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림의 순간
놀이공원은 시끄러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쇳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겹쳐져 하나의 거대한 소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9세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따뜻하고 작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의 주머니에서였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들었다. 나는 화면을 힐끗 보았다. 낯선 번호였지만, 가운데 숫자가 낯익었다.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반응했다.
아이 엄마이자 전 처의 번호와 비슷했다.
“받아도 돼?”
아이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 잠깐만.”
하지만 아이는 이미 받아버렸다.
“여보세요?”
아이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무런 의심도 없었다. 나는 아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스팸 같은데. 끊어.”
아이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잠시 듣고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아빠.”
“응?”
“부모님 전화 달라고 하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거 스팸이야. 모르는 번호잖아.”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아.”
“왜?”
“엄마 번호랑 비슷하잖아.”
그 말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그래도 말했다.
“비슷할 수는 있어. 우연이야.”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차분하게. 가능한 한 이해시키려고.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라니까.”
아이는 여전히 나를 믿지 않았다.
그 순간, 지나가던 남자가 우리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아이한테 너무 화내시는 것 같네요.”
나는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설명했다. 스팸전화였고, 아이가 속을까 봐. 남자는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리고는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아이와 자리를 옮겼다.
다시 설명했다.
왜 이런 전화가 오는지. 왜 조심해야 하는지.
아이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 침묵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였다. 고양이처럼 동그랗지만 부드러운 눈. 옅은 쌍꺼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분명히 아는 얼굴 같았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다시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지쳐버렸다.
“너 알아서 해.”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나는 아이에게서 몇 걸음 떨어졌다. 겨우 몇 미터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봤을 때, 아이는 없었다.
사람들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였다.
“경수 씨.”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였다.
아까 그 여자.
그녀는 아주 가까이 와 있었다. 놀이기구 근처라 대기 중인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사이에는 거의 공간이 없었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뭐해요?”
나는 설명했다.
아이의 전화. 비슷한 번호. 스팸. 아이가 믿지 않는 것.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말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알았다.
그녀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 말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이해받는다는 느낌.
그녀는 나를 보며 물었다.
“행사, 참석할 거예요?”
‘무슨 행사?’
난 속으로 생각했다. 행사가 있었던가. 아이들 학교 행사인가.
“참석 안 하면, 아이 캔디가 없잖아.”
나는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 캔디.
그녀가 천천히 다시 말했다.
“Eye candy.”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눈이 즐겁지 않다는 말.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나는 웃었다.
“당신도 마찬가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얼굴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그녀의 하얀 얼굴, 동그란 눈동자, 날렵한 눈매, 오뚝한 콧날이 나의 욕구를 일깨운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녀도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내 입술을 한번 더 맞닥뜨린다.
나는 속삭였다.
“남편은?”
분명 학부모로서 만났던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다른 놀이기구에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놀이공원의 소리가 모두 멀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도.
사람들도.
과거도.
아무것도.
그녀와 나만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난 여전히 기억을 더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