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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yton Jun 01. 2020

켄리 잰슨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2017 월드시리즈 2차전 (2017.10.26)

다저스타디움에서 투팍의 'California Love'가 흘러나온다는 것. 곧 승리에 한 발짝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곧이어 랜디 뉴먼의 'I Love L.A.'가 울려 퍼진다면?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조금 전 예상했던 대로 순조롭게 경기가 끝나 홈게임에서 다저스가 승리했음을 의미하는 사인이다.


California love는 바로 다저스의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의 등장 음악이다. 잰슨이 마운드를 이어받으면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고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2017년은 잰슨의 커리어 중 최고의 시즌으로 꼽히는데, 직관했던 2017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도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꼈다.


생각보다 조금 이른 8회 초 등판이었고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여섯 개의 아웃카운트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의 잰슨은 강력했고, 또 믿음직했다. 당시의 잰슨은 다저스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마무리 투수이자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최고의 마무리로 꼽히는 투수였다.


괜한 믿음이 아니었다. 잰슨은 2017년 정규시즌 42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세이브를 거뒀다. 바로 전 시즌이었던 2016년 1.83의 평균자책점도 대단한 기록인데, 2017년의 평균자책점은 1.32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잰슨의 기세는 식을 줄을 몰랐다. 월드시리즈에 올라가기까지 7승이 필요했던 다저스였는데, 그 7경기에 모두 등판해 다저스의 승리를 함께했다.


이어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다저스가 3:1로 앞선 9회 초에 등판, 1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다저스의 승리를 지켜낸 건 다름 아닌 잰슨이었다. 앞선 경기에서의 이런 활약 때문에 월드시리즈 2차전, 잰슨의 등장음악 만으로도 경기가 이미 끝난 듯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었다.


3:1로 다저스가 2점 앞선 8회 초, 휴스턴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적시타를 허용해 브랜든 모로우가 남긴 주자였던 알렉스 브레그먼이 홈을 밟았지만 잰슨에게는 1점의 여유가 더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9회 초, 선두 타자였던 마윈 곤잘레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며 잰슨은 그 해 포스트시즌 들어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포스트시즌 9경기 만에 첫 자책점이자 첫 블론세이브였다.


사진 = LA 다저스 공식 SNS


빼어난 활약에도 팀을 가장 높은 자리로는 견인하지 못했던 잰슨. 2017년 선수생활의 정점을 찍고 잰슨의 성적도 조금씩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시즌중 무려 8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안정감 그 자체였던 전성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다저스팬으로서 잰슨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2010년 다저스에서 데뷔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오직 다저스를 위해서만 뛰고 있는 원팀맨이자 다저스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오롯이 다저스와 함께하며 '7년 연속 지구우승',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 등 전에 없던 다저스의 빛나는 시절을 함께하고 있는 선수. 그 영광의 순간은 잰슨이 다저스의 뒷문을 늘 든든히 지켜줬기에 가능했다.


믿을 만한 셋업맨이 없고 불펜이 불안했던 다저스의 팀 사정상 잰슨은 8회 부터 등장해 4~6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지는 세이브를 거두는 경우도 빈번했다. 다저스팬으로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다면 바로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2016 NLDS 5차전인데, 그 경기에서도 잰슨은 마무리 투수로는 이례적으로 7회 말에 등판해 2.1이닝동안 51구의 역투를 펼쳤다. 9회 말, 커쇼가 마운드를 이어 받아 경기를 마무리 하는 장면까지 더해 아직까지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쫙 끼치는 경기이다.


당시 위기의 순간에서 믿을만한 투수가 결국에는 잰슨과 커쇼,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 둘은 여러 선수들이 팀을 들락날락하는 와중에서도 꿋꿋히 다저스를 지키고 있는 유이한 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아쉬운 마음은 들지만 절대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지켜보는 팬으로서 짠한 감정이 들 때가 더 많다.


한두 해 반짝하는 마무리 투수들은 많지만 오랫동안 롱런하는 마무리투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통산 301세이브를 거두고 있는 잰슨 앞에 있는 현역 선수는 크렉 킴브럴 단 한 명 뿐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그 세이브 리더보드에서 통산 1위는 652세이브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지키고 있다.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커터'를 앞세워 타자들을 상대하는 잰슨이 리베라의 길을 따라 꼭 롱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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