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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yton Feb 24. 2020

흔한 커쇼팬의 사내 메일 ID

2017 월드시리즈 1차전 (2017.10.25)

최근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회사마다 사내 메일 아이디를 정하는 정책이 달라 본인이 아이디를 정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는 반면 회사에서 지정해주는 아이디를 반드시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옮기게 된 회사에서는 본인의 아이디를 정할 수 있었다. 내 선택은 여지없이 clayton이었다. clayton은 LA 다저스를 대표하는 선수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인 커쇼의 이름이다. clayton은 나의 브런치 작가명이기도 하다.


영문 이니셜을 반드시 사내 메일 아이디로 써야 했던 첫 번째 회사를 제외하고는 항상 사내 메일 아이디를 clayton으로 사용했었다. 회사는 옮기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사내 메일 아이디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사내 메일 아이디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소소한 재미이다. 사내 메일 주소는 내 명함에도 고스란히 새겨진다.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명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함께 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LA 다저스 외야수로 활약했던 숀 그린.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커쇼가 데뷔하기 전 나의 온라인 아이디는 majorgreen이었다. 메이저리그의 'major'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다저스에서 뛰었던 외야수 숀 그린의 성 'green'의 합성어였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오른손 타자보다는 왼손타자를 좋아했다. 션 그린은 좌타자인 데다가 빠른 발까지 갖춰 한 시즌에 홈런과 도루를 20개 이상 기록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타자였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션 그린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홈런을 치고 본인의 배팅장갑을 벗어 관중석으로 던져주는 장면, 유대인 혈통으로 유대교 명절인 욤 키푸르에 결장하며 본인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스스로 마감했던 장면,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찬호 도우미'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던 기억 등이다. 2001시즌에 숀 그린이 기록한 49개의 홈런은 아직까지도 다저스 프랜차이즈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으로 남아있다.


2017 월드시리즈에서 투구하는 클레이튼 커쇼.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숀 그린이 200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커쇼는 내가 가장 아끼는 선수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커쇼는 숀 그린이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인 2008시즌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만큼 커쇼의 선발 등판 경기만 지금까지 세 차례 직관했다. 두 번 직관했던 류현진 선발 등판 경기보다 한 번 더 많은 횟수이며, 내가 직관했던 경기에 선발로 최다 등판한 선수가 커쇼다.


그중 최고의 경기는 역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2017년 월드시리즈 1차전이었다. 그 경기는 내가 직관했던 경기뿐 아니라 커쇼의 포스트시즌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던 경기였다. 4회 초에 알렉스 브레그먼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을 제외하고는 실로 완벽한 경기였다. 커쇼는 7이닝 동안 11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휴스턴 타선을 압도했고, 3:1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1988년 이후 29년 만에 홈팬들에게 선물한 월드시리즈 승리였다.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그토록 완벽했던 커쇼였지만, 휴스턴 원정에서 펼쳐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는 팀을 승리로 견인하지 못했다.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치팅 논란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로 그 경기다. 에이스의 책임감으로 홈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도 구원 등판한 커쇼는 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지만 무너진 승부의 균형을 다시 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리 야구팬이라 한들 일보다 야구가 우선이 될 수 없다. 맡은 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직장인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주말 및 한국 시간 새벽에 펼쳐지는 경기를 제외하면 시즌 대부분의 경기는 회사 사무실에 있을 때 진행된다. 라이브로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시즌 중 사실 몇 경기 안된다는 의미이다.


사내 메일 아이디로 clayton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비록 매 경기를 라이브로 보며 응원할 수는 없지만, clayton이라는 사내 메일 아이디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마음만은 항상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야구장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랄까.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최선의 노력으로 적응하는 동시에 다가오는 다저스의 시즌도 마음만은 항상 커쇼와, 다저스 선수단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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