무 힘든가?”라고 하 셨는데 그 즉시 “아닙니다. 안 힘듭니다.”라고 대답했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 계시는 곳에서 그런 질문이라... 정해진  답변 아닌가요? 과장님...? 


검사 수치는 정상인데 나는 못 먹고, 토하고 답은 하나. 스트레스 때문이다. 얼마 전 정신과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지금 몸 상태가  갈 데까지 갔다는 소리를 하셨다. 그러면서 약 용량을 올리자 고 하셨다. 간호사로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거기다 대고 “요즘 잘 약 잘 안 먹어요.”라고 했다. 환자에게 금주하라고 교육하고 술을 먹는 것처럼, 약을 꼭 잘 챙겨 먹으라고 교육하고  확인까지 하지만 나는 안 먹었다. 말을 안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위치다. 그 말을 들은 역시나 주치의 선생님이 혼내셨다. 


핑계를 대자면 3교대 스케줄로 아침저녁 약 챙겨 먹기가 애매했다. 정신과 약은 빈속에 먹어도 되긴 하지만 먹는 약을  이리저리 합치면 한 뭉치는 돼서 먹으면 속이 좀 쓰렸다. 그래서 무엇이든 먹고 약을 먹는 편인데 음식을 안 먹으니, 약도 자동으로 안 먹게 되었다.


요즘 상황을 말씀드리니 약을 추가해 주신다고 하셨다. 진료를 보고 약이 나와 약을 보는데...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맨날 병동에서 환자 약 확인 하면서 프리셉터 선생님께 질문받던 그 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약 설명도 안 들었는데 안 듣고 싶었다. 위장약 주시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소화기 내과 병동 간호사이기 때문에 매일 일하면서 다양한 위장약을 봤다.  위장 관련 약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데 하필이면 골칫덩어리였던 약이 내 눈앞에 펼쳐질지는 몰랐다. 스트레스를 줄여 보고자 정신과에 왔고, 속이 덜 아팠으면 해서 약을 받았는데  뒷목이 당기면서 속이 아려왔다. 


다시 돌아가 내과 진료 볼 때 과장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있었다. 밥 냄새를 맡고 보면 토할 것 같은 병은 없다고... 밥도 못 먹고, 매일 힘은 빠져가고...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나 건강한 게 맞는 걸까?

이전 10화 각자의 수액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