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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Nov 25. 2022

나는 사랑을 하면 항상 마음이 아파온다

 나는 사랑을 하면 항상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지금,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이 매우 아프다.


 왜인지 누군가와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사랑에 너무나 큰 무게를 싣는 건지도 모른다. 너무나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사랑의 마음을 교류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의 큰 사랑을 내어주고, 꼭 같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내어져 없어진 마음에 어느 정도의 사랑을 다시 받고 싶다. 욕심인지도 모른다. 같은 만큼이 아니더라도 내 사랑을 돌려주기엔 나의 사랑이 너무 과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너무 큰 건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 때마다 내 심장 한편에서 사랑을 도려내어 당신에게 건네고는 한다.


 당신은 내 심장 조각을 받아 들고는 웃는다. 여느 사랑과 비슷한 사랑이겠거니, 조금 더 큰 사랑이겠거니 하며 사랑 받음을 즐기는 걸까. 하지만 내가 준 사랑에는 피가 고여있다. 가끔은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내 마음을 고스란히 도려내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피를 굳이 흘리지 않기 위해 가벼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모두에게서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면서는 당신에게 건네는 마음에 다시 피가 서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도려내는 칼을 내 손으로 잡으며 스스로를 해친다. 아무리 사랑 이래도 스스로를 해쳐가며 하는 것은 바른 사랑이 아닐 터,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사랑의 모습이 이러한 것을.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 행복하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내 마음에 칼을 찔러 넣을 것임을 알기에 당신이 두렵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두렵다.


 오늘은 당신도 나의 핏자국을 본 것만 같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갓 도려낸 마음 조각이 콩닥콩닥 하다가 피를 분출해 버렸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의 눈을 가리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로 점철된 내 사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과함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더욱 무던해지고 싶었다. 무거워진 사랑으로 스스로를 도려내고 싶지 않았다.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한다. 피가 흐른다.


 당신은 아연실색하며 심장 조각을 나에게 다시 건네고는 나에게서 잠시 거리를 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괴상한 핏자국을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칼로 도려낸 심장이 두려운 것일까. 처음 본 핏자국이 생경한 것일까. 흐르는 빨간빛에 질려버린 것일까. 당신에게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작은 칼이 떨어진다. 당신의 동공에 나의 작은 칼에서 반사된 빛이 흘러들어 간다. 나는 당신에게서 다시 내 손으로 쥐어진 피 흘리는 심장 조각을 놓친다. 작은 심장 조각에는 먼지와 흙이 묻는다. 나는 얼른 그 조각을 집어 들어 가슴 가까이로 소중히 가져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홀로 덩그러니 화장실 한편에 주저앉는다. 36도에서 37도 사이 정도가 되는 온도의 물을 튼다. 심장 조각에서 먼지와 흙을 씻어낸다. 도려내진 마음이 아려온다.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전화를 건다. 미안함의 이유에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당신을 사랑하며 얼마나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지를. 사랑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담아 당신에게 변색된 사랑의 모습들을 핏빛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를.


  심장 한편에 작은 칼을 묻는다. 사랑으로 마음을 도려내고 싶을 때마다 칼을 건드리기로 한다. 칼이 조금씩 움직이며 이런 사랑은 아프다고 말할 것이다. 칼이 조금씩 움직이며 칼로 마음을 떼어내는 것은 피를 보게 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럼 당장에 칼을 집어 들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칼이 긋는 상처를 따라 되뇔 것이다. 더 이상은 마음을 스스로 도려내지 말자고.


 씻어낸 심장 조각에는 핏기가 다 없어졌다. 나는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심장 조각을 두어 끌어안고는 억지로 잠에 든다. 꿈속에서는 당신이 연고를 가지고 나타났다. 말도 안 되는 연고를 가지고. 그냥 피부 겉에 난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가지고. 꿈속의 당신은 아까는 미안하다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피를 보았는데 어디가 아픈 거냐며 조심스레 묻는다. 어디가 다친 거냐고 묻는다. 연고의 뚜껑을 열어 나에게 연고를 발라주려는 시늉을 한다. 나는 내 손에 쥔 심장 조각이 다시 뛸 만큼 세게 그 조각을 움켜쥐었다.


 나는 마음이 아픈 거라고 말한다. 피는 마음에서 난 것이라고 말한다. 겨우 입을 떼어 말한다.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당신은 그래도 심장 가까이 쯤에 연고를 발라주겠다고 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연고를 기어코 내 가슴에 발라준다. 내 마음은 뭉그러진다. 피가 솟구칠 것만 같다. 난 그 꿈이 정녕 꿈이 아니길 바랐다. 진짜였다면, 진짜 당신이 그 말도 안 되는 연고를 내 가슴에 바른 거였다면, 이 모든 일들이 한낯 우스운 해프닝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어디서도 피가 흐른 적 없었던 듯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연고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많은 것을 바란 건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피나는 심장 조각을 쥐어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상대에게 사랑이 아닌 건 내가 사랑 이래 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피도 나지 않는 그 조각을 조용히 작은 상자에 집어넣는다.  나는 사랑을 하면 항상 마음이 아파온다. 스스로 칼을 틀어쥐고 심장을 도려내어 그것이 사랑이라며 당신에게 건네고는 한다. 당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미안함만 늘어간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조용히 내 모든 감정과 행동들을 되짚어 본다. 당신의 손에 들렸다가 다시 내 손에 쥐어졌던, 꿈속에서 다시 뛸 뻔했던 피 멎은 심장 조각을 떠올리며 작은 상자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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